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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생 학생 Jan 31. 2024

대문자 E가 소문자 i로 변했을 때

오히려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독립적인 사람은 친구를 몇 명만 두고 싶어 한다. 성격이 차갑거나 무심해서가 아니다. 그저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고 싶어서다. 장롱을 정리하듯 인간관계도 깔끔하게 정리해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고, 배울 점이 많고, 인간적으로 정신적으로 서로 끌리는 관계만 유지한다. 즉, 진실하고 심플한 관계를 추구한다.  ‘지극히 적게, 도미니크 로로’



혼자 있을 때보다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더 밝은 사람, 내가 바로 그중 한 사람이다. 사람을 좋아해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어렵지 않게 인사를 주고받는 사람, MBIT 중에서도 대문자 E인데, 두 아이를 출산 이후부터 조금씩 i의 성향이 드러나기 시작하더니, 이젠 E인걸 숨기는 대문자 I가 되었다.


미국에서의 홈스쿨링. 학교에 가지 않는 대신 ‘사회성’을 기를 수 있는 플레이 데이트는 필수라는 생각에 홈스쿨 커뮤니티에서 만나는 엄마들에게 적극적으로 먼저 다가가고 아이들을 위해 최대한의 플레이 데이트를 했다. 홈스쿨은 마음이 잘 맞고 관심사가 비슷한 가족끼리 모여 여러 모임을 하기도 한다. 각 나라를 대표하는 빵을 같이 만드는 베이킹 모임,  공원을 탐험하는 모임도 있다. 초대를 하는 날, 초대를 받는 날, 그리고 모임에 참여하는 날, 일주일 중에 일정 달력이 비어있는 날은 고작해야 일요일 하루 정도였다.


매일 밤이면 운전하느라 지친 몸과 방전된 멘털만 남았다. 짜증이 늘고 쫓기듯 하루하루를 보냈다. 눈앞에 있는 허들을 넘고 나면, 또 다른 허들이 눈앞에 있는 레이스를 하고 있었다. 만남이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평소에 거절을 잘 못하는 나지만, 이젠 생존을 위해 삼켜왔던 말을 해야 할 차례였다. 초대 문자가 오면 정중히 거절의 메시지를 보냈다. 최대한 많은 플레이 데이트로 아이들에게 사회성을 길러 주겠다는 의도는 좋지만, 매일 만나면 사회성이 더 길러지고, 일주일에 세 번만 만나면 사회성이 절반이나 줄어드는 걸까? 아니면 일주일에 두 번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걸까?



‘지금보다 만나는 횟수를 줄여도 중요하고 내실 있는 의사소통을 충분히 할 수 있으리라, 데이비드 헨리 소로, 월든


타인과의 만남의 중요성이 덜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종종 타인과의 관계를 더 우선시하느라 나와의 관계를 돌볼 여유가 없다는 말이다. 나와의 관계에 개선이 필요한 시점에 우연히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혼자 놀기의 고수 이창섭 님 편을 보게 됐다. 혼자서 돈가스를 먹고, 혼자서 찜질방 안마 의자에 앉아 안마를 받고, 찜질방 안에서 먹고 싶은 제육볶음을 먹는 하루. 패널들은 ’아니 어떻게 혼자서 찜질방을...’이라고 이야기했는데, 패널 중 한 명이었던 코쿤님이 “오늘 하루 창섭 씨가 하고 싶은걸 다 즐기셨네요”라며 우리가 주목해야 할 핵심을 짚어 주었다. 나는 평소에 나의 주장을 강하게 펼치지 않는 편으로 친구들을 만나면 친구가 하고 싶은 대로 하자고 이야기하거나,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먼저 헤아리는데 익숙하고 편하다. 그래서인지 혼자서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이창섭 님은 자신의 필요를 누구보다 잘 헤아려주는 내면이 단단한 사람처럼 보였다.


이제 나도 혼자만의 시간, 누군가와 밖에서 만나지 않는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 어플 달력에 빈칸이 있는 여백 있는 일주일을 애정한다. 그리고 아이들과 여유롭게 책을 읽고,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들어 즐겁게 천천히 즐기며 먹는 시간을 예전보다 더 소중히 여긴다. 짜증 내는 날 보다 일상에서 만족을 느끼는 날들이 더 많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랑은 예전보다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더 많이 웃는다.


일정 달력을 한 번 살펴보자. 늘 사람들 속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면, 각종 모임으로 빈칸 없는 달력일 수도 있다. 지금의 일상이 만족스러운가? 아니면 사람들을 만나면, 사는 게 힘들다며 푸념을 늘어놓거나, 관심도 없는 이야기를 들어주느라 진을 빼고 있지는 않은가? 이번 주에는 나를 위한 하루를 마련해 보자. 아무런 약속도 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내가 먹고 싶은 일을 하고 나의 필요, 나의 욕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마련해 보자. 다른 사람이 채워주길 기대하다 실망하기를 반복하는 대신에 내가 귀 기울여 보자.



#미니멀라이프

#만남최소한주의

#미니멀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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