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의 데이트는 그저 행복

by 에이치노트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양손을 무겁게 한듯이 마음이 즐거움으로 꽉 차있다.


하늘은 눈구름으로 그득한 회색빛이었지만 오랜만에 종각역에 도착해서 큰 세계에서 오는 자유의 냄새를 깊게 들이마셨다.

하지만 옷을 너무 얇게 입었나.. 오늘 영상 5-6도라서 가볍게 입었더니 추웠다.

몇년 전부터 너무나 가고 싶었던 리사르커피에 드디어 갔다. 들어간 순간부터 분위기가 압도했다.

공간이 주는 고객경험은 굉장히 강력하다.

한 순간에 모든 이미지를 결정하거나 바꾼다.


그리고 에스프레소 메뉴판, 에스프레소 잔, 그리고 주문하는 프로세스와 스탭의 대응방식 모두 하나의 방향으로 브랜딩이 짜임새있게 잘 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냥 에스프레소를 시키면 설탕이 든 에스프레소를 준다. 가장 기본을 마셔보고 설탕을 뺀 에스프레소를 마셔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설탕이 든 건.. 달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말이야. 원래 에스프레소 맛이 어떤지 알 수 없잖니?

그리고 설탕을 뺀 에스프레소를 바로 주문했다. 나는 원래 에스프레소를 좋아해서 평소에도 텐퍼센트에서 꽤 자주 시켜먹는다.

그 유명한 리사르커피의 에스프레소는 맛이 어떨까! 했는데,

오 맛있었다! 엄청나게 세상에 없는 맛이라기보다는 질못된 맛이 없는 맛이랄까?!

맛있게 잘 마셨다고 충분히 말할 수 있었다.

다음에도 꼭 와야겠다고 생각하며 밖으로 나섰는데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차가웠던 몸이 에스프레소 두잔으로 뜨끈해져서 춥지 않은 것이다.


세상에.. 밖으로 나와서도 이런 긍정적인 경험이 이어지다니..

리사르커피 사랑해. 순식간에 내 최애로 등극했다.


뜨끈하게 데워진 몸을 끌고 서울시립미술관으로 향했다. 그런데 천경자 상설전시관 빼고 다 다음 전시 준비중이네...? 분명 홈페이지에서 전시가 있다는 걸 보고 갔는데.. 지난 걸 본건가?

그래서 빠르게 나와서 핀해뒀던 근처 아트조선스페이스로 향했다.


갤러리는 넓었고 작품들도 다양한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들을 한번에 만날 수 있어서 너무나 좋았다.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흥미롭고 궁금한 작품들도 꽤 있었다.

마음에 들었어!


그 중 장영은 작가의 '삶의 조각'이라는 작품을 보면서 한참 서 있었다.

그래 맞아, 삶은 이런 모습이지.

한치앞도 보이지 않게 뿌옇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것 같아.

그런데 말이야, 그 사이에 반짝거리는 silverlining 이 보여. 우리는 이 미세하게 반짝이는 silverlining 을 보며 앞으로 나아가는 거야.

삶에서 내가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뭔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할 거라는 "희망"이라고 난 생각한다.

희망을 잃는 순간, 우리 눈은 동태눈깔이 된다.

그것이 스불재와 더불어 내가 제일 경계하는 것이다.


그림에서 막막하고 답답함을 표현하기 위해 채도를 낮췄지만, 명도를 높인 하늘색으로 앞으로의 삶이 그렇게 어둡지는 않을 거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우리 모두 그런 눈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기를.

그 외에 배우 박기웅님, 이제는 작가님 작품도 있었는데 꽤 인상이 깊었다.

제목이 declaration 이다. 작품에서 자세히 보면(예전에 눈을 모아야 보이던 글자처럼) future super hero 라는 글자가 보인다.

나는 미래에 수퍼히어로가 되겠다는 선언이다. 아주 당차다! 마음에 든다.


그리고 외국인 작가의 다다이즘+초현실주의+팝아트(맞는지는 잘 모르겠다)스러운 작품도 있었는데 마르셀 뒤샹의 fountain 작품을 샘플링하고 초현실주의를 떠올리게 하는 빨간 랍스터를 써서 현실의 공산품과 버무려 팝아트 느낌이 나는 작품이었다.

초현실과 현실의 mixture 라..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을까.

그 작품을 보고 있으면 내가 지금 어떤 차원의 공간에 있는지 순간 잊게 된다.

만족스러운 커피+미술관 나들이었다.

서둘러 집으로 내려왔고, 맛있는 호떡하나 겟해서 먹으면서 아파트 단지내를 걸으니 정말 오늘이라는 시간을 최대치로 행복하고 만족하게 잘 쓴 것 같아서 더없이 뿌듯한 순간.

나의 날들을 이런 최대치로 채우려고 부단히 노력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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