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 내 인생의 붉은 혁명을 찾아서
세상은 오랫동안 나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막연한 두려움이 엄습해올 때면 나는 방공호 같은 곳으로 숨어 들어가고 싶었다. 일상 속 방공호는 책상 밑이나 장롱 속, 아니면 옷걸이 아래였다. 좁은 곳에 웅크리고 앉아 있자면, 만사가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그나마 지진 같은 흔들림은 진정되는 것 같았다.
포르투의 카르무 성당 안 Casa Escondida. 영어로 Hidden House. 이곳에 들어선 순간, 나는 어린 시절 나의 방공호를 떠올렸다. 포르투 시내 한복판, 세상과 단절된 Hidden House.
침실이나 응접실, 주방, 그리고 작은 책상이 놓인 방. 모두 단순하고 검박하다. 앤티크한 가구들 역시 심플하고 우아하다. 이곳은 비밀 엄수가 요청되는 행정 관리 회의가 열린 장소이기도 했고, 세 차례에 걸친 프랑스의 포르투갈 침공기(1807-1811)나 포르투 포로기(1832-1833), 공화정 선언(1910), 그리고 수도회 박해가 있었을 때 성직자들과 주요 관리들의 은신처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곳은 포르투의 다른 명소나 성당들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곳인데, 그래서 외려 포르투에 잠깐씩 머물렀던 외국인 작가들에게 어떤 신비스러운 이미지로 각인되어 은밀한 스토리에 대한 영감을 주었다.
물건도, 관계도, 만남도, 일정도, 모두 싹 정리하고 핵심적인 것만 남기고 싶을 때가 있다. 도시 생활이 번잡하고 산만하게 느껴지고, 많은 관계들이 소외감만 안겨줄 때면, 생활을 극단적으로 축소하고 단순화하고 싶은 욕구를 갖게 된다. 카르무 성당의 Hidden House는 그런 욕구를 충족시켜줄 만한 곳으로 보였다.
방공호는 ‘적의 항공기 공습이나 대포, 미사일 따위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땅속에 파놓은 굴이나 구덩이'를 말한다. 눈에 보이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도 세상은 늘 전장 같다. 특히나 한국 사회는. 여행을 하다 한국의 뉴스나 SNS의 언어들을 엿보면 그야말로 항공기 공습이나 대포, 미사일 공격 못지않다. 1년을 예정하고 아내와 함께 세계여행을 나선 벗은,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체내에 쌓인 것들을 여행하며 빼내고 있는 것 같아 그게 참 좋다고 했다. 한국 사회에서는, 그리고 도시 생활에서는 나만의 방공호가 필요하다.
시끄럽지 않은 포르투라도, 사람들이 활발하게 드나드는 도심 한복판에 이토록 조용한 성루 같은 곳이 존재한다는 건 신기한 일이다. 게다가 사람들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아 찾는 이도 많지 않은 곳. 고요한 적막 속에서 잠시나마 눈과 귀와 입을 세상으로부터 단절하고 내면을 파고들어가 더 크게 눈과 귀를 열 수 있는 곳. 서울엔 어떤 Hidden House가 있을까. 나에겐 강촌의 성공회 성 프란체스코 수도원이 그런 곳이다. 모든 것으로부터 물러나 쉼과 성찰을 가질 수 있는 곳. 아무것도 가지지 않아도 풍요로운 곳. 소박하고 검소하게 먹고 기도하고 대화하는 곳. 세상과 다른 원리로 살아가는 행복한 삶을 보여주는 곳. 그곳이 그리워진다.
외부의 숱한 욕망들이 침범해 들어와 날 사로잡을 때, 내 안의 서로 다른 욕망이 강력한 싸움을 벌일 때, 침묵과 고요로 들어가 욕망들을 재배치할 공간. 카르무 성당의 Hidden House는 누군가에게 그런 공간이 되어주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