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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ete Oct 27. 2018

고마워요, 함께 연주해줘서

포르투, 내 인생의 붉은 혁명을 찾아서

히베이라 광장에서 나는 장 그르니에를 읽고 있었다. <섬>. 마음이 힘들 때마다 들춰보게 되는 책, 멀리 여행을 와서도 읽고 싶은 책이다.


바다 가까이 살았던 그는 ‘만사가 헛된 꿈과도 같은 것’이란 생각을 하며 살았다. 밀물과 썰물이 있는 바다, 브르타뉴에서처럼 항상 움직이는 바다. 한눈으로 다 껴안을 수도 없을 만큼 광대무변한 넓이. 바위들, 개펄, 물…. “날마다 모든 것이 전부 다시 따져보아야 할 문제로 변하는 곳이니 참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셈이다.” 그가 상시적으로 느끼는 엄청난 공허, 길을 잃은 채 펼치는 몽상은, 그러나 씁쓸하지만은 않고 달콤한 기분으로 즐기는 ‘타고난 병’이었다.


나 역시 ‘타고난 병’ 때문에 이 자리까지 와 있는 것 아닐까, 생각했다. 그가 말한 “그냥 살아간다기보다는 왜 사는가에 의문을 품도록 마련된 사람들 중의 하나”. 그래서 살아가기 쉽지 않은 사람들 중 하나.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도 있었고, 깊이 대화를 주고받은 사람도 있었다. 사랑에 빠져든 사람도 있었고, 인연이 끊긴 사람도 있었다.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신 스승도 있었고, 한때 깊이 가까웠다가 어느덧 멀어진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들은, 그리고 그 관계의 양상들은 모두, 일시적으로든 영원하든, 당시의 나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은--하여간 내면적인 사건들은--내부의 가장 깊숙한 곳에 감춰져 있던 것이 차례차례 겉으로 드러나는 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무엇이 영원한 것일까.... 변하지 않는 것을 찾아 헤맸는데....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골똘히 생각에 잠겨 광장을 바라보았다. 노을이 지진 않았지만 해는 구름에 가려져 있었고, 곧 자신의 존재를 붉은 흔적으로 남기며 완전히 사라질 예정이었다. 드높고 넓은 창공엔 갈매기가 날고 있었다. 무리 지어 여행을 온 중년의 백인 남성들이 호탕하게 웃으며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또 다른 중년 백인 여성들의 무리는 레몬을 띄운 마티니를 마시며 소곤거리고 있었다. 그 뒤엔 검은 옷을 차려 입은 여자 무용수와 흰색 셔츠에 검은 타이즈를 입은 남자 무용수가 거리에서 강렬한 동작의 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문득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한 어린아이가 아빠의 손을 잡고 무언가를 골똘히 바라보고 있다. 아빠는 아이 쪽으로 허리를 숙이고 놀라운 눈빛을 하며 연신 무언가를 아이에게 속삭인다. 내 시선도 그 부자(父子)의 시선에 맞추어졌다. 거기엔 회반죽을 덮어 쓴 듯한 동상이 있었다. 아까 전에도 보았었다. 의자에 앉아 구두를 수선하는 할아버지 동상이었다. 한참 전에는 왼쪽을 향해 있었는데, 이번에는 강변을 향해 앉아 있다. 설마.... 저 동상이 사람이었어? 거리의 많은 행위 예술가를 보아오긴 했지만, 이번만큼은 믿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눈을 깜빡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가 정말로 사람인지를 살펴보기 위해 그의 등 뒤에 섰다. 숨을 쉬는지 알고 싶었다. 거의 느낄 수가 없었다. 숨조차 느낄 수 없을 만큼 움직임이 없었다. 그의 얼굴 쪽으로 다가가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역시나 눈은 조금도 깜빡이지 않았다. 그런데 누군가가 동전 몇 닢을 함에 넣고 간다. 갑자기 그의 오른팔이 힘차게 움직이더니 구두에 망치질을 하는 것이었다. 탕! 탕! 탕! “오 마이 갓!” 내 입에서 절로 튀어나온 말이다. 늦은 오후에 등장한 그는 몇 시간이고 그 자리에 그렇게 앉아 있었다. 하염없이. 눈을 깜빡이지도, 시선을 움직이지도 않은 채. 몸 전체를 석고로 뜬 사람처럼. 그 남자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음으로써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 장 그르니에가 말한 공허를 온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사람. 더 이상의, 무(無)의 인상이 있을 수 없어 보였다. 나는 그 앞에 놓인 함에 동전 몇 닢을 넣었다. 역시나 그 스스로 정한 규칙에 따라 그는 탕, 탕, 탕, 망치를 내리쳤다.


걸었다. 계속 걸었다. 여백 없이 시공간을 꽉꽉 채우고, 그도 모자라 어떻게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1분 1초도 쪼개어 살라고 외치는 대도시에서 살아오다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업으로 삼은 인간을 마주하니 가슴에 구멍이 생기는 것 같았다. 공허해서 견딜  없어질 즈음, 파란색의 점퍼를 맞춰 입은 중장년 백인 남성 무리를 마주쳤다.

트럼펫, 트럼본, 호른 등의 관악기와 드럼, 심벌즈와 같은 타악기로 구성된 합주단이었다. 어디서 건너온 사람들인진 모르겠지만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때부터 이들은 흥겨운 음악들을 연주하며 들썩이기 시작하는데, 주변에 모인 사람들은 절로 어깨와 허리, 엉덩이와 무릎을 유연하게 움직였다. 벽도, 막도 없이 시원하게 뚫린 강가로 음악이 퍼져 나갔고, 음악에 맞추어 사람들은 하나의 감정으로 빠져들었다. 어떤 생각도, 의미도, 목적도 필요 없었다. 춤을 추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신이 나서, 기뻐서, 행복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는 합주단의 표정을 보며, 나이 들어가는 남성들의 아름다움을 오랜만에 발견했다. 나이든 중장년의 남성들이 함께했을 때 이런 멋진 하모니를 우리에게 선사하는구나.

둘러보니, 혼자서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었다. 나이듦의 미학은 함께함에 있는 것일까. 어느 한 사람 두드러져 보이지 않았다. 개개인이었지만 그들은 하나의 집단으로 보였다.

Sunny, Happy Birthday To You 등 익히 알고 있는 노래들이 울려퍼졌다. 대단한 예술성이랄 것도 없었다. 그러나 즐거웠다. 모두들 그래 보였다.

‘자아’, ‘나’, ‘자기’가 그렇게까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알 무렵엔 하나의 반죽처럼 서로에게 섞여들어가는 것일까. 그렇다면 다행이다. 시간이 흐르면 시들어가는 게 자연의 이치라서. 시간이 흐르면 힘이 빠지는 게 순리라서. 시간이 흐를수록 젊어지고 팔팔해지고 기세등등해지는 게 자연의 이치였다면, 죽는 날까지 아무도 하모니를 이루며 살 생각을 하지 않을 테니까.

얼굴도 시들고 머리도 백발이 되어가고 근육도 처지고... 그렇게 자신이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대단한 존재가 아니었다는 걸 인식하게 되는 순간, 타인이 보이게 되는 것 아닐까. 그것도 아주 고마운 존재로.

당신, 고마워요. 이렇게 살아 있어줘서, 옆에 있어줘서.

인격과 인격으로 마주해줘서, 함께 인생을 연주해줘서.

생의 쓸쓸함을 공유해줘서, 궁극의 기쁨을 나누어줘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장 그르니에가 말한 공허도 알 것 같았고,

그 공허를 메우는 인간의 방법도 알 것 같았다.       

 

#유럽여행

#포르투갈 여행
#포르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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