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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ete Oct 22. 2018

포르투, 26시간 전

포르투갈 여행, 내 인생의 붉은 혁명을 찾아서 

출발을 26시간 남겨놓고 있다. 이 여행을 계획한 것은 아픈 사랑 한가운데 있었을 때였다. 짐작되는 이별의 기다림 속에서 나는 시인 선생님의 한마디가 떠올랐다. “포르투 참 좋아요. 포르투 가보세요.” 1년 전쯤 함께한 시우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선생님이 지나가다 하신 말씀이었다.


이전엔 포르투갈에 대한 특별한 감흥이 없었다. 스페인 옆에 붙은 나라. 글을 쓰는 친구가 너무 다고 했던 나라. 그런데 그날, 내 가슴속엔 그곳을 향한 열망의 불씨가 시작된 것 같다. 언젠간 가보아야 할 곳. 가보게 될 곳.



작년 말에 들어간 회사를 올해 봄에 나오면서, 몇 가지 위시리스트를 작성했었다. 그중 하나가 포르투 여행이었다. 그때 당시엔, 과연 그 꿈이 이루어질까 싶었다. 또다시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글을 쓰고 싶다는 내 오랜 꿈을 밀고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적절한 일자리를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이중생활을 해야 한다. 여하튼 어느 정도 자유로운 여건이 허락되면서 나는 아스팔트 위의 연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7월의 폭염 속에서 무작정 항공권을 끊었다. 20일가량의 일정이었다.


3개월‘이나’ 남은 여행일 줄 알았다. 예상 외로, 아니 예상대로 3개월은 화살처럼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출발선에 서서 달리기를 시작하려는 사람처럼 두근대는 심정으로 여행 준비를 마쳐가고 있다.


항공권은 일찍 끊었으나 본격적인 준비는 늦게 시작했다. 친구들의 성화에 9월 말이 되어서야 숙소를 잡았다. 늦으면 좋은 곳을 놓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상에. 1박에 2만원 정도 하는 에어비앤비라니. 마음에 여유가 생기자 또 느슨해졌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여행에 필요할 법한 운동화라든지, 울트라라이트 조끼, 동영상 짐벌 등을 하나씩 구매하는 여유를 부렸다. 여행 일주일 전이 되어서야 포르투갈에 관련된 책들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여행 가이드뿐 아니라 포르투갈의 문화와 역사· 예술에 대한 에세이, 그리고 페소아의 시집들.... 그리고 사흘 전쯤엔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보았다.

1974년 리스본에서 일어난 ‘카네이션 혁명’ 전후를 산 아마데우의 이야기를 액자식 구성으로 꾸민 영화. 스위스 베른에서 고전문헌학을 강의하며 새로울 것 없는 삶을 지루하게 이어가던 그레고리우스는 자살 기도를 하려던 한 여인의 품에서 나온 책 한 권에 강렬히 끌려 충동적으로 리스본행 열차를 탄다. 그는 충동과는 거리가 먼 사람처럼 보이는데 말이다. 리스본에서의 며칠 동안, 책의 저자 아마데우의 인생 여정을 따라가다 다시 베른으로 돌아가는 열차 앞에서 그는 자신과 동행해준 리스본의 여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생각해보면 아마데우와 스테파니아, 그들 인생에는 활력과 강렬함이 가득했던 것 같아요.”

리스본의 여인이 답한다.

“너무 강렬해서 결국 부서졌잖아요.”

“하지만 충만한 삶이었죠. 내 인생은 뭐죠? 지난 며칠을 제외하고요.”

“그런데도 다시 돌아가려 하시는군요.”

충만한 삶은 부서질 수도 있는 삶이었다. 그리고 리스본에서의 며칠 외에는 충만을 느껴본 적 없는 것 같은 그레고리우스는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가려 한다.

충만. 나는 이 여행에서 충만을 느껴보려 하는 것일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충만감은 일상의 아주 소소한 순간 가운데 한 줄기 빛이 심장을 통과하는 것처럼 일시적인 현상으로 일어나곤 했다. 그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음미할 때, 행복이라는 감각은 되살아났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포르투갈로 향하려 하는 것일까.


“내가 원해서 탄 기차가 아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아직 목적지조차 모른다.”

그레고리우스처럼 목적지조차 알 수 없는 그 여정의 메타포로, 이 여행은 시작된다.       

#포르투갈여행
#유럽여행 
#유럽배낭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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