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무엇이고, 무슨 의미가 있는가?
"여행은 무엇이고, 무슨 의미가 있는가? .... 해방이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나는 어디로 가도 그것을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은 자신이 여행하는 나라에서 이름 없는 이방인이다. 나는 내가 여행한 나라에서 익명의 여행자라는 비밀스러운 즐거움뿐 아니라, 그 나라를 지배하는 왕과 같은 명예까지도 누렸다."
('불안의 서', 페소아)
여행을 앞둔 사람들이 모두 설레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일상 속에서 큰 불만도 큰 스트레스도 없었다. 그렇다고 언제나 충만한 만족감으로 가득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살아가고 있었을 뿐이다. 그 살아감이 예전보단 더 나았었다. 나와 인격을 진솔하게 마주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나 혼자 먼 여행을 떠날 생각을 하니, 두려움부터 앞선다. 난 무엇 때문에 이 여행을 떠나려는 건가. 잘한 짓인가. 그곳에서 난 무엇을 만나고 무엇을 발견하려 하는가. 그런 목적조차 없이 가는 것 아닌가. 그렇다. 어쩌면 이번 여행은 무목적성 자체가 목적인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목적과 의미 없이는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목적과 의미에 단단한 못을 박아두었기 때문에, 오히려 자유롭지 못한 때도 있었다. 자유를 갈구하느라 자유롭지 못한 때도 있었다.
매일 가는 집앞 카페에서 여행 전 마지막으로 커피를 마셨다. 커피를 마시며 통유리 큰 창에 비친 나를 보았다. 팔자 주름이 몇 달 전보다 더 깊이 패여 있다. 나는 나를 내 내면으로 바라보지만, 그래서 내 나이를 느끼지 못하지만, 나를 내 내면으로 바라보지 않는 사람은 내 나이를 느낄 것이다. 내면으로 나 외의 다른 사람을 바라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사람의 육체를 투과하여 내면과 영혼으로 직진해야 하니 말이다.
내가 떠난다는 걸 감지한 것인지, 강아지는 유난히 시끄럽게 짖는다. 내 손길을 바란다. 잘 있어, 몇 주 동안, 이라고 말하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알아듣는 것일까. 나만의 착각일까.
패키지로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이번 역시 발길 닿는 대로 여행을 다닐 것이다. 한곳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서 그곳을 응시할 것이다. 작은 골목 골목길을 누빌 것이다. 서서 와인 한 잔을 툭 털어 넣을 것이다. 넓은 광장에서 오래오래 바다와 마주할 것이다. 파두를 들을 것이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포르투갈인들의 사우다드를 느껴볼 것이다. 그곳에서, 나의 사랑하는 이들을 떠올릴 것이다. 나보다 팔자주름이 더 깊이 패여가고 있는 선배들,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동료, 소명을 위해 자신의 삶을 다른 이들에게 드린 인생의 스승들, 그리고 밤낮없이 전화로 나와 말을 섞고 있는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 아프게 떠나 보낸 연인들. 새로 맞이할 연인(들). 머리보다 가슴으로, 이성보다 직관으로 포르투갈을 맞이할 것이다.
이제,
곧,
출발이다.
#유럽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