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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코스북(교재)은 왜 효과가 없을까?

21세기 회화 코스북과 스피킹 학습의 진화 (1)

지금까지 나온 대다수의 영어 회화 코스북들은 현지에서 영어를 공부하거나 교실 밖에서도 영어를 접할 기회가 상당한 ESL 환경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즉, 교실 내에서 교재를 통해 일정량의 언어를 학습한 뒤, 교실 밖에서 이를 자연스럽게 그리고 풍부하게 연습 내지는 실습하면서 체화하거나, 이미 생활 속에서 접하고 있는 다량의 언어를 보다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정리함으로써 보다 용이하고 정확하게 익힐 수 있도록 돕는 것을 학습 모델로 합니다. 


교실에서 교재로 공부하는 시간의 몇 배가 넘는 영어 노출과 연습량이 뒷받쳐 주면, 당연한 얘기지만 영어 실력도 쑥쑥 성장합니다. 보통 해외의 어학원에서는 주 15시간 수업 시간표를 기준으로 교재 1권을 3개월 동안 사용합니다. 따라서 보통 초급부터 중고급까지 3~4 권으로 구성된 코스북의 경우, 1년 정도면 전체 과정을 다 마친다는 계산이 나오죠. 


그런데, 안타깝게도 국내의 영어 환경은 이런 학습 모델을 구현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교실 밖에서의 영어 노출 및 연습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교실 수업에만 의존하는 경우 0이라고 봐도 무방하죠. 해외에서도 한국인들 커뮤니티 안에만 머물면서 한국어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영어 학습에 적극적이지 않은 경우, 1년 안에 초급에서 중고급까지의 성장이 쉽지 않은데, 하물며 국내는 두말할 것도 없죠.


때문에 국내에서 회화 코스북들에 대한 기대나 신뢰(?)는 상당히 낮은 편입니다. 굳이 교재를 채택하지 않거나 교사 자체 자료(handout)를 그때그때 사용하는 회화 수업이 예전에 비해 부쩍 늘어난 이유에는 그간의 회화 코스북들에 대한 실망의 반영 지분도 상당할 겁니다.


그런데, 사실 회화 코스북들 자체는 죄가 없습니다. 적합하지 않은 환경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다 전사(?)했을 뿐이죠. 국내에서 회화 교재가 제대로 사용되려면 일단 학습 기간/시간을 대폭 늘려야 합니다. 회화 외 다른 Skill 학습도 포함되었다고는 하나 영어를 사용하는 환경의 해외에서도 주 15시간 시간표 기준으로 3개월에 1권을 학습하는데, 국내에서는 주 3~5시간 시간표에 기간도 2개월, 심지어 1개월 안에 책 한 권을 마치는 시간표를 운영하기도 합니다.  교실 밖에서의 영어 노출과 연습도 턱없이 부족한데, 교실 내에서의 학습 시간도 말도 안 되게 부족하니 뭐가 제대로 될 리가 없지요.



따라서 실질적인 효과가 있는 회화 수업을 운영하려면 학습 일정 자체가 현실화되어야 합니다. 회화 코스북이 말하는 단계별로 영어 실력이 자날 수 있는 충분한 학습 시간과 기간이 배분되어야 한단 얘기죠. 


학원이나 학교 등 수업을 운영하는 측은 그저 빨리빨리 진도나 빼는 단기간 과정보다는 실제로 학생이 교실 밖에서 얼마만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파악을 근거로 그게 적합한 시간과 기간의 시간표를 제시해야 합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로 '단기간 완성'이니 '3개월 안에 네이티브 되기'와 같은 허황한 소리에 현혹되지 않고 자신이 처한 현실적인 여건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실 밖에서 해야 할 본인의 몫을 외면하고 오로지 수업에만 의지하려는 생각도 버려야 하죠. 사실 말은 쉬운데 굉장히 어려운 얘깁니다. 학원 등이 이렇게 시간표를 운영하면 망하기 딱 좋고요 (네, 경험담입니다 -.-;) 학생들은 로또 같은 요행에 항상 귀가 더 솔깃하니까요.


그럼 그냥 이대로 학원이나 학교들은 실효 없는 시간표에 영혼 없는(!) 수업을 운영하고, 학생들은 교실 밖의 열악한 환경에서 어찌할 바 없이 방치되어야 할까요?


그나마 요즘은 예전보다는 교실 밖에서 회화/말하기를 연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습니다. 테크놀로지(technology)의 발달로 해외에 나가지 않아도 외국 친구들과 화상으로 쉽게 대화할 수 있는 세상이고, 인스타그램(instagram)과 같은 소셜 미디어 등을 소통도 가능합니다. 전화 영어나 화상 영어 같은 프로그램도 앱(App) 등을 통해 좀 더 편리하고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튜브(Youtube)는 청취 능력과 영어에의 흥미를 더해줄 자료들로 가득한 보물창고고요. 이전보다는 교실 밖에서의 영어 노출 기회를 상당히 늘릴 수 있다는 얘깁니다. 



환경만 개선된 건 아니에요. 코스북들도 진화했습니다. 교실 밖 영어 사용 환경이 열악한 EFL 국가들이 주요 시장임을 인식한 출판사들도 생존(!)을 위해 학생들의 학습 활동을 돕기 위한 고민을 해 왔습니다. 그 결과 21세기의 회화 교재는 단순히 종이책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교재의 대화를 들려주는 오디오 CD 정도가 고작이었다면, 지금은 복습 혹은 자습을 위한 전용 학습 웹사이트나 APP 등 다양한 채널을 제공하며 언제 어디서든 학생들이 영어 학습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고, 여기에 담긴 내용물도 interactive 한 게임 등을 이용한 어휘 및 문장 영작 연습, 실감 나는 비디오 드라마 등 종이책이 담지 못하는 유형의 자료들로 가득합니다. 사실 이쯤 되면 종이책은 그저 거들 뿐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죠. 마치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했어...라고 말이라도 하는 것처럼 캠브리지(Cambridge), 피어슨(Pearson), 옥스포드(Oxford) 등 유수의 ELT(English Language Teaching, 영어 교육) 출판사들은 그간 쌓아온 영어 교육 연구 자료와 축적된 노하우를 21세기의 테크놀로지와 결합해서 마구 마구 쏟아내는 중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런 새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교재와 그 구체적인 내용물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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