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glish Vocabulary Organiser
English Vovabulary Organiser (EVO)는 제가 개정판이 나오면 소개하려다가 영영 나오지 않아 파묻혔던(?) 비운(?)의 교재입니다. 지난 20년간 안 나왔으니 앞으로도 안 나올 것 같습니다. 국내에는 이미 재고가 없고, 해외 직구/주문으로만 구매가 가능해 보이는데, 이런저런 수수료 때문인지 가격도 5만원이 넘습니다.
EVO의 남다른 특징과 장점
거의 모든 어휘 교재들이 표현을 제시하고 그 의미를 설명하고 예문을 보여주는 형식을 취하는데, English Vocabulary Organiser (EVO) 는 의미를 따로 설명하기보다는 매우 구체적인 대화체 예문을 이용한 activity를 통해 의미를 유추하도록 유도합니다. 원어민들과의 직간접적인 대화를 통해 표현을 접하고 의미를 깨닫는 이상적인 언어 습득/학습 원리를 교재를 통해 최대한 구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생생한 대화체 문장, 그리고 수동적으로 학생이 책을 쳐다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제(activity)를 풀면서 어휘를 익히도록 하는 능동적인 학습 방법 제시는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다른 교재들과 구별되는 특징입니다.
영어 교재는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어휘 교재는 정말 많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선 중고급 어휘라고 하면 독해나 시험을 위한 단어들이 중심이고, 교재들도 대개 그런 종류지요. EVO는 일상 속의 '말하기'를 위한 어휘와 표현에 매우 충실한 교재입니다. 이런저런 기존 교재들을 가지고 어휘 공부를 꽤 했음에도 당장의 일상 회화에서의 표현력이 영 아쉽다고 느끼는 학생이라면 지금 당장 어휘 학습의 방향을 EVO로 바꿔 볼 것을 제안합니다.
EVO의 콘텐츠를 주로 활용해서 진행한 Zoom 온라인 라이브 수업을 녹화한 영상을 공유합니다. 어떤 표현들과 어떠한 activity로 학습이 진행되는지를 직접 확인해 보세요.
그러나 아쉬운 점
이 교재의 레벨은 중급 또는 그 이상(intermediate level and above)입니다. 그런데, 속을 들여다보면 좀 혼란스럽죠. 우선, 교재에 제시된 표현들이 어려운 독해를 위한 중고급 어휘에 익숙한 한국 학생들에게는 꽤 쉬워 보일 수 있죠. 일상 대화 주제의 기본 어휘와 그 어휘들을 사용한 다양한 콜로케이션(collocation)과 실제 문장에서 사용되는 양상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언뜻 '단어' 자체만 봐선 낯설거나 어려워 보이는 것이 별로 없는 듯 합니다. 그런데, activity를 풀다 보면 이디엄(관용표현)이나 미묘한 뉘앙스를 전달하는 표현들이 제법 많습니다. 때문에 교재 표지에 for self-study(독학용)라는 부제가 붙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어적 감이나 경험이 부족한 초급 학생에게는 선생님이나 가이드의 도움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러나, 사전이나 검색을 능숙하게 병행할 수 있는 중급 학생이라면 잘 극복해 나갈 여지가 있습니다.
콘텐츠의 설계와 정돈, 편집 등에 있어서도 레벨에 맞는 정리와 구성 등이 다소 어수선합니다. 학생의 모국어로 정의를 적어 넣거나 그림을 보고 단어를 적어 넣는 activity 들은 초급 학생에게 보다 적합해 보입니다. 예를 들어 가축과 야생 동물을 주제로 한 Unit의 경우에는 너무 뻔하고 단순해서, 동물들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기보다는 동물 관련 이디엄을 중심으로 풀어가거나 각 동물의 비유적인 이미지 등을 다루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다소 억지로 끼워 넣은 듯한 activity도 있습니다. 그러나, 20~30% 정도를 차지하는 다소 맥 빠지는 이런 activity 들에도 불구하고, 실감 나는 문장을 통해 표현을 공략해 나가는 나머지 70~80% 의 activity 들은 이 책을 차마 저버리지 못하게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어 주지요.
이 교재를 모든 학생에게 두루 권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상당수 표현들이 매우 영국적이고 다소 지엽적이라는 것입니다. 제목에서도 영국식 철자인 organiser를 쓰고 있죠. (미국식 철자는 organizer) 그리고, 출간된 지 20년이 넘은 데다가 개정판도 나오지 않아서 시대적으로 맞지 않는 어휘가 종종 보입니다. 어휘뿐 아니라 예문이나 문맥 등에서도 다소 '아재스러운' 감성이 엿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 신선한 접근 방식과 '말하기'에 충실한 표현과 문장이 주는 이 책의 가능성, 그리고 열거한 아쉬운 점들이 꼼꼼한 편집과 마무리를 통해 상당히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오랫동안 개정판이 나오기를 기대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결국 길디 긴 기다림으로만 끝났지만, 구하기 조차 쉽지 않은 EVO를 뒤늦게나마 소개하고 수업에 활용하는 이유는 어쨌든 아까운 장점과 콘텐츠에 대한 아쉬움에서입니다. 더불어 어휘 교재를 찾는 분들께 교재를 보는 기준과 눈에 대한 참고가 되었으면 하고, 앞으로라도 이런 특징과 장점을 살린 교재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Youtube 쥴쌤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ehudX4jj8QuZUKy0R_tA0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