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ic Grammar in Use (BGIU) 한국어판에 대해
이미 충분히 수퍼 베스트셀러이긴 하지만 그래머인유스(Grammar in Use) 시리즈가 더 많은 학습자들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가장 결정적 이유가 있다면 바로 '영어로만 쓰였다'는 것일 겁니다. 특히, 아직 영어에 대한 부담을 떨치지 못한 초급 학습자들에게는 '영어 원서 교재'가 꽤나 높은 벽으로 인식됩니다. 따라서 베이직그래머인유스(Basic Grammar in Use)의 한국어판은 학생들에게 무척 솔깃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BGIU 한국어판을 사서 공부해야겠느냐'는 질문에 대한 저의 대답은 '글쎄요'입니다.
물론 영어를 언어가 아닌 규칙과 암기 사항으로 학습하게 만드는 방식의 기존의 여러 문법 학습서를 공부하는 것보다는 한국어판이라도 BGIU를 공부하는 쪽이 훨씬 더 좋습니다. 장기적으로 영어를 공부하는 제대로 된 토대를 쌓는다는 면에서 처음 기초 단계에서의 영어 문장에 대한 구조와 개념 이해는 아주 중요하니까요. 첫걸음부터 좋은 문법 교재를 만나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한국어판이냐 오리지널 영문판이냐의 비교라면 저는 영문판 쪽을 권하고 싶습니다.
BGIU가 좋은 이유는 단지 쉽게 되어 있어서, 단지 해외 원서 이어서가 아닙니다. 복잡한 문법 설명을 최대한 간결하게 하면서, 문법을 규칙과 사항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감각과 느낌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면에서 BGIU는 아주 훌륭합니다. 이런 직관적인 접근은 언어 학습에서 매우 의미가 있지요. 직관력을 통해 문법을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가 모국어를 배우는 원리와도 통합니다.
한국어판은 안타깝게도 이러한 직관력을 상당 부분 가로막고 있습니다. 단순한 한글 해석은 직관력이 개입할 여지를 남겨주지 않습니다. 또한 천편일률적인 한글 해석문은 말의 느낌과 뉘앙스를 내 것으로 소화하게 하기보다는, 기계적으로 암기하는 내용을 하나 더 추가하는 역할을 하기가 더 쉽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영어 설명과 문장을 내 것으로 소화하는 것이 중요한데, 즉각적인 한글 해석과 번역은 이러한 '소화'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BGIU는 그 설명하는 문장의 난이도가 극히 낮습니다. 따라서 최소한의 독해력과 사전의 도움으로도 충분히 소화가 가능합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을 두려워해선 안됩니다. 그 시간은 영어를 내 것으로 소화하는 시간입니다.
비유를 하자면, 양질의 비타민을 섭취하기 위해서는 다량의 야채를 일일이 꼭꼭 씹어 먹는 것이, 단숨에 꿀꺽 삼키면 그만인 한알의 알약보다 더 낫다고 할까요?
그러나, 영문으로만 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에 BGIU를 아예 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 정도의 상황이라면 한국어판이라도 고려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안 보는 것보다는, 규칙과 암기 중심의 다수의 기존 문법서들보다는 훨씬 나으니까요. 하지만, 정말 제대로 영어를 공부하려고 BGIU를 선택했다면 영문판으로 도전하시길 바랍니다. 사실 BGIU의 영문 해설도 전혀 해석이 안 될 정도라면 일단 PHONICS와 동화책 읽기와 같은 '기초'가 선행되어야지 한글 해석판이 근본적인 해결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중급 레벨의 Grammar in Use Intermediate 한국어판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어쨌든 만일 외롭고 힘든 '독학'을 전제로 대답한다면, '한국어판'의 존재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소위 말하는 주입식 교육의 폐해인지는 모르나, 상당히 많은 초급 독학생들이 BGIU가 의도하는 직관력 개입을 무척 힘들어하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직관적 접근보다는 좀 더 편안하고 공감 가는 설명을 통한 명확한 이해를 돕는 문법 학습을 원한다면 BGIU 한국어판이 아니라 애초부터 그러한 방향으로 설계된, 처음부터 한글로 쓰인 문법 교재를 보시는 것이 더 낫습니다. 요즘은 규칙과 임기를 앞세우지 않는 한글로 쓰인 문법 교재도 있으니까요. 규칙만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문법 개념들을 옆에서 선생님이 말해 주듯 설명해 주는 <영문법 콘서트> 같은 책도 있고, BGIU처럼 설명을 최대한 간결히 하고 다양하고 실용적인 예문과 연습문제를 중심으로 문장을 말하고 쓸 수 있게 구성한 <위런그래머(We Learn Grammar)>같은 교재도 있습니다. (각기 다른 스타일의 교재의 예를 들기 위해 제가 쓴 책들을 언급했습니다만, 이 외에도 시중에 다양한 교재들이 나와 있습니다. 이러한 교재들의 장단점은 나중에 다른 글을 통해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죠. 여기선 일단 한국어판 BGIU가 영문판 BGIU에서 아쉬운 점을 보완 혹은 대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니라는 겁니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왜 문법서가 필요하고 베이직그래머인유스(Basic Grammar in Use)가 필요한지를 생각해 봅시다. '영어'를 제대로 공부하고자 함이 아닌지요? '영어'를 말답게 제대로 구사해 보고자 하는 것이 그 이유가 아닌지요? '영어'라는 말을 배우는 방법 자체에 대해서만 생각해보세요. 본인의 편리함이나 취향이 아니라 '영어'로 가는 길만을 생각해 보면 답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편리하게 영어를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이 목적은 아닙니다. 편리함이라는 것이 분명히 매력적이지만, 그것이 본래의 목적을 흐린다면 과감히 배제하는 결단력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정말 제대로 영어를 공부할 마음을 먹었다면, '영어'를 대하는 것 자체를 꺼려서는 안 됩니다. 영어만 쓰는 미국과 영국 등으로 과감히 비행기 타고 어학연수도 가는 마당에 '영어'로만 된 책 하나를 두려워하면 '영어'를 내 말로 만드는 길은 점점 더 멀고 길어질 뿐이에요.
위 글은 2005년에 네이버 박상효의 영어카페에 쓴 "Basic Grammar in Use 한글판을 보아야 하는가?"의 업데이트 버전입니다. 기본적인 내용이 크게 변하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많이 흐른 만큼 여러 부분이 수정되었습니다. 당시 카페 회원 및 학생들의 'BGIU 한국어판'에 대한 댓글이 궁금하시면 아래 링크를 통해 원본으로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https://cafe.naver.com/satcafe/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