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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영어 강사"에 대해

To be an English Teacher [updated]

사교육과 공교육의 영역을 넘어 그동안 대한민국 영어 교육 관련 산업 전반에 직간접적으로 안 걸쳐 본 발이 거의 없다 보니, 수시로 업계 관련된 다양한 상담 및 자문을 하는 편입니다. (엊그제는 '전자칠판' 사용에 대한 상담/자문 요청을 받기도 했어요~ ^^) 그중에서도 학생들로부터 가장 자주 받는 질문 또는 상담 주제가 "영어 강사"라는 진로에 대한 것입니다. 영어 강사가 되고자 하시는 분들 뿐 아니라, 영어를 배우는 학생들의 입장에서도 "영어 강사"라는 직업에 대해 알아 두면 어떤 면으로든 학습에도 참고가 될 거란 생각에서 이에 대해 글을 한번 써 보려고 합니다.


먼저 이 글에서 말하는 "영어 강사"는 교대 또는 사범대학교에서 영어 교육을 전공하고 전국의 공립 및 사립학교에서 근무하시는 공교육 부분의 "영어 교사"와 구분되는 의미로서, 소위 '사교육' 부문에서 일하는 선생님들을 의미함을 밝힙니다. 공교육에 종사하시는 "영어 선생님"은 이 글에서 말하는 "영어 강사"에 해당하지 않아요.


"사교육"이나 "영어 강사"라는 단어가 대뜸 부정적인 이미지로 받아들여지는 분들도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일단 우리나라에서 사교육은 일종의 필요악처럼 인식이 되고 있는지라... (이에 대해서는 또 할 말이 있지만 별도로 하고) 영어 강사의 경우에도 참 멋지고 괜찮다는 이미지가 있는가 하면, 영어 좀 한다는 것만으로 쉽게(?) 돈 번다는 식의 다소 부정적인 이중적인 인식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사교육쪽의 영어 강사는 일단 '되는 것'에는 서류상의 큰 제한이 없습니다. 교대나 사범대를 나와야 하는 것도 아니고, 영어 교육 전공자만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세부 분야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대개 비전공자들의 숫자가 훨씬 더 많습니다. 학원 강사의 경우 법적으로는 전문 대학 졸업자(전공 여부 상관없음/2021년 7월 기준 updated) 또는 이와 동등 이상의 학력이 있는 자를 교육청에서 허가한 정식 강사로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 교육청에 제대로 등록되어 있지 않은 분들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특히나 파트타임으로 회화를 주로 강의하는 강사들의 경우가 심하지요. 면접 시 학력 사항을 꼼꼼히 보지 않거나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면이 큽니다. 강의 능력이 우선이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학력과 강의 능력의 상관관계가 그리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습니다. 특히 해외 유학생이나 교포 강사들의 경우 아직 졸업하지 않은 재학생인 경우도 많지요. 여하튼 '서류'상의 자격 요건이 일반 회사 입사 기준보다는 많이 엄격하지 않습니다. 주기적으로 학력을 위조한 영어 강사 문제로 사회가 떠들썩하곤 하는데, 사실 '속였다'는 그 자체에 대한 배신감과 별개로, 그들의 '실력'에 대한 논란은 좀 생각해 봐야 할 사항입니다 이 세계는 철저하게 맨몸으로 직접 학생들과 부딪치는 곳이거든요. 졸업장이고 뭐고 그것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느냐로 승패가 좌우됩니다. 졸업장, 소위 학력이 화려해도 실전에서 엉망이면 고용주도 학생도 외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교육계의 장점이자 단점이지요. 혼란하기 짝이 없는 정글이지만, 승부는 확실하게 가른다는 것.

사교육쪽의 영어 강사에게서 중시되는 - 종종 졸업장보다도 - 외적/물리적 요건 중의 하나는 '나이'와 '성별'입니다. 엄격한 성차별과 연령 차별이 존재하는 세계가 바로 여기랍니다. 입시나 시험 강좌 같은 경우에는 남자 선생님이나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이 오히려 더 환영받는 수도 있지만, 일반 어학원이나 기업체 출강 등에서는 소위 젊고 이쁜 여자 강사가 절대적으로 선호됩니다. 초등생 이하 어린이 영어 학원도 외국인이 아닌 이상 남선생님 보기 힘들지요. 실력으로 극복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아예 붙어 볼 기회조차 주지 않기에 문제지요. 뭐, 부당함이나 비합리적인 부분들에 대한 말을 하자면 끝도 없어요. 그냥 객관적인 현실이 그렇다는 말씀만 드립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사교육계는 정글입니다. 이거 저거 따지고 이상적인 얘기 해 봐야 소용없습니다. 힘세고 날카로운 발톱이 이긴다는데 어쩌겠습니까? -.-; 

 

이 외에 영어 강사로서 유리한 외적 조건이라면, 바로 국적이나 해외 경험 등입니다. 졸업장보다는 해외에서 얼마나 거주했느냐가 좀 더 주목받는 사항이 되곤 하지요. 그 강사의 실력을 받쳐줄 실제 '영어'를 가늠해 볼 가장 간단한 기준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이왕이면 소위 "Native" 외국인이 제일이고 토종 한국인보다는 교포가 낫고, 같은 졸업장이면 외국 것이 더 낫고... 뭐 이런 공식이 성립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별도로 길게 얘기하기로 하지요. 다만, 이런 것들이 생각보다 그렇게 효과적인 '실력'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지 못할 때가 더 많다는 것만 살짝 귀띔해 둡니다.

 

영어 강사의 직업 안정성은 "아주 별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젊은 여자 강사가 선호되다 보니, 평생의 직업으로 끌고 가기에도 힘들고, 안정적인 Full Time 직업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더 큰 남자분들에게도 매력적인 직업이 아닙니다. 그래서 대개 잠깐 스쳐가는 직업으로 영어 강사를 많이 하지요. 저 또한 이십 년에 육박하도록 이 쪽의 일을 해 오고 있습니다만, 저랑 함께 일했던 친구들 중에 아직도 영어 강사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대개 다른 직업의 기회가 오면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영어 강사들입니다. 여자 강사들은 상당수가 '결혼'을 기점으로 일을 접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자 강사들은 대개 강사일로 번 돈으로 새로운 사업을 하거나, 이 계통에 남을 경우 '학원'을 하나 차리게 되지요. 아니면, between jobs 상태 혹은 full time 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손쉽게 얻을 수 있는 파트타임 일거리로 가장 선호되는 것이 영어 강사입니다. 소위 '지나가는' 임시직이죠. 어쨌든 현장에서 뛰는 강사들 중에 이 일을 평생의 일로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자의건 타의건 쉽지 않은 여건이거든요. 

 

회사처럼 오래 다닐 수 있는 '터'가 별로 없다는 점도 영어 강사의 직업 안정성을 낮추는 큰 요인입니다. 내가 원장이 아닌 한 평생을 일할 수 있는 '학원'이 몇이나 될까요? 학원이라는 비즈니스 자체가 회사만큼 안정적으로 지속되기 어렵다는 점도 있지요. 영어 강사들은 대개가 시간당으로 산정되는 급여를 받는 계약직입니다. 일반 회사와 같은 번듯한 정규직 대우를 해 주는 학원을 만나기 쉽지 않고, 외형적으로 그렇다 해도 일반 회사보다는 많이 불안정합니다. 언제든 나갈 수 있고 짤릴 수 있는 것이 영어 강사란 직업이거든요. 학원이 아닌 출강을 전문으로 하는 경우는 더욱 그렇지요. 언제든 일이 끊기면 그대로 은퇴할 수도 있는 것이 영어 강사입니다. 어린이나 청소년 대상의 학원, 메이저급 대형 학원에서 자리를 잡은 경우는 그래도 몇 년 정도 꾸준히 안정적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 중소형 특히 파트타임 시간대 운영이 불가피한 성인 대상의 회화 중심 어학원들은 한두 명의 강사 말고는 1-2년만 눌러앉아도 꽤 오래 일했다고 할 정도로 강사 이동이 잦습니다.  

 

제가 이 직업의 현실에 대해 가장 안타까워하는 점은, 정말 학생들을 사랑하고 평생을 가르치고자 하는 사람에게 걸맞은 자리와 기회가 없고, 드물게 좋은 자리와 기회가 생겨도 거기에 걸맞은 준비된 선생님을 찾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선생님들도 이 일을 진정한 직업으로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다수의 일자리나 고용주들도 선생님들을 일종의 소모품으로 여기고 있지요. 한마디로 양질의 일자리와 우수한 인재가 만나기가 개기일식처럼 드물다고 해야 할까요?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영어 강사란 직업은 academic 하면서도 관료적인 졸업장이나 학벌에 상대적으로 훨씬 덜 좌우되고, 한 직장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이 있으며, 영역에 따라 다르지만 시간이나 수입 면에서의 융통성이 많습니다. 사회에서 늘 이슈가 되고 있는 '영어'를 직업으로 한다는 면에서의 자긍심이나 주위의 동경(?) 같은 것도 긍정적 요소라고 할 수 있겠네요. 무슨 일이든지 장단점이 있겠지만, 이런 장점은 다른 직업보다 상당히 월등한 면에 있습니다.


반면 퇴직금이나 보너스와 같은 혜택을 기대하기 어려운 프리랜서 계약직의 단점을 있는 대로 다 갖고 있으면서, 오랫동안 하면 할수록 대우를 받는 다수의 다른 전문직과 달리 경력이 느는 것과 비례하여 나이가 드는 것이 불리한 점으로 작용하는 부정적인 측면을 갖고 있는 것이 영어 강사라는 직업입니다.

 

자격 요건이 까다롭지 않아 영어만 갖고도 쉽게 진입할 수 있는 직업이지만, 무엇보다 신중하게 고민하고 선택해야 할 직업이기도 합니다. 쉽게 들어온 만큼 다시 타 직종으로 옮길 시에 그다지 경력에 대한 혜택을 받기 어렵고, 오래 한다고 단계적인 승진이나 수입의 개선 같은 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도 않습니다. 

 

진입 장벽이 낮다고 다른 장애물들마저 낮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장애물이 높은 만큼 그것을 뛰어넘었을 때의 얻어지는 것도 더 클 수 있습니다. 다만 다른 직업의 선택처럼 이 영어 강사라는 직업도 좀 더 신중하게 선택되고, 그만큼 진지하게 수행되었으면 하는 것이 이 분야에서 오랫동안 몸 담아 온 한 사람으로서의 작은 바램입니다. 현재의 학생, 미래의 후배 또는 동료들에게 참고가 되기 바랍니다.  



위 내용을 바탕으로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후속 영상에서 좀 더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볼 예정입니다)

https://youtu.be/RFXR9uyw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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