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피아의 도시에서 클래식을 봤다

Palermo – 정복자와 피정복자가 함께 앉은자리

by 헬로 보이저

티레니아 해(팔레르모 항구) 산 도메니코 교회

팔레르모 시내 공공 분수. 노르만 궁전.


빌라 보나노 공원. 비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골목.




팔레르모 대성당 내부. 팔레르모 대성당 외관. 노르만 왕조 무덤 석조 조각


팔레르모 시청.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광장.

크루즈에서 내리자마자,

눈을 찌를 듯한 햇살이 쏟아졌다.

나는 검은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팔레르모의 햇빛은 그저 따뜻한 걸 넘어,

정직하게 모든 것을 드러내는 빛이었다.

그건 단순한 날씨가 아니라,

거짓말이 허락되지 않는

이 도시의 태도 같았다.


나는 영화 <대부>처럼

말없이 흘러가는 이 도시를

천천히 눈에 담고 싶었다.

마피아의 도시라 불렸지만,

그 겉말보다

안쪽 풍경이 더 궁금했다.

북부의 도시들은 늘 정리되어 있었다.

예술, 르네상스, 산업.

보여주기 위해 존재하는 도시들.

하지만 남쪽, 여기는 달랐다.

보여주지 않는다.

그냥, 있다.

살아온 흔적 그대로.

빛은 강했고,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길은 낡았고,

사람들의 걸음엔

세월의 무게가 묻어 있었다.


시장 골목을 지나던 순간,

복숭아 향이 뺨을 스쳤다.

과일을 쌓고 있던 아주머니는

장갑을 낀 손으로 귤을 골라 건네며,

“Buongiorno” 하고 인사를 건넸다.

말 한마디였는데,

팔레르모는 그 순간,

이방인을 품는 도시가 되었다.


나는 4킬로를 걸어

노르만 궁전에 도착했다.

겉은 성채처럼 단단했지만,

문을 통과하자마자

겹겹이 쌓인 시대들이

숨도 쉬지 않고 나를 맞이했다.

9세기 이슬람 양식으로 지어진 왕궁 위에,

11세기 노르만이 로마네스크를 얹고,

르네상스와 바로크가

덧칠하듯 쌓여 있었다.

이 궁전의 방식은,

지우는 게 아니라, 덧입히는 것.

내가 걷는 복도에는

무어인의 별무늬 천장,

기독교 성화,

중세 고딕 아치가

서로 어깨를 맞대고 있었다.

충돌 대신,

묵묵한 공존이었다.

권력은 바뀌었지만,

아름다움은 포기되지 않았다.


정복한 자와

정복당한 자가

한 건물 안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깊고 묵직하게 다가왔다.

그날 나는,

돌의 무게와 함께

시간과 잔혹함,

그리고 남겨진 것들의 품위를

천천히 마주했다.


돌아오는 길,

작은 광장의 카페에 앉아 있었다.

검은 셔츠를 입은 남자가

에스프레소를 두 잔 마시고

말없이 사라졌다.

그 장면엔 아무 일도 없었는데,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도시를 만든다는 걸

팔레르모는 가르쳐주었다.


내가 알던 아름다움은

파리의 미술관이나

로마의 대성당 속에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팔레르모는

부서진 것들 사이에

진짜 아름다움이 있다고 말했다.

우아함은

낡은 건물 안에 숨어 있었고,

클래식은

그늘 속에서 빛났고,

영혼은

조용한 돌담에 걸려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이탈리아에서 본 도시들 중,

이곳이 가장 마음에 든다.

시칠리아는 겉은 누아르였고,

속은 사람 냄새로 가득했다.

그래서 나는, 이 도시가 좋았다.


콰트로 칸타 인근 건물. 팔레르모 중심 주택가 거리 팔레르모 현지 카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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