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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카, 비의 도시에서 날개를 접다

잊히지 않은 용기, 클링깃의 용맹

by 헬로 보이저

Tlingit Tribal Tours 버스. 머드 만.

Sitka National Historical Park (국립공원) Alaska Raptor Center(새들 보호소)

부엉이 수리 등 맹금류 새들


Bald Eagle (흰머리 독수리)


어젯밤부터 비가 내렸다.

쉬지 않고, 조용히.

그러나 깊고 길게.


항구로 향하는 동안

차창엔 빗물이 흘렀고,

엔진의 진동 위로

파도 소리와 빗소리가 겹쳐졌다.


우리는 흰 스쿨버스를 개조한 차를 타고

**머드베이(Mud Bay)**로 향했다.

짙은 구름 아래로 들어서자

창밖은 흐릿했고, 바다는 잿빛이었다.


말없이, 천천히.

우리는 비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


머드베이를 바라보며

우리는 상상했다.

이 조용한 만이

한때 **거센 전투의 현장**이었다는 것을.


1802년, 이곳은

**‘킥사디(Kiksadi)’ 클링깃(Tlingit)** 원주민과

러시아 상인 간의 피비린내 나는 충돌이 있었다.


모피 무역을 차지하려던 러시아인들은

이 땅의 주인들을 몰아내려 했고,

총과 대포, 화약이 터지며 불이 났다.


그러나 클링깃은

끝내 굴복하지 않았다.

그들은 물러섰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러시아가 시트카를 점령하고 수도로 삼은 후에도

이 땅은 결코 조용히 복종하지 않았다.


아무리 땅을 차지해도,

**마음까지 점령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비 내리는 머드베이 앞에 서서

나는 그 시절을 떠올렸다.


비가 그치지 않던 어느 날,

자신의 땅을 지키기 위해 물러서던 사람들.


그들의 발자국이

지금 이 숲 아래 어딘가에

아직 남아 있을 것 같았다.


---


싯카는

러시아 정교의 흔적과

클링깃의 시간이 함께 숨 쉬는 도시다.


성 미하일 대성당의 둥근 지붕,

러시아풍 나무 건물들,

그리고 토템 기둥 아래 젖은 땅.


도시는 조용히 축축했고,

그래서 더 선명했다.


비는 오래된 이야기들을

하나의 결로 잇고 있었다.


우리는 **국립사적공원(National Historical Park)** 으로 들어섰다.

숲은 젖어 있었고, 공기는 두터웠다.


토템 기둥들은 빗물을 머금은 채

더 짙은 색으로 서 있었다.


비는 천천히, 꾸준히 내렸다.


우산 아래로 걸음을 옮길수록

세상의 소리는 작아지고,

감각은 더 예민해졌다.


숲을 걷는다는 것은

말을 줄이고,

**느낌으로 대화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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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두 시.


우리는 **랩터 센터(Raptor Center)**에 도착했다.

깊은 숲 안, 젖은 흙길을 따라 걷다 보면

다친 새들이 조용히 머무는 공간이 있다.


그곳에서 우리는 **흰머리독수리(Bald Eagle)**를 만났다.


깃털은 축축했고,

눈빛은 날카롭고 고요했다.


비와 바람,

고통과 기다림.

모든 것이 그 눈동자 안에 고여 있었다.


날개는 접혀 있었지만,

**존엄은 여전히 날아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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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새들은

모두 구출된 생명들이었다.


다친 날개, 총알에 찔린 다리,

그리고 인간이 남긴 흔적들.


그럼에도

기적처럼 살아남은 존재들.


센터의 직원들은

각 새의 이름을 기억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가족처럼 전하며,

언젠가 다시 하늘로 돌아가길 바라며

하루하루를 함께 버텨내고 있었다.


그날 가이드는 우비도 없이

쏟아지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우리를 이끌었다.


연어의 생애와 회귀 본능,

생태계의 순환,

사람과 자연의 공존.


젖은 머리칼 아래로

그의 눈은 반짝였다.


나는 문득,

그가 이 머드베이를 지나던

한 전사의 후손 같다고 느꼈다.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지켜내는 방식으로.


이 도시는

그렇게 기억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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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시.

비는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한 무대 위에 서 있었다.

싯카는 더 이상 배경이 아니었다.

숲과 바다, 하늘,

그리고 비가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하하고 있었다.

여행의 마지막 장면은 조용했고,

그래서 오래 남았다.

> **비는 모든 상처의 언어였고,

>싯카는 그 언어를 끝까지 품은 도시였다.**


곰 주의 경고판. 전통 가면 조각. 클링깃 사람들의 흑백사진

가이드의 시트카 설명

비 내리는 숲길

건너 시트카 마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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