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템 마을의 침묵— 한 아이의 죽음과, 그날 아침의 맑은 하늘
바다에서 섬으로 이동 중
토템 마스터를 한 시간째 기다리는 우리들
클라워크 토템 마을
2025년 8월 13일, 클라워크.
알래스카 여정의 마지막 아침.
우리는 원주민 전통 마을에서
토템을 만드는 장인을 보기 위해
유난히 맑은 햇살 속 숲으로 향했다.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조용히 둘러섰지만,
토템 마스터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잠시 후, 이유가 전해졌다.
우리가 도착하기 불과 한두 시간 전—
이 마을에서 토템을 배우던
**열여섯 살 원주민 소년이 스스로 생을 멈췄다**는 소식이었다.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고,
누구도 자리를 먼저 떠나지 않았다.
그날,
알래스카의 하늘은 믿기지 않을 만큼 맑았다.
바람은 차가웠고, 숲에는 그늘이 없었다.
그 모든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나는 오히려 더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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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은 전설과 전투, 생존과 믿음이 얽힌 곳이다.
원주민 **클링킷(Klingit)** 부족은
외세에 맞서 싸우며
토템으로 믿음을 새기고 세대를 잇는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은 그 믿음을 지킬 수 없는 세상과 마주하고 있다.
> “이 섬에서 평생을 살아야만 하나요?”
> “밖으로 나가면, 나를 받아주는 세상이 있을까요?”
360일 흐린 하늘,
배를 타야만 다른 땅을 볼 수 있는 섬.
일자리는 관광과 목공예뿐,
미래는 좁디좁은 원 안에서 반복된다.
그리고 그날,
한 아이는 너무 이른 질문 속에서
너무 깊은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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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한때 **얼음의 나라**였다.
그러나 지금,
알래스카의 빙하는 매년 3미터 이상씩 녹고 있다.
사라지는 얼음과 함께
전통과 생태계, 그리고 아이들의 희망도
조금씩 무너져 간다.
빙하가 사라지면 강의 흐름이 바뀌고,
연어는 돌아오지 않으며,
곰과 독수리는 굶주린다.
이건 단순한 기후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의 기억과 존재 방식이 사라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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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믿고 싶다.
이 땅의 마지막 얼음이 사라지기 전에,
이 이야기를 누군가는 기억해 줄 거라고.
그리고 언젠가,
이 아이들의 질문에
세상이 진심으로 답해 줄 거라고.
여행은
그저 풍경을 담는 일이 아니다.
때로는
말해지지 않은 침묵과
보이지 않는 질문을
기억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이 마지막 장면까지 써두기로 했다.
> **그 아이의 이름은 몰라도,
> 그 아이의 질문은 잊고 싶지 않아서.**
"빛은 여전히, 북쪽에서 온다."
클라워크 항구
클라워크 숲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