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인즈, 독수리와 토템이 지키는 항구
알래스카 북부 피오르드, 흐르는 빙하와 원시 숲
하이더 마을 전경 국립공원. 셔틀버스, 내부가 통유리로 된 자연 관찰 버스
알래스카 국경 입구. 미국-캐나다 국경, 하이더 초소
칠캣강 산책로, 독수리 서식지 인근. 알래스카 하이더 강변, 흐린 날의 낮은 구름
바뀐 버스. 원주민 예술 문화센터, 전통 토템 벽화
수도 주노를 지나 잠든 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니 작은 항구 마을 **헤인스(Haines)**에 닿아 있었다.
밤새 내리던 비는 여전했고,
투어가 취소되는 건 아닐까 마음을 졸였다.
그때, 부두에 낡은 노란 스쿨버스 한 대가 서 있었다.
창문은 뿌옇고 계단은 삐걱거렸으며,
차체엔 40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설마 이걸 타고 캐나다 국경까지?”
우리는 반신반의하며 버스에 올랐다.
그 버스는 정말로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이 있는 고지대**까지
우리를 데려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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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헤인즈 시닉 바이웨이(Haines Scenic Byway)**를 따라
천천히 산을 올랐다.
비에 젖은 숲, 구름에 숨은 산,
눈 덮인 능선들이 창을 스쳐갔다.
도착한 곳은 **해발 1,065m.**
표지판 하나, 작은 체크포인트가 국경을 알렸다.
그 선을 넘자 공기의 냄새가 달라졌다.
> “여름이면 수백 대가 이 도로를 넘어갑니다.
> 국경이 아니라, 계절과 시간을 건너는 길이죠.”
가이드는 그렇게 말했다.
우리는 구름과 맞닿은 설산 같은 풍경을 마음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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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다시 움직이자,
창밖으로 넓은 강과 습지가 펼쳐졌다.
> “이곳은 **북미에서 독수리를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는 곳** 중 하나예요.
> 가을이면 수천 마리의 흰머리독수리(Bald Eagle)가 이 강가에 모이죠.”
지금은 여름이었지만,
이미 몇 마리가 강 위를 원을 그리며 날고 있었다.
그 거대한 날개가 빗방울 사이를 천천히 헤치며 떠가는 모습은,
하늘이 직접 쓴 필체 같았다.
이곳의 사람들은 **독수리가 계절을 여는 신호**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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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
낡은 버스가 도로 한복판에서 큰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브레이크 고장이었다.
그러나 **37명 중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가이드는 무전으로 새 버스를 요청했고,
우리는 근처 캠프장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샌드위치와 감자, 종이컵에 담긴 커피.
연어가 뛰는 호수를 바라보며,
독수리가 강 위를 가로지르는 장면을 오래 바라보았다.
한 시간쯤 뒤 새 버스가 도착했다.
하늘은 이미 파랗게 개어 있었고,
햇살이 산 능선을 따라 천천히 내려앉았다.
오래 기다린 만큼 더 깊게 다가온,
**선물 같은 하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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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비가 그친 후 우리는 헤인스 언덕에 올랐다.
거기서 본 바다는 이상했다.
정확히 두 가지 색으로 나뉘어 흐르고 있었다.
한쪽은 짙은 회녹색,
다른 한쪽은 연한 회청색.
두 물줄기는 서로 섞이지 않고 나란히 흘렀다.
> “이건 강에서 흘러온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이에요.
> 알래스카엔 이런 만이 곳곳에 있어요.
> 바다와 강이 서로를 밀어내듯 흐르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두 계절이 나란히 흐르는 바다**를 보고 있었다.
서로 다르지만, 함께 흘러가는 풍경.
헤인스는 그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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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인스는 약 1,700명이 사는 조용한 마을이다.
여름이면 크루즈 배가 잠시 들르고,
가을이면 수천 마리의 독수리가 돌아온다.
이 마을엔 매년 **알래스카 밸디 이글 페스티벌(Alaska Bald Eagle Festival)**이 열린다.
전 세계의 탐조가들과 사진작가들이 몰려들고,
아이들은 학교 대신 독수리 관찰 수업에 나선다.
> “이 마을은 날씨보다
> 독수리의 움직임으로 계절을 판단해요.”
독수리가 강 위를 돌기 시작하면 —
곧, 비가 그치고 햇살이 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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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인스에는
거대한 마트도, 체인 호텔도 없다.
하루에 문 여는 카페는 한두 곳뿐이고,
작은 도서관엔 누군가의 손글씨로 적힌 팝업 전시가 열린다.
사람들은 자연의 흐름을 따라 일한다.
어떤 날은 낚시를,
어떤 날은 도예를 한다.
**누가 더 많이, 빠르게 사는가보다
무엇이 나를 오늘 기쁘게 하는가가 중요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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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본 바다는,
내게 말없이 물었다.
> “우리는 왜 같아지려고만 했을까.”
> “섞이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 너는 언제 알았니?”
그 질문은
독수리가 날아가는 하늘에도,
바다가 겹치는 선에도 담겨 있었다
.
우리는 한 시간 동안
그 두 빛깔의 바다를 바라보았다.
아무 말 없이,
그저 **지구가 건네는 말을 듣는 시간.**
**헤인스는,**
말보다 오래 남는 풍경으로
살아가는 방식을 가르쳐준 마을이었다.
섞이지 않는다는 건,
다르다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빛깔을 지킨다는 뜻이었다.
칠 카트 트레일, 가을의 초입을 알리는 나무길. 손끝이 가리키는 빙하의 방향
흰 독수리 보호구역 표지판
Alaska Chilkat Bald Eagle Preser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