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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와 네바다에서, 부동산으로 25년을 걸었다

나는 무너졌고, 다시 세계를 걷기 시작했다

by 헬로 보이저


나는 13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영어 한마디 못했던 나는,
새 학교의 복도 끝에 앉아
말을 잃은 채, 매일 도서관 책상에 웅크려 있었다.

공부보다 먼저 배운 건,
두려움을 숨기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낯선 땅에서, 나는 아이에서 어른이 되었다.

그곳이 내 첫 인생의 시작이었다.
캘리포니아와 네바다.
미국 서부의 땅 위에, 나의 청춘과 꿈을 쏟아부었다.

나는 무너졌고, 다시 세계를 걷기 시작했다

무너졌고, 다시 세계를 걷기 시작했다.


캘리포니아와 네바다, 첫 인생이 시작된 곳.

미국, 캘리포니아와 네바다에서

25년 동안 부동산 전문가로 살았다.

라스베이거스의 MGM, 코즈모폴리턴, 트럼프 타워 콘도텔까지.

VIP 고객들과 계약을 성사시키며

‘10 million dollar deal을 해낸 중개인’라는 별명도 붙었다.

잡지에 실리고, 방송에도 나가고,

이름으로 분양받은 콘도도 있었다.

모두가 부러워할 삶이었다.

그 시절의 모습은, 성공한 여성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모든 것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붕괴와 함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졌다.

거품은 터졌고,

수많은 디벨로퍼들이 무너졌으며

고객들은 하나둘씩 사라졌다.

그리고 결국, 벼랑 끝으로 떨어졌다.


그 시기, 결혼도 끝났다.

클레어의 아빠와의 이혼.

삶은 완전히 바닥에 닿았다.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던 1%조차 받지 못했다.

단지 수수료가 아니었다.

존엄이자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 순간, 누구도 아닌 사람이 되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작은 부동산 사무실에 조용히 앉아

감정 없이 일만 했다.

3년 동안은 일, 도서관, 호수공원.

오직 그 셋만 오갔다.

미국의 넓은 집에서 살다

화장실만 한 오피스텔로 옮겨갔다.

그 작은 공간에서

10년 만에 처음, 푹 잠들었다.

그 후, 다시 천천히 일어섰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조금씩 삶을 다시 쌓아 올렸다.

이혼 당시 여섯 살이던 클레어는

어느덧 대학교 3학년이 되었다.

여행을 시작한 건

그 아이가 대학교 1학년이던 해였다.

어느 날, 클레어가 말했다.

“엄마, 나 행복해요.

이제 엄마 인생 사세요.”

그 말 하나가

모든 결정을 바꿔놓았다.


지구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무언가를 증명하려는 여정이 아니라,

살아 있기 위해 시작한 회복의 여정이었다.


코로나가 끝나고

다시 열리는 하늘길 앞에 섰다.

하지만 세상은 달라져 있었다.

기후 위기, 전쟁, 분열…

지구는 여전히 아팠고

그 안에서 스스로의 자리를 묻는 시간이 찾아왔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세계의 문은 언제든 닫힐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멈추지 않기로 했다.

사라져 가는 세계,

그리고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를 나.

그전에 이 세상을 걷고 싶었다.


그 여정 속에서

내 이야기를 남기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아직도 걷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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