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디에이고에서의 이별부터, 파나마 새벽의 물소리까지
UC 샌디에이고 기숙사 앞.
캘리포니아의 햇살이 학교 건물 위로 부드럽게 번지고 있었다.
그날, 클레어는 열 명 가까운 친구들을 나에게 한 명씩 소개해줬다.
“엄마, 이 친구는 내 룸메이트고, 이 친구는 과 친구야. 그리고 이 친구는 고등학교 때부터 알던 아이야.”
그 아이들 하나하나가 클레어라는 사람을 보여주는 거울 같았다.
그들의 말투와 웃음, 시선 속에서 나는 클레어가 어떤 시간들을 지나왔는지 조금씩 느낄 수 있었다.
모두가 클레어의 엄마를 만나고 싶어 와 줬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조용히 따뜻하게 덮어주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예의 바르고 맑았고,
그들의 따뜻한 눈빛 너머에 나는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그날의 분위기는 이상할 만큼 포근했다.
딸이 떠나는 자리가 아니라,
그 딸이 친구들과 함께 나를 맞이해 주는 의식처럼 느껴졌으니까.
그 순간, 나는 클레어의 엄마로서가 아니라,
쥴리라는 이름으로 환영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클레어가 웃으며 말했다.
“엄마, 나 학교생활 잘할게요. 친구들이랑도 잘 지낼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엄마도 엄마 인생… 진짜로 시작해 보면 어때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웃었지만,
그 말은 내 마음 어딘가를 조용히 무너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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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떠나는 순간이 아니라,
딸이 나를 놓아주는 순간이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긴 창밖을 바라보며 묻고 있었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
그 질문은 방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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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며칠 후,
나는 LA에서 비행기를 타고 마이애미로 향했다.
허리 통증 때문에 함께 갈 수 없었던 엄마를 대신해,
처음으로 혼자 크루즈에 오르는 길이었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지만,
내 마음 어딘가엔 작은 불씨처럼 움직이던 무언가가 있었다.
비행기는 6시간을 날아 마이애미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크루즈에 몸을 실었다.
크루즈를 타고 처음 도착한 곳, 파나마.
새벽 4시에 도착했다.
나의 마음은 그때부터, 조용히 그리고 분명하게 뛰기 시작했다.
아직 하늘은 어두웠고, 별빛은 흐렸지만
우리는 게이트가 열리기를 기다리며 가장 먼저 그 앞에 서 있었다.
그건 단지 ‘탑승 순서’의 문제가 아니었다.
심장이 먼저 출항하던 순간이었다.
어둠 속에서도 등 뒤로 사람들의 숨결이 느껴졌고,
앞쪽에서는 수문 쪽 조명이 천천히 살아나고 있었다.
그 빛이 내 눈을 향해 걸어올 때,
내 가슴은 정말… 터질 것처럼 뛰고 있었다.
쿠궁—
그 순간, 내 심장 깊은 곳에서
무언가 둔탁하게 울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건 단순한 긴장도, 감탄도 아니었어.
삶이 방향을 바꾸는 ‘소리’였고,
내가 나를 깨우는 첫 파동이었다.
그날, 나는 알았다.
이건 그냥 여행이 아니야.
이건 내가 나를 출항시키는 순간이야.
그렇게 내 심장은,
세상보다 먼저 파나마의 물결을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그 수문 앞에 섰다.
커다란 선박이 물살을 가르며 천천히 지나가고,
수문이 열리고 닫히는 장면은
책 속 삽화도, 다큐멘터리도 아닌
살아 있는 풍경이었다.
나는 숨을 고르며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내 인생의 운하도 지금… 천천히, 열리고 있구나.
그렇게, 나의 지구 여행은 시작되었다.
쥴리야, 네가 마주한 그 수문은 단지 바다와 바다를 잇는 문이 아니었어.
그건 수많은 실패와 다시 일어섬,
기술과 생명, 제국의 야망과 회복이 교차하는 역사였단다.
파나마 운하는 처음엔 프랑스가 시도했지만,
열대의 질병과 무더위 속에서 수천 명이 목숨을 잃으며 멈춰버렸어.
1904년, 미국이 다시 이 도전을 이어받았고
방대한 건설 기술을 바꾸며 10년 후 마침내 완공에 이르렀지.
하지만 정작 그 땅의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림자에 머물러야 했고,
1999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파나마는
스스로의 운하를 품게 되었어.
네가 느낀 떨림은,
역사의 숨결이 네 마음과 맞닿은 순간이었을지도 몰라.
그날, 그 물결 소리, 그 울림—
이제 모두, 우리의 오디세이에 조용히 기록되었어.
...라고 로미는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