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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우 Aug 26. 2021

최초의 코스 요리는 프랑스 요리?

음식으로 보는 동, 서양이야기

유럽에서의 여행 중 파인 다이닝 식당을 간다거나 이름 있는 프렌치 또는 이탈리안 식당들을 가보면 대부분 요리의 구성이 코스 요리로 짜인 곳들이 보통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가 대게 떠올리는 서양 요리의 이미지 또한 한상 차려놓고 밥과 반찬을 같이 먹는 한국 음식과는 달리 코스로 조금씩 조금씩 나오는 ‘이거 먹고 배가 부르려나?’하는 코스 요리의 이미지가 제일 강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래도 서양 요리의 종주국으로써의 이미지를 프랑스가 가져감으로써 프렌치 가스트로노미의 형태가 지금 곳곳의 고급 식당들의 코스 요리의 형태를 갖추게 해준건 사실이며 따라서 코스 요리 또한 프랑스에서 처음 시작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자연스레 따라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선 프랑스 코스 요리의 기본적 구성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아뮤즈 드 부쉬 ( Amuse de bouche )


직역하면 ‘입술의 즐거움’이라는 뜻으로 식사를 제대로 시작하기 전 입맛을 돋우기 위해 한입거리로 먹는 스낵류의 음식들을 말한다. 손으로 집어 먹는 핑거 푸드의 형태로 나올 때도 많고 대부분 차갑게 서빙되는 게 보통이다. 코스가 길거나 고급 식당의 경우 아뮤즈 드 부쉬만 맡아서 담당하는 파트가 따로 존재하기도 한다.


고전 프랑스 요리로 가자면 치즈를 넣고 짭짤하게 슈 형태로 만든 구제르(Gougère), 생 야채에 마요네즈 등의 디핑 소스를 찍어먹는 크뤼디테 (Crudité), 석화 요리 등이 있다


-엉트레 ( Entrée )


정식 애피타이저 요리들로 엉트레는 프랑스어로 ‘입구’라는 뜻을 의미하기도 한다. 코스의 길이에 따라 한가지만 선보일 때도 있고 길게는 여러 가지 전채요리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수프 등의 뜨거운 음식들이 나가는 경우가 있지만 대게 차가운 음식들인 경우가 많고 샐러드와 같은 야채 위주의 음식들이 엉트레에 등장하는 느낌이 강하다.


세계 3대 진미 중 하나로 꼽히는 프와그라(Foie gras) 또한 메인보다는 엉트레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고 일식에 영향을 많이 받은 현대 프랑스 요리에 와서는 세비체 또는 생선 타르타르 같은 날 생선 요리 또한 쉽게 볼 수 있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뿌아쏭( Poisson )


첫 번째 메인 음식으로 항상 생선 요리가 등장하는데 육류에 비해 생선의 맛이나 향이 덜 무겁고 진함으로 생선이 육고기에 앞서 메인의 시발점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파리의 경우 수도인 만큼 전국의 모든 재료가 모이는 곳이라 하지만 지방에서 식사를 할 경우 생선 요리를 통해서 지역색이 크게 느껴지는 경우도 많다. 내륙 지방에 있는 리옹(Lyon)의 경우 민물고기 요리들을 흔히 볼 수 있으며 남부 프로방스 쪽으로 갈 경우 지중해에서 잡히는 생선 요리들이 흔하며 대서양을 끼고 있는 남서부나 북쪽의 경우 그 지역의 특색 있는 생선들이 오르는 경우가 많다. 


-비앙드( Viande )


메인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육류 요리 코스로 한국에 비해 먹는 육고기의 종류가 다양한 프랑스인만큼 비둘기, 토끼, 뿔닭, 염소 등의 육류 또한 메인의 가장 중요한 코스로 나오는 경우도 많다. 어찌 보면 코스 요리 중 가장 중심이 되는 파트이다 보니 여담으로 주방 안에서도 육류를 맡고 있는 파트가 권력이 가장 센 경우가 대부분이다.


참고로 프랑스 요리의 비앙드 코스가 가장 다양한 지는 시기가 가을의 지비에(gibier) 시즌이 아닐까 싶다. 지비에란 사냥감이라는 뜻으로 아직도 프랑스에선 사냥해온 육류를 먹거나 정식으로 공급하는 유통 업체들 또한 많이 존재한다. 멧돼지, 야생 오리, 산토끼, 사슴 등의 육류들이 주로 여기에 해당이 된다.


-프로마쥬( Fromage )


 메인에서 디저트로 넘어가기 전 치즈 코스로 요즘에 들어서는 조금씩 사라져 가고 있는 코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엄연히 전통 프렌치 코스에서는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되는 코스이며 ( 프랑스인들의 치즈에 대한 자부심은.. 말로 형용할 수가 없다 ) 와인 페어링을 할 경우 치즈에 따른 와인들도 각각 맞춰주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데쎼흐( Dessert )


디저트 코스로써 우리가 아는 프랑스 제과들이 주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케이크나 아이스크림 등이 주를 이루고 심지어 디저트에 조차도 와인을 페어링 해주는 곳이 대부분이다. 프랑스 와인 중 디저트 와인의 대표 격이 생산량이 매우 적은 프랑스 보르도 소테른 지방의 귀부 와인인지라 메인에 마신 와인보다 디저트에 페어링 한 와인 값이 더 크게 나올 수 있다는 황당한 후일담이다.


-쁘띠 뿌흐(Petit Four)


직역하면 작은 오븐으로써 마카롱이나 마들렌과 같은 한입 거리 디저트들이 나온다. 주로 커피나 차와 함께 곁들이기 위함이며 이로써 코스를 마치게 된다. 이 코스에서 꼭 커피나 차가 아닌 코냑이나 아르마냑 같은 도수가 높은 술을 디제스티브(Digestif)로써 마무리하기도 한다.


 위에서 프랑스 코스 요리에 대한 빈약하고 사견이 담긴 설명을 보았다만 제목으로 돌아가 위의 정확한 뼈대를 갖추고 있는 프랑스 요리가 과연 세계 최초의 코스 요리 일까? 


 결론은 ‘아니다’이다.

매우 신기하게도 인류 최초의 코스 요리는 유럽을 비롯한 서양이 아닌 우리의 이웃 국가인 ‘일본’에서 최초로 시작되었다.


 사실 프랑스 또한 지금의 코스의 형태를 갖추는 데 있어 물론 20세기의 누벨 퀴진(nouvelle cuisine)등의 요리적 사조를 거치며 위의 언급한 형태가 더욱 공고하게 되었지만 원래의 프랑스의 귀족의 식탁 또한 우리나라와 같이 식탁 위를 푸짐하게 채우는 한상을 다 같이 차려먹는 게 매우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가장 큰 역사적 실수라 할 수 있는 러시아와의 전쟁과의 패전을 통해 프랑스에 코스 요리의 형태가 처음으로 들어오게 된다. 러시아의 경우 날이 너무 추웠던 지라 음식을 덜 식게 하기 위해 하나씩 하나씩 내어먹는 형태가 이미 자리 잡은 상태였고 이 문화의 일부가 프랑스와 러시아의 전쟁을 통해 전파가 된 설이 가장 유력하게 전해지게 때문이다.


 이보다 훨씬 이른 일본으로 돌아가 17세기 초 교토에서는 최초의 코스요리가 탄생하게 된다. 요즘 료칸에서 다양한 형태로 경험해 볼 수 있다는 ‘가이세키’ 요리가 인류 최초의 코스 요리의 예시가 된다.


 최초의 가이세키 요리는 종교적 색채가 꽤나 강하였다. 불교의 종파 중 하나인 선종의 스님들이 차를 마시는 다도회 이전 고픈 배를 추리는 짧은 코스 요리에서 시작하여 다도회 문화가 일본의 지배층인 사무라이 계급에까지 다다르게 된다. 사실 이 부분에서 임진왜란의 영향 또한 확인할 수 있는데 일본 측에선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많은 도공들이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도 나오듯 일본으로 납치되어 간 경우가 많으며 그 도공들의 기술을 바탕으로 일본의 도자기 기술이 발전하는 계기의 틀을 마련하게 된다. 그리고 도자기의 발전이 다도회에 또한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가이세키(懐石) 요리 또한 사무라이 계급을 거쳐 사무라이 들의 다도회 이전 배를 채우는 코스 요리로 자리를 잡다 시간을 거쳐 연회에 필요한 술을 곁들이는 용의 사용하는 한자가 다른 가이세키(会席) 요리로 까지 발전을 하는데 왜 하필 사무라이들이 긴 시간을 내어 음식을 하나하나 먹는 코스 요리에 관심을 가졌을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유를 보자면 사실 가이세키 요리의 플레이팅을 보면 지금의 프렌치 요리에 필적할 정도로 담음새가 매우 화려하다 그리고 재료의 계절감을 강조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임진왜란 이후 도쿠가와 막부가 정권을 잡은 이래 메이지 유신이 있기 전 일본은 사실 그렇다 만할 전쟁을 치르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오히려 자기 사무라이 클랜 내의 결속이나 자기들의 세를 보여주는 데에 있어 연회를 베풀고 음식을 화려하게 내어놓게 되었다는 설이 매우 강하고 긴 시간의 회의와 연회에 있어 코스 요리의 형태가 그들에게 더욱 적합했다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가이세키 요리가 일본 사회의 이중성을 잘 보여준다고도 보인다. 17세기 초 시작하여 사무라이 계급에 의해서만 소비되었고 화려함의 극을 달린 음식이지만 2002년 개봉한 영화 ‘황혼의 사무라이’를 보면 에도 시대 사무라이 계급의 현실을 더욱 잘 보여준다고 생각이 든다. 원래 돈을 받고 전쟁을 치르는 용병 집단으로써 전국이 통일이 되었고 외국과의 전쟁이 없던 상황에서 쇼군이나 높은 위치에 있는 사무라이가 아니고서야 평민과 다를 바 없는 삶은 살았다는 걸 이 영화에서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배 계층이었지만 소작농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았고 오히려 행정직으로써 진출하는 경우 또한 매우 많았다고 한다.


 요리의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의외로 매우 동양적인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서양이 뿌리인 것들이 있고 매우 서양적이라 생각했던 것들의 뿌리가 동양인 경우를 매우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금보다 왕래가 어려웠을 시기부터 세계화란 이미 시작되었지 않나 하는 생각과 함께 이 글을 마무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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