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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우 Dec 18. 2019

"knockin'on heaven's door"

밥 딜런 & 히피의 송가

Mama take this badge from me
I can't use it anymore
It's getting dark too dark to see


엄마, 이 배지를 떼어주세요

난 더 이상 이걸 사용할 수 없어요

점점 너무 어두워져 볼 수가 없어요


Feels like I'm knockin' on heaven's door

Knock-knock-knockin' on heaven's door
Knock-knock-knockin' on heaven's door
Knock-knock-knockin' on heaven's door
Knock-knock-knockin' on heaven's door


마치, 천국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 같아요

두드려요 천국의 문을


Mama put my guns in the ground
I can't shoot them anymore
That cold black cloud is comin' down


엄마, 내 총들을 땅에 내려주세요

난 더 이상 그 총들을 쏠 수 없어요

길고 어두운 구름이 내려오고 있어요.


Feels like I'm knockin' on heaven's door

Knock-knock-knockin' on heaven's door
Knock-knock-knockin' on heaven's door
Knock-knock-knockin' on heaven's door
Knock-knock-knockin' on heaven's door


마치, 천국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 같아요

두드려요 천국의 문을


'knockin'on heaven's door'

밥 딜런의 가장 대표곡 중 하나이자 73년도에 개봉한 '관계의 종말'이라는 영화의 삽입곡이기도 하다. 

단순히 코드 4개(G, D, Am, C)로만 진행되는 데다 직접 부르기에도 그리 어려운 노래가 아니어서 기타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많이 시도해 보는 곡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밥 딜런의 곡들이 그러하듯 우리는 이 곡의 가사에 좀 더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흑인 인권문제 그리고 베트남 전쟁의 발발 등과 함께 자유와 평화를 외치며 60년대에 일어났던 히피들의 송가였자 밥 딜런 최초의 히트곡이었던 blowin'in the wind의 가사에서도 느낄 수 있듯 그 당시 기성세대의 주류 문화에 저항하며 반전(反戰) 주의를 외치던 밥 딜런의 사상이 잘 녹아있기 때문이다.


사실, 국내에서의 밥 딜런의 위상이 외국에서의 느낌과는 다르다는 인상을 많이 받는다.

솔직히 밥 딜런의 보컬만을 놓고 봤을 때 가수로써 가창력이 기교가 화려하다거나 매우 훌륭한 편도 아니고 포크락이라는 장르가 국내에 그렇게 인기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악이 지금도 많은 뮤지션과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이유는 그의 '가사'에서 그의 저력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무래도 영어권이 아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의 울림이 조금은 적을 수밖에 없지 않았나 하는 짐작을 하게 한다. 


2016년 쟁쟁한 세계의 많은 작가들을 제치고 그가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 그의 '가사'가 한번 더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지만 이는 그의 가사의 문학성뿐만 아니라 60,70년대 히피 운동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당시 히피 운동을 노벨문학상 위원회가 인정한 것으로 간주해도 무방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대인 중산층으로 태어난 그는 대학을 중퇴한 뒤 자신의 우상인 포크가수 우디 거스리를 만나러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로 떠나게 되고 이 곳에서 데뷔를 하게 되지만 그 당시 그리니치 빌리지의 환경을 고려했을 때 그의 가사와 저항 예술인으로서의 삶에 영향을 많이 준 곳이 아닐까 싶다. 2차 세계대전이 이후 미국의 물질만능주의와 전통적인 개념에 반하여 생긴 즉 잭 케루악과 앨런 긴스버그로 대변되는 힙스터의 뿌리이자 히피의 탄생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비트닉 세대'의 본거 지였자 흑인 인권 운동가, 반전 운동가들이 모여 살던 장소였기 때문이다.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며 시적이며 정치적 깊이가 있는 앨범 "the freewheelin' Bon dylan"과 함께 저항 예술인으로서 일약 스타로 떠오르게 되며 앨범의 대표곡이자 밥 딜런의 대표곡이기도 한 위에서 언급한 곡인 Blowin'in the wind는 이후 미국의 민권운동과 베트남전 반대운동의 주제가가 되며 샌프란시스코를 주축으로 60년대에 생겨나는 히피 문화의 주제가가 된다. 


How many roads must a man walk down

Before you call him a man?

How many seas must a white dove sail

Before she sleeps in the sand?

Yes, 'n' how many times must the cannon balls fly

Before they're forever banned?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 in the wind

The answer is blowin' in the wind


얼마나 먼길을 헤매야 그는 어른이 되나? 

얼마나 많은 바다를 건너야 하얀 새는 잠을 이룰 수가 있나?

얼마나 오랜 세월 대포를 주고받아야지만 사람들은 영원한 자유를 얻나?

그 대답은 친구야 불어오는 바람 속에 있다네.


(blowin'in the wind 가사 일부)


즉, 1920년대 말 미국의 대공황과 함께 체재 비판적이며 노동자의 삶을 노래하기 위하여 싹튼 '포크'(folks는 영어로 '민중'을 의미)라는 장르를 60년대에와 히피문화와 함께 그들이 저항하던 세상을 음악과 가사로써 풀어준 인물이 바로 밥 딜린이 아닐까 싶다.

 사실, 밥 딜런의 이러한 저항 음악은 국내에도 끼친 영향이 꽤나 있었다. 한대수, 세시봉, 김민기, 양희은과 같은 국내 포크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며 이들의 음악은 더 나아가 민주화 운동 당시 대부분이 금지곡 판결을 받음에도 이를테면 '아침 이슬'이라는 곡과 같이 시위대의 송가가 되어주기도 하였다.


 끝으로 밥 딜런의 명언 한 구절 남기며 이 글을 마무리해보려 한다.

"No one is free, even the bird are chained to to the sky"

-그 누구도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새조차도 하늘에 묶여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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