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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 Nov 19. 2020

지금 이 순간의 육아

점점 한 가지에만 집중하기 어려워진다. 어른이 되고, 엄마로 살아가면서 더더욱.

처리해야 할 집안일들을 하며 저녁거리를 생각하고,  아이들과 놀아주다가 문득 읽고 싶은 책을 생각한다. 나아가 내년엔 아이 초등학교를 어디로 보낼 것인지, 어느 동네로 이사할 것인지도 생각하고, 가끔은 10년 후를 상상해보기도 하며 현재와 미래를 오간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내어줄 때도 있으며, 매 시간을 잘게 쪼개 하루를 이틀처럼 보내기도 한다. 그 와중에 아이들은 끊임없이 엄마를 부른다. 아마 그래서 글을 쓰는 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육아로 인해 무언가에 진득하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육아로 인해 다시는 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지금 6살인 큰아이는 시간이나 날짜 개념을 알고 있고, 몇 살 더 먹으면 학교 다니는 큰 형아가 된다는 것도 알고는 있지만, 그 무엇에도 눈 앞의 현재를 양보하지 않는다. 이맘때 여느 아이들처럼 지금 이 순간의 놀이와 현재의 감정에 집중한다. 그렇기에 눈 앞에 놓인 상황만을 가지고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반면, 눈이 빠지도록 택배가 오기를 기다리며 갖고 싶은 물건을 당장 손에 쥘 수 없다는 사실에 힘들어하기도 한다. 언젠가 아이는 며칠 만에 도착하는 택배가 아니라 그보다 더 오랜 것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오랜 기다림 속에서 빛을 발하는 것은 다름 아닌 현재를 바라보는 눈일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믿는다. 어른이 되어서도 지금처럼, 순간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너희의 눈을 바라보며 반짝임을 마주하고, 너희를 토닥이며 재울 때 손에 전달되어오는 심장박동을 느껴보는 순간들은 언제나 아름답다.


밥 먹고 나서 또 사탕 먹고 싶다는 너희에게 달콤한 사탕 하나씩을 꺼내 주고, 작은 손으로 봉지를 뜯어 입에 넣는 모습을 바라본다. 오물오물 귀여운 입. 바라보고 있으면 그 맛이 내 입에도 감도는 것 같아 침이 고인다. 나도 부엌으로 돌아가 구석에 숨겨둔 사탕을 하나 꺼내서 입에 넣는다. 그리고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내 입 안에서도 덩달아 달콤하게 퍼지는 그 맛을 느껴본다. 너희가 아니면 하지 않았을 일들이, 너희가 아니면 그냥 지나쳤을 시간들이 달콤함이 된다.


제 철을 맞은 커다란 배를 깎는다. 누런 껍질이 돌려 깎이며 하얀 속살과 즙이 떨어져 나온다.

“아, 맛있겠다.”츄릅.

“배가 아주 하얗게 잘 익은 것 같아.”

이미 알고 있는 그 맛을 상상하면서 침을 삼키는 너희를 보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배를 먹어봤던 아기 때 모습을 떠올려본다.

하얗고 말캉한 배를 손에 쥐고 한참을 이리저리 돌려 관찰하다 입을 살짝 대 보고는 찹찹, 작은 눈이 눈에 띄게 커지더니 이내 손에 쥔 배를 야금야금 다 먹었던 그때 네 모습. 입 주변과 손이 배 즙으로 찐득하게 범벅이 되어버린 널 보며, 배의 달콤함이란 이토록 매력적인 것이구나를 새삼 느꼈었던 그때를. 그렇게 나는 아이들의 눈을 통해 잊고 살았던 세상의 작은 기쁨들을 하나씩 발견해올 수 있었다.


세상이 이토록 작은 도전과 감탄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에 함께 기뻐하며, 그렇게 순간에 집중할 수 있는 눈은 나의 오늘을 살아내게 했고, 또 내일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너의 손을 잡고 한 걸음 내디뎠을 때, 찬바람이 얼굴로 마구 휘몰아쳤던 어느 날이 떠오른다. 거센 바람의 강도를 이겨내고 기차역 출구 방향으로 몸을 돌리기가 무섭게 바람은 정확히 내 쪽으로 다시금 휘몰아쳤다. 너는 고개를 숙이며 차마 걸음을 내딛지 못한 채 나에게 기댔고 나는 그런 너를 들어서 안는다. 패딩 점퍼의 모자를 씌우자 어깨에 고개를 숙인 너의 뺨이 내 얼굴에 닿는다. 순간, 전해져 오는 따뜻함. 너를 안고 긴 플랫폼을 걸어가며, 바람을 맞는 일이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나에게 기댄 너의 무게가 그리 무겁게 느껴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뺨에 닿은 그 순간의 온기 하나만으로도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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