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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 Oct 26. 2020

엄마는 왜 되고 싶은 게 없어?

너희에게 보내는 편지, 첫 번째

  현, 민, 안녕. 너희에게 쓰는 첫 번째 편지야. 구체적으로 계획한 내용은 없어. 그냥 예전부터 너희가 커서 보게 될 편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거든. 사실 그런 생각을 한 지는 꽤 됐어. 어느 날엔 서점에 갔다가 다이어리 대신 너희를 닮은 예쁜 노트 두 권을 샀었고 그 안에 편지를 적어 내려가기도 했었지. 너희가 이 글을 보게 되는 날이 있을지, 있다면 언제가 될지는 잘 모르겠어. 그냥 이런 글이 필요할 때가 온다면 그 때 네 마음에 가서 닿길 바란다.


  너희에게 쓰는 편지를 적으려고 샀던 그 노트는 어떻게 되었냐고? 몇 번 적어 내려 가다가, 다음 장에는 저녁에 해 먹을 요리 레시피도 적었고, 장 볼거리도 적었으며, 아빠랑 다투고는 화나는 감정을 갈겨써 버리기도 해서 좀 민망해져 버렸어. 엄마가 그렇게 의지가 강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고백할게. 그런데 있지, 요새 이 브런치라는 게 엄마 삶에 들어와서 자꾸 글이 쓰고 싶어져. 이렇게 도움을 주는 뭔가가, 혹은 누군가가 있어야만 시작이라도 할 수 있는, 엄만 그런 사람인가 봐.


  아빠는 오늘부터 3박 4일 출장을 갔고 너희는 방에서 쌔근쌔근 자고 있어. 중국에서 살면서 출장이 잦은 아빠 때문에 홀로 남겨졌던 수많은 밤들, 심지어는 주말부부였던 평일의 저녁. 그 적막함을 티브이로 지우고 싶지는 않아서 한 번씩 자는 너희 얼굴을 보러 방에 들락거렸었지. 가끔은 이 드넓은 중국 대륙이 마치 작은 섬처럼 느껴져서 엄마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었어. 그럴 때마다 너희는 그 작은 숨소리만으로도 빈 집을 꽉 채워내는 생명력의 원천을 만들어냈단다. 숨소리뿐인 줄 아니, 작고 보드라운 손과 발, 손 대면 억세지 않게 흩어지는 머리카락에서까지 팔딱팔딱 대는 심장소리가 느껴지는 것 같은 걸. 눈 뜨고 돌아다닐 땐 말할 것도 없고.



  엄마는 지금 서른여덟이야. 마흔을 앞두고 있지. 이 정도면 인생의 전반부는 끝난 셈이겠지. 아직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여기저기서 떠들어대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어.

오늘 네가 커서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고 말하며 엄마에게 물었어.


“정말 매일매일 연습하면 커서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어? 포기하지 않고?”

“그럼 나 매일매일 연습해서 피아니스트 될 거야. 베토벤이 제일 멋있어.”


잠시 후

엄마는 왜 되고 싶은 게 없어? 왜 아무 일도 안 하고 있어?”

“엄마 피아노 잘 치니까 나랑 같이 피아니스트 되면 안 돼?”


무슨 드라마 대사 같은 이런 질문들이 정말 순수하게 네 머릿속에서 나왔다는 생각에 기특해서 빙긋 웃고 있다가 점점 요새 말로 ‘현타’가 오더라. 엄마가 되고 싶은 게 없다니, 되고 싶은 거 많았었지, 아니 사실은 간절하게 뭔가를 원한 적 조차 없었던 것 같아. 그렇다고 이제부터 뭔가를 새로 시작해서 또 뭔가가 된다는 건 더욱더 불가능해... 같은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단 1초 만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어. 너에게 대답을 해 주면서도 마음 한편에선 다른 생각을 좇고 있었지.

“으응, 엄마는 광고회사에서 광고 만드는 사람이었어. 재밌었어. 끝.” 엄마는 그 일을 참 좋아하긴 했지만 광고회사 다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라는 말은 나오지가 않았어.


바로 “엄마는 그럼 어렸을 땐 뭐 되고 싶었는데?”

“어어? 어렸을 땐.. 글 쓰는 사람 되고 싶었었지. 기자 같은 거.” 말을 하면서도 기자 같은 거라니, 이 무슨 거지 같은  시추에이션인가.

안 되겠다 싶어 조금 다듬어서, “엄마는 글 쓰는 거 좋아해서 원래는 기자 되고 싶었었는데, 광고회사 들어가서 기획서 썼어. 그리고 지금은 작가 되고 싶어.”


사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유치하게도 뭐라도 되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어.

“피아니스트는 왜 안돼? 지금부터 열심히 연습하면 되잖아.”

“그게, 어릴 때부터 꾸준히 해야 될 수 있는 일들이 더 많아. 어른 되면 이미 손이 굳어있어서 아무리 연습해도 피아니스트들처럼 잘 칠 수가 없어.”


  나이가 들면 아무리 노력해도 잘할 수 없는 일들이 있는 거야.. 대화는 그 정도에서 마무리되었지만 엄마 마음은 아주 조금 어두워졌어. 엄마라는 이름 말고 다른 무언가를 하나 더 가지고 있었다면 너희에게 좀 더 멋진 엄마로 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스쳐 지나갔지. 사실 해야 하는 것 말고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 하지만 나만의 자유의지를 갖고 진정 하고 싶은 일을 찾는다 한들 소위 말하는 ‘천직’이라는 게 짠 하고 나타나진 않는 것도 사실이야. 하고 싶은 일조차 떠오르지 않아 고민스러울 수도 있고, 하고 싶은 것과 내가 가진 능력에 괴리가 있을 수도 있고, 다 보이는데도 닿을 수는 없는 상황에 좌절할지도 몰라. 그걸 아는 어른들이 편한 길을 제시하고 때론 다 만들어서 앞에 놓아줄 때도 있지.  엄마는 그 길을 밟아왔고.


  지금 엄마는 6살 4살 너희들을 데리고 영어도 가르치고 책도 많이 읽히고 피아노도 가르치고 있어. 오늘은 무슨 놀이를 해줄까, 한글은 어떻게 뗄까, 뭘 먹어야 키가 클까. 매일 반복하다가 어쩌다 재능의 한 조각이 보일 때면 기뻐 어쩔 줄 모른단다. 그게 솔직한 속마음이야. 부모란 대부분 그렇게 생겨먹었단다. 욕망이 아니라 본능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엔 심지어 인류의 발전은 틀림없이 이런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엄마는 믿고 있어. 그래서 너희가 가진 작은 씨앗을 어떻게든 잘 키워주고 싶어. 물도 주고 햇빛도 주고 정성스레 닦아주고. 너희가 첫 돌이 되었을 때 손에 무언가를 쥐고 첫 생일을 지나왔듯, 성장의 단계마다 산에 들판에 바다에 널려있는 보석들을 눈에 보이는 족족 주워다가 너희 손에 쥐어줄 생각이야. 그리고 언젠가 너는 등을 다 덮고도 남을 만큼 커다란 여행자의 가방을 메고 문을 열고 나갈 거야. 미리 얘기할게. 그 문 앞에 서있는 마음은 감히 상상하기 싫지만 그래도 네가 힘들어하는 게 보기 싫어서 문을 박차고 나가 길을 만들어줄 생각은 없단다. 혹시 능력도 없는 엄마가 어떻게든 길을 놓아주려고 앞에서 설치거든 이 글을 들여다보게 해 주렴.


  네가 뭘 좋아하고 뭘 잘하는지는 오로지 너만이 알 수 있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거란다. 그렇기에 자신의 능력을 들여다보면서도 펼쳐나가지 못하고 , 좋아하는 것이 있음에도 의무에 매달려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처럼 좌절감이 느껴지는 일은 없다고 생각해. 만약 어디에서 시작해야 하는지 발 디딜 곳 조차 찾기 어려울 때는 옆에 있는 사람들을 보렴. 엄마는 언제나 그곳에 서있을 테니. 그리고 잠시 쉬어가되, 다시 일어나렴. 네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헤매다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순간조차도 행복해야 한다고 믿으니까.


  때론 사람들은 먼 행복을 위해 현재를 담보 삼는데, 살아있는 현재 없이는 살아있는 미래도 없다고 믿고있어. 죽음 뒤에 새 삶이 찾아올 수 없듯이. 그 어떤 삶에서도, 심지어는 고통 속에서도 자신만의 의미를 발견해내는 사람들은 결국 눈 앞에 놓인 작은 길을 발견해내고야 말지. 전혀 내 길이 아닌 것 같았던 일이 천직이 되어가기도 하고, 혹은 그걸 계기로 새로운 재능을 발견하게 되는 사람들도 보아왔어. 눈 감고 이 악물고 참으며 버텨내야 하는 길은 길이 아니란다. 눈 뜨고 앞으로 똑바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면, 혹 그러다 다리가 찢어질 듯 아파도 그래도 근육이 생기는 게 눈에 보여서 아주 작은 기쁨이라도 함께할 수 있다면 그 길로 가는 거야. 그렇기에 어디에 서있든 그 안에서 깨달음을 얻거나 나 자신을 들여다볼 기회를 조금이라도 발견하게 된다면 그 자체로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해


  엄마 역시 많이 빙 둘러왔고 광고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 나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에 좌절한 적도 있었어. 하지만 피눈물을 흘리며 집에 돌아가던 어느 날이 무색하도록 어느새 그 일을 좋아하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이 보이더구나. 잘 못하는 부분이 있으면 분명 다른 어딘가엔 잘하는 부분이 미어터지도록 몰려있어.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만들어졌고 어느 쪽을 들여다보느냐, 혹은 소중히 여기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해. 네 안의 단점을 혐오하지 말기를. 백개의 빛나는 장점과 단 하나의 단점을 바꿔버리지 않기를. 단점은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검게 썩어 악취를 풍기기 때문에 장점의 은은한 향기를 가려버릴지도 몰라.


  처음부터 하고 싶은 일이 있고 재능을 보인다면 물론 축복받은 일일 거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주저앉을 일도 아니야. 분명한 건 잘 모르겠다고 가만히 앉아 나의 길을 기다리고 있으면 아무것도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 눈 질끈 감고 뛰어내려보기도 하고, 새로 산 맞지 않는 옷도 한 번은 입어보고 말이야. 가늠하는 것에는 오차도 없어. 때론 선 행동 후 결과가 답이 되기도 한다는 것. 그리고 그 결과는 너만이 알 수 있을 거야.



퍼펙트하고 완벽한 인생을 기대하지 말기를. 인생이란 그 여정 자체로 완벽한 것이니. 인생에 마법이 없다고 해서 실망하지 말기를. 인간의 삶에 단 하나의 마법이 허락되었다면 그건 ‘사랑’ 일 것이니. 하지만 그 마법 같은 ‘사랑’도 서서히 다른 빛깔로 변하게 된다는 건 잊지 말거라. 우리도 자연의 일부이기에.



엄마는 많은 것을 바꿀 수 없을뿐더러, 지금까지 알아온 것보다 앞으로 알아갈 것들이 더 많은 그냥 아줌마야. 이 글을 쓰면서 가장 슬퍼지는 순간이구나. 아줌마라니!!! 어쨌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가치들을 전달해줄 수 있는 것은 글이라 믿기에, 지금 어린 너희와 엄마 사이의 무언가를 붙잡아서 글로 남겨주고 싶어. 시간이 지나고 너희가 성장하면서 우리의 모습도 조금씩 다른 형태로 자리 잡아가겠지. 언젠가 완벽한 타인이 되더라도, 많은 것이 희미해졌을 때에도, 지금 너희와 엄마 사이에서 반짝이고 있는 이 사랑을 엄마의 글로 기억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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