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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 Nov 27. 2020

육아가 힘들지 않다고 말해도 될까요?


육아하다 : 어린아이를 기르다.

육아전쟁 : 어린아이를 기르는 것의 어려움과 그에 따른 고통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제는 ‘육아’하면 어린아이를 기른다는 사전상 의미 외에 ‘힘들다’는 이미지가 자연스레 따라붙는다. 육아전쟁, 전투 육아, 집콕 육아, 독박 육아 등, 육아와 관련된 신조어들만 보아도 그 절절함이 느껴진다. 나 역시, 코로나 시대에 6살, 4살 남자아이 둘을 키우는 육아맘으로서 이런 단어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나의 엄마도, 엄마의 엄마도 해왔던 그 흔한 육아가 도대체 언제부터 이토록 힘들어졌을까? 열심히 노력해서 이룰 줄 아는 우리들인데, 공부해서 취직했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했고, 드디어 내 삶, 나의 가정을 꾸려갈 그 행복의 중심에 아이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행복의 정점에서 육아를 시작하며 왜 거꾸로 행복과는 점점 멀어지는 것만 같은 걸까?


아이를 키우는 게 왜 행복한지를 묻는다면 나부터도 구체적으로 무어라 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반면, 아이를 키우느라 힘든 점을 대라고 하면 당장에 떠오르는 생각들이 입 밖으로 줄줄 튀어나온다. 수면 부족의 고통, 체력 부족의 고통, 자유 부재의 고통, 그리고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으로 인한 고통, 그리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힘든데 힘들지 않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육아뿐인 것 같기도 하다.






강아지를 키운 적이 있었다. 두 번. 첫 번째 강아지는 검은색과 갈색의 털이 자르르하게 예뻤던 요크셔테리어였다. 아빠가 계셨던 경찰서에 맡겨진 길 잃은 강아지였고, 주인을 찾을 수 없어 결국 우리 집에서 키우게 됐었다. 꼬질한 모습을 보고 질색하던 엄마도, 막상 씻겨보니 때 구정물이 쏘옥 빠진 그 자태를 보고는 키우는 걸 허락하셨었다. 하지만 그 예쁜 강아지는 우리가 모르는 시간들을 지나왔고, 우리는 그 강아지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없었다. 자신의 생존을 의지했을 전 가족들과의 관계가 끊어지면서, 이미 혼자 생존하는 방법을 터득한 상태였다. 까까를 줘도, 안아줘도 그때뿐이었으며, 한 번 저버려졌던 작은 생명은 우리를 향해 그 어떤 신뢰도 주지 않았다. 시간이 더 있었다면 달랐었을까? 그렇게, 이렇다 할 기억도 없이, 어느 날 요크셔테리어는 그 예쁜 털을 휘날리며 열린 문 틈 사이로 쏜살같이 달아나 버렸다. 한 번 끊어진 관계는 그렇게 반쪽짜리로도 자생할 수 있는 것이었다. 돌이킬 수 없는 반쪽짜리 관계.


두 번째 강아지는 내가 고등학생 때 분양받았던 새끼 시츄였다. 얼굴이 납작하고 대체적으로 못생긴 인상이었지만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동그랗고 까만 눈만큼은 참 예뻤던 시츄. 손바닥에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작았던 강아지는 내가 어른이 되는 걸 지켜보며 나보다 훨씬 더 빨리 어른이 되었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쏟는다는 것이 나에게도 사랑을 주는 일이라는 것을 그 작은 존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느낄 때가 많았지만 쏟을 수는 있어서 괜찮았고, 그건 내가 받는 사랑으로 돌아왔다. 그 당시에 나는 입만 뻥긋하면 부모님께 혼이 나곤 했었는데, 거실 한가운데에서 무릎을 꿇은 채 혼이 났던 어느 날에도 강아지는 내 무릎 위에 천천히 올라앉으며 당당하고도 뻔뻔하게 나를 위로해주곤 했었다. 뜬금없지만 아마 그때 즈음 알았던 것 같다. 나는 아이 둘을 키울 것이라고.


때로는 사랑을 받는 것과 사랑을 주는 것이 어쩌면 당사자에게 같은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사랑받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사랑을 주고 싶은 것은 아닐까. 사랑을 주고 싶은데 나를 받아줄 것 같은 사람이 없어서 혼자 가지고만 있다가, 사랑할 대상이 나타나는 순간부터, 그 사람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부터, 봇물 터지듯 나오는 그 무엇과도 같은..




신생아 때는 한두 시간마다 깨는 아이를 안고 달랬고,

두 살 터울 아들 둘 데리고 혼이 나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실감했고,

주말부부에 해외 독박 육아에 몸이 먼저 무너지는 날도 있었다.

경력단절에 삶은 육아 전과 후로 나뉘었다.

그러고 보니 나름 힘든 육아의 조건은 다 갖추었다.


힘들 때 힘들다고 내뱉으면 조금 살 것 같았고, 나와 같이 힘든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땐 좀 더 살 것 같았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봤을 땐 온통 ‘힘들다’ 뿐이었다. 그저 한 번쯤 바라봐주고 인정해주면 되었을 그 감정에 먹이를 주고 살을 붙여줬더니, 어느새 그 부정적인 감정은 스스로의 힘으로 나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내 감정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고, 곧 잠식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에 가까운 현실이 바로 눈 앞에 있었지만, 현실은 이상에 닿을 듯 말 듯 그 격차를 좁히지 못했다. 단순히, 엄마로서도 인정받고 싶었고, 힘들어 하는 나의 존재를 알아주길 바랐던 것 같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내 안으로만 집중됐었던 시선의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인정받기보다 인정해주고, 내가 힘든 만큼 너희의 힘듦을 생각하고, 사랑받기보다는 사랑을 주기로. 나를 향한 화살표를 바깥으로 돌려 표현하자, 희한하게도 내 안의 모든 감정들도 방향을 바꿔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맨 밑바닥에 있었던 벅찬 행복감도 함께. 부정적인 감정과 긍정적인 감정이 어깨를 나란히 하기 시작했다. 나는 최대한 공정한 눈으로 각각의 감정들에 집중했고, 나의 모든 감정들을 소중히 여겼을 때야 비로소 눈부신 현실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나 자신에게는 항상 인색했지만, 아이들에게는 주고 싶은 대로 다 줄 수 있었다. 나는 잘 쪼그라들고 맞춰주는 사람이었는데, 아이들에게는 그러지 않아도 되었다. 내가 살아오며 만났던 모든 인간관계에서는 대부분 아무리 감정이입을 해보아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많았던 반면, 아이들의 입장은 쉽게 헤아려졌다. 왜 우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빤히 보였다. 아이들은 곧 어린 시절의 나였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는 것은 나에게 사랑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했는데, 두 아이들은 받은 사랑의 배로 나에게 돌려주었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게 당연하지 않았다. 나는 무엇이 먹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고, 무엇을 사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으며, 간신히 입 밖에 무슨 얘기를 꺼냈을 때 반대 의견이 들어오면 바로 접었다. 집 안에서는 항상 양보해야 했고 맞춰주는 사람이어야만 했지만 이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었다. 아주 약간의 억압이었다 하더라도 서서히 내 몸에 스며든 그것을 나는 나와 한 몸처럼 여기게 되었었다. 덕분에 누군가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저지르게 될까 봐 항상 조금씩은 쪼그라들어 있었고, 모두 진정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나의 동의로 인해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그걸로 되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랬던 나에게 아이를 키우는 시간들은 나를 육아의 주체자로, 인생의 주체자로 만들어 주었고, 나의 의지에 집중했을 때, 내 감정에 집중했을 때 살아있음을 느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들을 아이들과 하나씩 공유하는 일, 느리지만 천천히 세상의 아름다움을 알려주는 일은 아무 대가 없이 행복했다. 우리 엄마 말고 다른 엄마로는 절대 대체될 수 없는, 돌이킬 수 없는 존재의 무게만큼의 행복을 얻었다. 언제든 내가 아닌 누군가로 대체될 수 있었던 역할들은 뒤로 하고, 엄마로서의 나의 존재 그 자체를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공감받지 못할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육아가 힘들다는 것은, 엄마들과의 대화에서 그리고 수많은 육아서에서 마치 육아의 대 전제와도 같이 받아들여지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누고 싶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있을 지금 이 시간들의 아름다움을.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삶의 부조리함 속에서도,

옳다고 믿는 가치들을 실현할 이 작은 가정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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