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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 Nov 28. 2020

너의 중국어, 나의 한국어

언어교환 이야기

나는 친구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친구는 나에게 중국어를 가르쳐주고 있다. 사실은 친구라고도 할 수 없다. 그 친구는 23살이고 난 38살이다. 피차 같은 처지의 선생님이자 학생이었으므로 서로 선생님이라 부르기도 애매해 15살 차이에도 불구하고 뻔뻔하게도 나를 언니라고 부르라고 했다.


그 중국인 친구는 피아노를 전공하고 있고 코로나가 끝나면 한국에 가서 석사, 박사 과정을 밟고 돌아오고 싶다고 했다. 한국 연예인을 좋아하고, 한국 드라마도 자주 본다. 조선족이라서 한국말을 조금 할 줄 알지만 쓸 줄은 모른다. 그리고 나의 중국어는 중고급 사이 그 어디쯤.


사람과 사람이 이야기를 나눌 때 인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사실은 얼굴보다 목소리라고 들은 적이 있다. 좋은 목소리와 세련된 말투는 곧 그 사람의 이미지가 된다. 광고회사 다녔던 시절, 말 잘하는 사람들을 참 많이 보았다. 이야기 자체의 힘으로 빠져드는 적도 있었지만, 어떤 때는 프레젠터가 말을 너무 잘하는 나머지 그 사람의 말투나 매끄러움 같은 것에 반하여 다 듣고 나면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도통 기억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저, 음 정말 대단한 기획이었어 라고 말할 수 있을 뿐.


그 친구가 중국어를 할 때는 목소리가 몸에 착 붙어 찰지고도 나직하게 줄줄 흘러나오는 반면, 한국어를 더듬더듬 말할 때는 약간 붕 뜬 발성으로 어눌하게 나온다. 분명 같은 사람인데 중국어를 할 때는 선생님이 되고, 한국어를 할 때는 아이 같은 학생이 된다. 사실 웬만한 말은 다 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말투가 다르다 보니 자신감이 부족하고 틀릴까 봐 말하기 주저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모습이 참 예뻐 보이고 말투에 때가 묻지 않은 그 목소리가 참 듣기 좋다. 순수하게 하고 싶은 말 그 자체가 나에게 전달되고, 나 역시 따박따박한 말투의 거품을 빼고 부드럽게, 본연의 내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아마 내가 중국어를 할 때도 그 친구는 비슷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내가 한국말을 할 때는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며 감탄하는 눈빛을 보내고 내가 중국어를 할 때는 가끔 웃음을 참지 못하며 장난스럽고도 귀여운 눈빛을 보낸다.  


중국어로, 한국어로 번갈아가며 대화를 나누는 사이, 나이에 맞게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 나를 포장했던 거품들이 서서히 빠진다. 서로의 부족한 언어를 보기보다는 네가 잘하는 중국어, 내가 잘하는 한국어를 바라보며, 그렇게 네가 더 많이 알고 있는 것, 내가 더 많이 알고 있는 것들을 존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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