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원 Dec 11. 2020

싫어하는 것에 대하여

나는 싫어하는 것들 속에서 살아간다.

가까스로 싫어하지는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도 좋아하는 쪽으로 더 나아가지는 못한다.


중국에서 가구들까지 모두 세팅된 집을 렌트하여 살고 있고, 인테리어는 내 취향이 아니다.

놀이터에 가면 뛰어노는 아이들 곁에서 유모차를 밀며 담배를 피우는 할아버지가 있다. 그 역시 내 취향이 아니다.

중국 친구 가족의 초대를 받아 외식하러 갔는데 멀겋고 하얀 국물에 민물생선이 둥둥 떠있다. 억지로 한 입 떠먹었는데 생선 비린내에 시큼한 국물이 더해져 조금도 보태지 않고 구역질이 난다. 못 먹겠다고 대놓고 말하지 않으면 알아차리지 못한다. 아니, 말해도 한 번 더 권한다. 호의는 감사하지만 배려는 부탁드린다. 6살짜리 아들에게 벌어진 상식 밖의 해프닝들 역시, 가끔 취향을 넘어 참을 수가 없다.


조심스럽게 피치 못할 사정을 전달했을 때도, 사람 좋은 남의 편이 의례 한 번 더 제안하면 그로부터 직진이다. 액면 그대로의 소통. 싫은 마음을 내 안에서 대충 뭉뚱그려 뻥 차 버릴라치면, 뭔가가 부딪혀 툭 하고 부러진다. 마음속 깡통만 요란하다. 아닌걸 아니라고 잘 거절할 수 있는 것도 정말이지 능력이다.


어른이 되면,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고 사는 삶이 있을 거라 막연히 생각했다. 온전한 나의 선택이 만들어낸 삶 속에서의 만족감을 꿈꿨다. 하지만, 가지 치는 길을 따라 당도한 미로 저 끝에는 나의 선택에서 나온 우연의 합들로 가득하다. 마땅하다 여겨지는 기준 밖의 세상이 존재한다.


나야말로 나와 다른 것을 1도 품지 못할 정도로 편협하고 이기적인 인간인가를 반문해본다. 동시에 그것들을 반드시 꼭 품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마음 한편에서 스멀스멀 올라온다. 시도해 보고, 손 내밀어봤는데도 싫다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나이 마흔 정도 되어서는 어느 정도 한 인간으로서의 결이 생겨있기 마련이고, 대단치 않은 이유로 그 결을 헤집어놓을 이유는 없다고 말이다.


사진 출처 : unsplash

‘오픈마인드’는 환영받는다. 새롭고 다른 견해를 잘 받아들이는 마음.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이 시대의 중요한 스킬이라 일컬어진다. 진보적이라 평가받는다. 현재에 눈 뜬 진정한 ‘오픈마인드’는 대찬성이지만, 오픈마인드라는 이름으로 강요되는 편협함은 용기 내어 정중히 사양하련다. 다름은 언제나 환영하되, 도덕과 가치의 기준이 맞닥뜨리는 일에 있어서는 나의 기준을 고수하련다. 어차피 이 넓은 땅 아니라 그 어느 곳에 발 딛고 살아가든 좋음이 있으면 싫음도 있기 마련이니까. 그 안에서, 속이 부러지다 못해 바스락대는 소심한 여편네로, 혹은 잔소리꾼 아주미로 나이 들어가지 않길 바라는 작은 바람이 하나 있을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의 중국어, 나의 한국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