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원 Feb 24. 2021

중국에는 보이지 않는 만리장성이 있다.

중국 그리고 클럽하우스

VPN (Virtual Private Network) 가상 네트워크.

중국에 사는 외국인들 중 VPN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중국에 여행이나 출장을 오더라도 VPN 없이는 많은 소통 수단들이 불가능해지므로 생각보다 꽤 넓은 범위에서 이용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중국에 사는 일부 중국인들에게 조차도. 원래 VPN은 보안이 필요한 경우 쓰이지만 중국에서의 VPN은 중국 외 다른 나라의 IP로 접속하여 다양한 글로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수단으로 주로 쓰인다.  이 곳에서는 말 그대로 ‘현실’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을 ‘가상’으로 단독 허용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VPN 없이는 구글, 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2천여 개가 넘는 글로벌 서비스들을 접속할 수 없고 그중엔 네이버 블로그, 카페, 카카오톡도 있다. (다행히 브런치는 아직까진 VPN 없이 접속이 가능하다!) 앱스토어에서 VPN 앱을 검색하면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대부분은 유료이다. 그마저도 지속적으로 중국 정부에 의해 차단되어 보다 원활한 VPN으로 계속 갈아타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나는 두 가지 VPN앱을 깔아놓고 돌려가며 쓰고 있는데 다행히 1년 넘도록 잘 쓰고 있다. 물론 유료로!




차선책으로 비대면 커뮤니케이션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코로나 발생 초기와는 달리, 지금은 비대면 소통의 장점을 콕 집어 선택하는 경우도 많아 보인다. 비단 코로나 때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그것이 콘텐츠가 되는 세상에 살고 있기에 비대면 소통의 장점이 더욱 두드러지는 것이리라. 셀럽이 아니더라도, 인플루언서가 아니더라도, 목소리의 가치에 따라 주목받을 수 있는 그런 세상. 각자의 자리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에서 좀 더 나아가, 단순히 콘텐츠에 주목하고 댓글로 반응하는 정도의 상호작용을 넘어 발언자와 청취자가 동등한 자리에 서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쌍뱡향 소통으로도 나아가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비대면 커뮤니케이션의 질이 향상되는 것이다.


이쯤 해서 떠오르는 앱이 하나 있다면?

CLUBHOUSE 

쉽게  ‘요즘 핫하다는 클럽하우스’ 한 마디로 그냥 정리가 되겠지만, 몇 가지 간단한 부연 설명을 덧붙여본다. 음성 기반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이다. 아이폰 사용자에게만 가능하고 라이브 음성으로만 작동한다. 라이브, 즉 녹음이 되지 않으므로 개인정보를 보호한다. (실질적 보호 여부에 대해선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안다.) 초대장이 있어야만 가입할 수 있다.


인스타그램과 브런치를 하고 있지만, 그것도 아주 소소하게, 그리고 그 외 세상의 흐름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채 살고 있는 나에게 먼저 손 내밀어주신 분이 계셔서 감사하게도 클럽하우스에 가입할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가입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어려움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클럽하우스 역시 다른 글로벌 서비스들과 마찬가지로 차단되어 있었다. VPN을 켜더라도 국가번호 86으로 시작하는 중국 번호를 입력하면 더 이상의 프로세스가 진행되지 않는다. 현재 내 한국 핸드폰 번호는 일시 정지 상태이다. 일시라고는 하지만 한국에 들어간 지 너무 오래됐으므로 장기 정지 상태가 맞다. 남편은 업무상 필요할 때가 있어서 한국 폰과 중국 폰 두 가지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결국, 남편 명의의 한국 번호를 아이패드에 연동하여 앱을 다운로드하고 가입할 수 있었다. 초대장을 날리지 않게 되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고작해야 한두 시간이었겠지만 이런저런 시도들을 해보느라고 나의 소중한 시간들을 날린 게 억울해서, 기왕이면 조금 더 날려보기로 했다. 클럽하우스와 중국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검색해보니 중국 정부에서 클럽하우스를 부랴부랴 차단 서비스 목록에 포함시키기 전 이미 발 빠른 중국인들 상당수는 클럽하우스에 들어가 짐을 푼 상태였다.


최근 클럽하우스에는 ‘양안(중국과 대만) 청년 대토론’이라는 방이 열려 중국과 대만 이용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 중앙통신사는 전했다. 클럽하우스 토론에서는 일상적 주제부터 신장 위구르족 수용소, 대만 독립, 홍콩 국가보안법처럼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도 다뤄졌다. 중국은 처음부터 클럽하우스 접속을 막지는 않았으나, 이 서비스에 대한 자국민들의 인기가 높아지자 결국 차단에 나섰다. (서울경제 2021.2.18)

그뿐 아니라 타오바오 초대장 거래 금액은 최대 400위안. 인기가 높아지자 2월 8일부로 차단되었고 클럽하우스 초대장 거래는 물론 관련 검색어에 대한 검열도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세상과 담을 쌓으면서도 입지를 구축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하다. 단순히 거대하기 때문일까. 실제로 중국 정부에서는 차단을 통해 내수 시장을 키워나간다는 목적을 내세우고 있기도 하다. 구글 대신 바이두, 아마존 대신 타오바오. 넷플릭스 대신 아이치이(IQY). 인스타그램 대신 웨이보와 샤오홍슈. 그중 타오바오나 또잉(틱톡) 같은 서비스들은 단순 카피에 그치지 않고 그들만의 자생력을 가지고 바깥으로 뻗어나가기도 한다. 내수시장을 보호한다는데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다.

아이치이(爱奇艺),타오바오(淘宝),샤오홍슈(小红书)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목적은 외부 정보의 차단일 것이다. 민감한 문제나 의견이 양분될 수 있는 사안에 대한 사전 차단. 정보의 차단이 사람들 개개인에게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났다.


실제 중국인들은 어떤가? 나와 비슷한 나이대, 40~50대 학부모. 해외 유학 경험도 있는 중국 친구가 있다. 그 친구의 말에 따르면 ‘중국인들은 VPN 쓰면 처벌받는다. 정확히는 잡혀간다’라는 표현을 썼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에이 설마 했는데 실제로 적발 시에는 벌금형이라 한다. 중국에 몇 년 살다 보니 설마 하는 일이 가끔 실제로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만약 검열된 단어를 웨이신에 입력했다면, 논의해선 안될 내용을 대화창에 남겼다면, 며칠 후 누군가 집 현관문을 두드릴 수도 있다. 코로나가 잘 통제되는 이유 중 하나도 핸드폰 번호를 통한 위치 추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카더라일 수도 있고 그 누구도 정확한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경험해본 바에 의하면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핸드폰 들고 자차 운전으로 그 어느 곳도 들르지 않고 물건도 사지 않은 채 산속 계곡만 발도장 찍고 와도, 핸드폰 내의 녹색 카드(行程卡)에 14일 내 방문한 도시명이 뜬다. 行程卡에 녹색이 뜨지 않으면 쇼핑몰이나 식당, 대중교통 등지를 이용할 수 없다.


그렇다면 젊은 층은 어떨까? 나이 때문에 슬프게도 젊은 중국인들을 두루 알지는 못하지만, 알고 지내는 대학생 한 명은 VPN으로 인스타그램에 접속한다. 본인뿐 아니라 주변 친구들 모두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를 통해 한국의 연예인들이나 패션, 쇼핑 아이템 정보 등을 얻는다고 한다. 한국 스타일의 옷을 판매하는 개인 온라인 쇼핑몰에서 인스타그램 사진 캡처로 보이는 컷들이 돌아다니는 것도 본 적 있다. 그 학생은 'VPN 쓰면 잡아간다던데?'라는 말에 피식 웃는다. “저희 엄마도 저보고 조심하라고 잔소리하시는데, 아마 너무 많이들 써서 다 잡아가면 어마어마할걸요.”




한국에 있었을 때는 트렌드에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직업 특성상, 새로운 것에 대한 자세는 시도가 아니라 거의 의무에 가까웠다. 내가 변하는 속도보다 세상의 변화가 너무 빠른 것 같아 거부감이 들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찍어먹어 봐야 안다고, 새로운 것을 접해봐야 예전 것이 좋은 것도 안다. 그때는 ‘나는 아날로그가 좋아, 좀 천천히 가면 어디가 덧나.’라고 했지만 지금은 그냥 ‘나는 기계치가 확실해.’라고 한다. 중국에 있는 지금은 어쩐지 보이지 않는 장성으로 둘러싸인 것만 같아 기계치인 나도 이리저리 성벽 너머를 기웃거려본다.


비행기 타고 왔다 갔다 하지는 못하지만, VPN으로나마 다른 국가의 IP에 접속하여 이것저것 기웃거려볼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하며..

안온한 현실의 테두리 바깥에서 언젠가 무언가 나의 등 언저리를 훅 치고 들어오지 않도록, 가상에도 진심을 담아본다. 언젠간 그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싫어하는 것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