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원 Jan 11. 2021

기꺼이, 자연으로부터

밖은 영하 20도다. 우리 집 냉동실도 영하 20도다.

내가 사는 곳 선양은 백두산과 홋카이도와 비슷한 위도에 있다.


가뜩이나 마른 체형이라 추위를 많이 타서 옷을 겹겹이 쌓아 몸을 둥그렇게 만든 다음 외출해야 한다. 마스크를 하고 나가면 부딪혀 올라가는 입김으로 인해 눈썹에 서리가 끼고 마스크 안쪽에 머무르는 입김도 작은 얼음 방울이 된다. 마스크를 써서라도 추위로부터 얼굴을 보호하려 하지만 되려 피부는 그 안에서 얼음 공격을 받는다. 하아, 하얀 입김을 보며 생각한다. 나는 지금 냉동고 속에 있다. 단단하게 얼은 고등어와 소분된 고기가 있는 그곳.


이렇게 추워도 이번 겨울엔 눈을 딱 한 번만 봤다. 한국에는 폭설이 내린다는 소식이 들려오지만 이 곳에선 11월 이후로 한 번도 눈 소식이 없다. 반면 작년에는 어딜 가나 눈이었다. 눈이 오지 않는 날에도 눈은 녹지 않은 채 길가 한쪽에 쌓여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언제나 눈을 보고 눈과 놀 수 있었다. 시야를 가리며 쏟아지는 눈을 보느라 가느다란 눈을 떠보지만 입은 함박이 되어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던 아이들 모습. 아침에 일어나 하얗게 덮인 세상을 보고 와아~ 감탄했던 그 모습을 떠올려본다.


자연에 기꺼이 놀아난다. 벌벌 떨면서도 단단해지길 거부하는 하얀 서리 낀 눈썹의 인간이 된다. 눈이 소복이 쌓이면 나무와 땅 속 동물들은 눈 덮인 따뜻함의 효용을 느낄 테지만 우리들은 손에서 금방 녹아 없어질 작은 얼음 결정에서조차 수정 빛깔 아름다움을 느낀다. 우리 집 7살, 5살짜리 꼬꼬마들도 아름다움이 뭔지 안다. 와아~와아~


과학이 자연의 실체를 드러내기 전, 옛날 사람들이 세상에 대해, 자연에 대해 가졌던 두려움과 아름다움이라는 상반된 감정, 즉, 경외감이라고 하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다가, 생뚱맞게 존엄성 운운하고 싶어 진다. 일말의 경외감 갖지 않은 존재는 과연 존엄한가? 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내가 아닌 다른 ‘살아있는 것들’에 대하여 함부로 자신의 자유 의지를 휘두르는 사람은 괜찮은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안다. 바람에 날리는 꽃향기를 들이마시며 눈을 감아보는 것, 키우는 동물의 따뜻한 털을 쓰다듬는 것, 아이들의 눈을 들여다보는 것, 그리고 끝이 없는 바다를 바라보는 마음.

먹고 먹히는 거대한 생태계 속에는 인간도 포함되어 있지만, 그래도 생태계 속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우리는 존엄하다. 그래서 나는 자연을 경이롭게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을 믿는다.


또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길가에 핀 꽃을 무심코 밟아 짓이기는 것, 논리와 이성만을 믿는 것, 나보다 약한 존재에게 내 권위와 힘을 앞세우는 것, 그럴만한 대상에겐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남편 회사의 중국 직원들과 같이 낚시를 갔을 때였다. 아빠를 따라 들뜬 모습으로 낚시를 하던 한 열 살 남자아이는 잡은 물고기 중 가장 작은 것을 주머니에 넣어 식당에 데려왔고 한쪽 구석에 앉아 그 물고기에게 이름을 붙여주며 놀았다. 물 밖에 나온 물고기는 당연하지만 이미 죽어 있었고, 우리 모두가 그날 잡은 물고기를 요리해서 먹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지만, 한참 뒤 시선을 돌려 그 아이를 봤을 때 나는 그야말로 경악하고 말았다. 그 아이는 작은 물고기에게 이쑤시개 수십 개를 꽂으며 웃고 있었다. 순간의 당혹감에 나는 내 아이들이 그 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부랴부랴 서둘러 짐을 챙겨서 숙소로 올라갔었다. 직접 낚시해서 잡은 물고기를 구워 먹는 것은 먹고사는 인간에게 당연한 일이고, 그와 상관없이 단순한 문화적 차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보았지만, 방금 전까지 이름을 붙여주고 상상하며 생명을 부여했던 물고기에게 이쑤시개를 꽂는 행동은 정말이지 소름이 끼쳤다.


인간이 인간에게, 한 생명체에게 무언가를 휘두르기 시작할 때, 인간은 존엄성을 잃는다.


자연을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보고, 타인을 바라보고, 아이들을 바라보는 방식, 그 근간에는 동일한 물줄기가 있다. 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한없이 아름다워지는 그 마음 그대로,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



사진 출처 :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쓴 맛, 단 맛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