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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 Feb 26. 2021

달콤 씁쓸한 나의 토양

  아이들은 흙을 좋아한다. 저 멀리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땅에 다가가 들여다보면 작은 구멍들이 있다. 그 구멍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안에서 밖으로 뚫고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필시 누군가의 집일 것이다. 시선을 옆으로 돌리면 아주 작은 새싹이 하나 있다. 사람 손으로 야무지게 꾹꾹 눌러놓은 땅이 아니라 표면이 약간 흐트러진 흙더미, 그 속에서 아주 작은 초록 빛깔의 새싹이 두 쪽 머리를 내민 채 말갛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 날아와 살포시 앉은 이름 모를 씨에 살아있음이 싹튼다.


  아이들은 흙을 판다. 파는 행위가 재미있어서인지, 무언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마음인지 나는 알 수가 없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닥이 꽤 매력적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손에 쥐면 덩어리가 잡힐 듯 말 듯 흐트러지는 모양새, 결국 손바닥에 짙은 색만을 남기고 후드득 떨어지는 묵직함. 흙이란 그렇다. 모래와는 다른 묵직함이 있다. 그런 이유 탓인지 찬바람에 흔적도 없이 흩날리는 까실한 모래는 싫지만 온기를 머금은 보드라운 흙은 지금도 그런대로 좋아할 수 있다. 추운 겨울이 되면 보드랍고 기름진 흙이 딱딱한 얼음덩어리가 된다. 그 위에는 소복한 눈이 쌓이고 눈이 다 녹기 전까지 그 짙은 빛은 가려진다. 특히 이 곳에서 긴 겨울을 보내다 보면 흙내음이라는 게 조금씩 그리워지고, 봄이 오는 것도 공기에 조금씩 솎아나는 흙내음으로 알아차리게 된다.



  7살, 5살 두 아들들이 여름 내내 흙을 가지고 한참을 밖에서 놀던 모습이 아쉬워 집에서 할 수 있는 모래놀이를 이것저것 검색해 보았다. 모래놀이를 한 번 시작하면 두 시간도 거뜬히 노는 아이들이라는 것도 아쉬움에 한몫했다. 그런 시간이야말로 너 좋고 나 좋은 자유시간이 아닌가. 키네틱 샌드는 지저분하게 날리지 않으면서도 촉촉한 모래를 언제든 집에서 갖고 놀 수 있어 좋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플레이 도우를 닮은 듯한 인공미가 있어 마음에 썩 들진 않았었다. (물론 아이들은 무척 좋아한다.) 그렇게 검색하다 눈에 띈 것은 ‘코코아 흙놀이’. 코코아 + 밀가루 + 오일만의 조합으로 흙이 된다 했다. 사진 상으로는 진짜 흙같이 보였다. ‘이거 좀 신선한데!’ 하는 기대감, 거기에다 ‘정말 이렇게 흙같이 된다고?’ 하는 의심 한 스푼 넣어 휘휘 저어봤다. 진짜 흙과 눈이 섞이면 못난 때 구정물이 흐르는데 하얀 눈 같은 밀가루와 흙빛 코코아 가루가 섞이니 케이크같이 찰진 흙이 되었다. 게다가 냄새는 또 어떻고, 조몰락거릴 때마다 기분 좋은 초콜릿 향이 말랑하게 올라왔다 녹아내렸다.



[나만의 작은 정원 만들기]
재료 : 코코아 가루, 밀가루, 오일 (저는 올리브 오일을 사용했습니다.)
놀이 방법 : 작은 풀잎이나 나뭇가지들을 주워와서 꾸며봐도 좋지만, 간단히 집에 있는 레고나 플레이모빌, 벌레 모형 등을 활용해도 좋다.  
논에 모내기하는 법,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시기, 땅 속에 사는 벌레들 탐구하기, 농장에 사는 농부 아저씨와 동물들로 역할놀이 하기 등 아이의 상상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놀이할 수 있다.




  아이들은 가짜 흙에서조차 생명력을 만들어낸다. 초콜릿 냄새가 나는 흙에 씨앗을 심으면 무엇이 자랄까? 혹시 나무에 초콜릿이 열리는 것 아닐까? 비가 온다는 소식에 개미와 지렁이들을 흙으로 더덕더덕 덮어놨다가 비가 개어보니 아하 재밌더라, 이번엔 흙 속에 작정하고 숨겨놓은 채 벌레들의 숨바꼭질을 시작한다.


“비가 온대. 어서 숨자~ 빨리빨리 흙 속으로 들어가!” 첫째 아이의 목소리가 제법 다급하다.

“어떡해 비가 우리 집 구멍을 다 막아버리겠어. 들어가는 길을 못 찾겠어.” 아기 개미는 금방이라도 으앙 할 것처럼 훌쩍인다. 둘째도 꽤 실감 난다.


언제 저렇게 찰떡 호흡이 됐지. 북 치고 장구치고 쿵짝쿵짝 노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입술 사이로 웃음이 풉 하고 터진다. 어쩌면 저렇게 아무것도 아닌 데서 마치 무언가 있는 것처럼 놀 수 있을까. 마치 내가 보지 못하는 걸 보고 있는 것 같아 몇 번 눈을 깜짝여보지만 변한 것은 없다. 아무것도 없는 땅을 바라보더라도 아이들은 그 밑에 무엇이 있을지를 상상하고, 작은 구멍에 개미 한 마리가 얼굴을 내밀기라도 하면 발아래 펼쳐질 그들만의 작은 세계를 상상한다. 작은 싹이 커다란 나무가 되는 것은 마법과도 같고 곧 스스로 흙을 쌓아 만든 작은 언덕에도 마법을 부려 커다란 산을 만들어본다.


  문득, 언제부터였을까. 나의 시선은 줄곧 보이는 것만을 향해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멀리서 보았을 때 어떠한 틈이나 구멍도 보이지 않는다면 가까이 가서 두드려보지 않았고, 단단해 보이면 두드리지 않았다. 몇 번을 벼르고 벼러 두드려보았는데 꿈쩍도 하지 않는다면 또다시 두드릴 엄두는 내지 못했다. 그렇게 내가 무너뜨리지 못했던 단단한 벽은 실상 표면이 들떠있는 흙더미였을지도 모를 터였다. 그때 작은 구멍이라도 파놓았더라면 조금은 달라졌지 않았을까. 혹 그 안에 미로와 같은 또 다른 개미지옥이 펼쳐지더라도,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막막했을지라도, 그저 또 다른 어떤 세상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것 만으로 무작정 기뻤을지도 모른다.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다.


진짜 흙이 아니면 어떠랴.

씨를 뿌려도 자랄 수 없는 토양이면 어떠랴.

그러한 흙이라도 초콜릿 향이 난다면 그걸로 그만 아니더냐.


시인지 노랫말인지 모를 것들이 머릿속을 떠다니는 사이, 나의 지난 달콤 씁쓸했던 흙 알갱이들이 잠시 입 안에 머문다. 떠올려보면 퉤 뱉고 싶은 쓰디쓴 기억, 그 사이사이 삼키고 싶은  달콤함이 공존한다. 달콤함과 쓴 맛은 어떻게 해도 완벽히 합쳐지진 않지만 꽤 조화롭다. 이제 가짜와 진짜의 구분은 소용없다. 아무것도 아닌 내 안에도 '진짜'가 있다고 믿고 나아갈 수밖에.


나만의 달콤 씁쓸한 토양에도 이제는 보이지 않는 웃음꽃이 피어나고 어지러울 정도로 달콤한 초콜릿 향이 폴폴 거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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