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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 Mar 17. 2021

행복하지 않았던 아이

우리 모두는 행복해지고자 한다. 행복해지기 위하여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나를 들여다본다. 행복해지기 위하여 사랑받고 싶어 하고 사랑을 주고 싶어 하고 결혼을 하기도 하고 아이도 낳는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기도 한다.


만약 허공에 뜬 무언가가 더 이상 잡히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는, 혹은 너무 멀어 당장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땐 현재에서 얻을 수 있는 소소한 행복 또한 추구한다. 나의 현재를 이루고 있는 감각, 느낌을 작은 행복감으로 채워나간다. 실로, 행복을 위한 갖은 방법론들은 진화하고 있으며 행복을 위해 인생의 모든 인풋을 쏟아붓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나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아마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소확행이란 잠깐의 커피 한 잔, 쪽잠, 아이의 웃는 얼굴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 외에 많은 시간은 고군분투한다. 순간의 소확행만으로 그날 하루의 물리적인 행복의 총량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때가 많다. 그저 아이가 커가면서 이 힘든 시간들이 모여 아이의 미래를 만들어갈 것이라 생각하고 말 못 하는 아기가 말을 하게 되는 과정을, 잼잼밖에 못하던 아이가 손을 정교하게 움직여 블록을 만들고 글씨를 쓰게 되는 과정을 기대감으로 바라보게 된다.


모든 아이가 천재라는 믿음을 부모들이 괜히 갖게 되는 게 아니다. 나도 그런 부모들 중 하나이니까. 아이의 성장을 곁에서 지켜본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하는 일이며 세상에 일어나는 몇 안 되는 놀라운 일을 목격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이의 성장을 위해, 미래를 위해 조심스럽게 하나하나 블록을 쌓듯 현재의 하루하루를 만들어나가는 것은 인간에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은 아름다운 마음이자 사랑을 근간에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순히 한 인간의 성장을 아름다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그 성장 속도에 발맞춰 가기에는 방해 요소들이 너무도 많다. 어차피 인간의 삶이란 게 어떤 갑작스러운 우연에 의해 일부 희생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때론 그 삶의 희생이 반드시 우연의 요소만으로 보이진 않는다. 가끔은 그 삶의 희생을 부모인 우리가 아이에게 들이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때가 있으니까. 성공에 대한 열망, 능력주의 사회, 그리고 그들만의 리그에서 탄생한 능력이 개인이 성취한 능력으로 당당히 탈바꿈되는 세상 안에서, 우리도 무언가 나서서 움직이지 않으면 능력 없는 부모가 되어버리는 것만 같은 현실.





나는 어렸을 때 행복하지 않은 아이였다. 물론 그 당시에도 소확행은 있었을지 몰라도 자신만의 성이 이미 무너져버린 이에게는 소확행도 별 의미가 없다. 정확히는 중학교 시절 즈음부터 대학 입시를 치르기 전까지 그랬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무척 좋아했었고 그 덕에 그다지 노력하지 않았어도 공부를 잘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독서가 공부의 밑거름이 되었다. 전교 1등을 하면 부모님은 학년 전체에 떡을 돌리셨다. 그러던 어느 날, 발표를 하는데 목소리가 작다는 이유로 종아리에 회초리를 몇 대 맞았고 맨다리에 심한 피멍이 들었다. 복도에 붐비는 아이들을 작은 회초리로 쳐가며 지나갈 길을 만드는 그런 선생님이었고, 지금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학교에서 회초리로 체벌하는 일도 흔했다. 그래도 어린 중학생 여자아이 교복 치마에 드러난 맨다리를 별 것도 아닌 이유로 몇 대씩 때리는 일은 흔치 않았다. 엄마는 학교를 뒤집을 기세로 찾아와 선생님에게 사과를 받아냈으며, 그 뒤 몇 가지 이유로 나는 학교에서 가장 유명한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게 나도, 엄마도 최선을 다 한 결과였다. 그 뒤로 부모님께 사인을 받아오는 간단한 통지서 같은 것도 일부러 제일 늦게 가져가서 혼나기를 자처했고, 일부러 시험에서 답을 틀리게 적어 갑자기 반에서 30등이 넘는 성적을 받기도 했다. 왜 그러냐고 어른들이 물어보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면서는 독서실에 새벽 2시까지 있거나 밤 11시까지 학원 수업을 듣기도 했다. 해야 하니까 열심히는 했던 것 같다. 두 문제를 틀리고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갔는데 그전까지는 미미했던 방황이 그때부터 본격 시작되었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그냥 해야 되니까 하는 마음으로는 전과 같은 좋은 성적을 받을 수가 없었다.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서 부모님과 많이 부딪혔고, 생각이라며 입 밖에 나온 말들은 그냥 말대꾸가 되어버려 말을 잘하지 않게 되었다. 그냥 누구나 겪었을법한 사춘기로 보일지라도 그 당시 나에게도, 엄마에게도 인생에서 가장 아픈 시절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잃어버린 시간들 속에서 나를 살아있게 했던 것들은 학원 하원 길 버스에서 내다보던 까만 밤하늘과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산책하자고 먼저 손 내밀어준 친구와 함께 교정을 걷던 푸른 점심시간, 헌책방, 강아지 그리고 일종의 책임감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책임, 믿음 이런 것들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조금씩 노력했지만, 대학 입시날 배탈이 나서 수리영역 시간 내내 화장실에 가있느라고 그 과목은 거의 빵점을 받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다른 영역들을 잘 봐서 부모님 생각에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다 하는 대학에 들어갔다. 진심으로, 나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고 다시는 못하겠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 세계문학을 좋아했었다. 교과서에 등장하여 그에 대한 해석을 사지선다형으로 골라야 했던 한국문학보다는 가끔 어려워도 어디로 흐를지 모르는 새로운 세계, 즉 세계문학이 좋았다. 어떤 작품들은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어 눈을 떼지 못하고 빨려 들어가 책장을 덮었다가도, 무언가 모를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도 했고 근거 없는 위로를 받기도 했었다.


보바리 부인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보바리 부인은 바로 나 자신이다”라고 했다는데 그때의 나도, 어떤 면에선 그녀였다. 어른이 되면..이라는 마음으로 내가 바라는 삶에 대한 환상을 좇아 살며 현실에 상처 받고 좌절하는 마음만큼은 그녀와 다르지 않았다. 한편, 테스를 읽으면서는 인생의 불합리성에, 편견과 고정관념이라는 것에 벽에 부딪힌 것처럼 한없이 무력해지기도 했다. 스스로가 아무리 곧은 신념을 갖고 살아간다 하더라도 언제나 우연은 존재하고, 알 수 없는 힘에 압도되어 버린다는 것, 그리고 나라는 개인은 정해져 있는 누군가의 사고방식, 사회 제도 같은 것들에 의해 무자비할 정도로 흔들린다는 것.


그럼에도 세상과 삶에 대한 나의 믿음을 실현하기 위해 곧이곧대로 노력해야 하는 것인지, 그렇다면 그 노력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나는 언제까지 현실에 상처 받고 좌절해야 하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하는지에 대하여 한없이 생각했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좋아하는 게 없는 아이, 반짝이는 눈빛을 잃은 아이가 되어 있었다. 머리에 들어오는 건 있었는데 나오는 건 없었다. 제 아무리 헛소리라 하더라도 나오는 건 일말의 의지를 거치게 되어 있으므로. 항상, 누가 하자는 대로만 하는 아이, 아니면 딱 해야 되는 것까지만 하는 아이, 그게 나였다.





행복하지 않았던 아이가 이제 행복이 무엇인지를 조금씩 깨달아간다.

환상은 현실이 되고 현실은 환상이 되어간다.

엄마가 되어 나뿐만 아니라 아이들, 타인의 행복을 생각한다.


소설 속 그녀가 나 자신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사람 마음은 매한가지다. 세상을 들여다보고 우리를 들여다보지만 여전히 우리를 둘러싼 벽은 크게 허물어지지 않은 듯 보인다. 그렇게 우리의 삶이 항상 어쩔 수 없는 우연에 희생되는 비극을 품고 있기 마련이라면 나는 그 비극 속에서도 각자의 노력과 행복을 차곡차곡 쌓아 삶의 비극에 쉽게 무너지지 않을 만큼의 단단한 행복을 함께 끌어안으며 살고 싶다. 나 혼자서는 쉽게 무너져버릴 작은 성이겠지만, 우리가 함께라면, 너의 성이 무너질 때 나의 일부를 조금 떼어줄 수 있을 테니까. 나는 그렇게 모여서 배가 되는 큰 행복을 믿는다. 그 안에서 나는 너희들이 행복한 어른보다 먼저, 행복한 아이가 되기를 꿈꾼다. 그리고 여기에 행복한 아이를 위한 나의 고민들을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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