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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 Mar 26. 2021

저주받은 83년생, 엄마가 되다

잃고 싶지 않은 것

#1.

“논술, 서술형 수능 도입을 검토한다.”
“오지선다형 수능은 한계가 있다.”
-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2028학년도 대입부터 새로운 미래형 대입 적용 예정>
2028년도 대입부터 적용되는 고교학점제를 지금까지의 대입에 도입할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교육 과정과 평가 방식에 맞춰 변화된 대입을 선보일 계획이다. (내일신문 21.3.5)


#2.

2019년 11월 교육부는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을 발표하며 서울 소재 대학에 “학생과 학부모가 불공정한 전형으로 인식하는 학생부 종합 전형을 줄이고 수능 위주 전형과 함께 교과 성적 위주의 지역 균형 선발 전형으로 10% 이상 선발할 것.”을 권고했다. 공정성을 이유로 학생부 교과전형과 수능 중심의 정시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교사들은 “이는 학생 선택 중심 교육과정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대입 제도.”라며 “성취평가제 확대와 성적으로 줄을 세우는 정량 평가식 대입 전형은 양립하기 어렵다.” 고 지적한다. (내일신문 21.3.17)


나는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도 아니고, 해당 연령 자녀를 둔 학부모도 아니지만 위의 기사들을 연이어 읽는 순간 머리가 아파왔다. 눈에 띄는 단어들이 건조한 문장에서 도드라졌다. 서술형 수능? 고교학점제? 그런데 대입 공정성? 수능 중심 정시 확대? 뒤죽박죽 된 순서를 풀어서 다시 맞춰보니 이런 흐름이었다.

대입 공정성을 위해 학생부 교과전형과 정시 확대, 그러나 곧 실시될 고교 학점제로 인해 2028년부터는 미래형 대입을 적용할 예정임.’

현재 초등 6학년인 아이들이 고등학교 신입생이 되면 고교학점제를 실시하게 되므로 그들이 대입을 치르는 2028년에는 새롭게 변화된 전형을 도입하겠다는 이야기다. 섣부르게 서술형 수능이 언급됐다. 언뜻 보면 의도대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겠다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 경계가 너무도 명확해 오히려 모호하다. 수능 중심의 정시를 점차 확대하다가 무 자르듯 그렇게 미래형 수능이 실현될 수 있을까?


2021년 현재 기준으로, 최근 발표된 교육 방향은 ‘대입 공정성 강화’이다. 2019년 ‘조국 사태’로 인해 나온 방안이겠지만  공정성이란 화두에만 지나치게 매몰된 나머지 현 교육의 긍정적인 부분을 덮어버리고 장기적인 교육 방향을 흐트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공정성을 강화하기 위해 수능 중심의 정시를 점차 확대하다가 미래형 수능으로 바꾸겠다는 말은 열심히 땅굴을 파내려 가다 다시 산으로 올라가 보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이 들리기도 한다. 물론 제2의 조국 사태를 막을 수 있는 방안, 보다 다각적이고 객관적인 지표가 필요하겠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공정성’이란 어느 정도는 ‘공정하다는 착각’을 일컫고 있음을 눈감을 수는 없다. 공정성 그 자체는 하나의 목표가 될 수 없으며, ‘대입 공정성’이란 어디까지나 교육부가 이야기하는 큰 방향성 아래 ‘획일적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자기 주도적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육체제의 대전환’을 전제로 실행되어야 할 것이다. 소위 말하는 ‘중장기적 로드맵’ 현실화가 비현실적이라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최소한 사람을 위한 제도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터무니없는 ‘이상’이지 않기를, 제도를 위한 제도가 안타까운 ‘저주’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는 문득, 그리 멀지 않은 그 시절 그때의 저주를 떠올려본다.


허허벌판에 매끈하고 잘 빠진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시작하고 구불구불 좁아터진 골목들 대신 넓게 직선으로 뻥 뚫린 도로들이 생겨났다. 전날 밤 꿈에 찰랑이는 물이 가득한 우물을 보았거나, 샛노란 황금 꽃이 마당에 가득 피어나는 광경을 목격한 이들은 분양권을 손에 쥐었다. 어디에서나 새 것에서 풍기는 새침한 냄새가 났다. 새 아파트에 들어앉은 이들은 그 새침한 냄새를 먼저 몸에 걸치고는 냄새에 걸맞은 것들을 하나 둘 사들였다. 곧 냄새에 민감한 무리들이 몰려오기 시작했고 이 땅은 프리미엄을 찾는 이들과 이를 제공하려는 사람들로 금세 북새통을 이루었다. 프리미엄은 하늘 높은 줄을 모르고 치솟다가 ‘하이’는 ‘하이 엔드’로 끝을 맞이했고 ‘집’은 우습게도 그냥 ‘하우스’가 되었다.


그러다 모두가 알고 있는 대망의 저주 IMF가 이 작은 땅을 강타했고, 그 언저리 아무 연관도 없이 작은 불똥이 튄 곳이 하나 있었으니 이름하여 ‘저주의 83년생’ 또는 ‘이해찬 1세대’라 일컫는다. IMF로 인해 수학여행이 무산되었을 때 몇몇은 가볍게 푸념했지만 대부분은 체념했다. 그깟 수학여행이야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만큼은 머리가 큰 아이들이었다. 그들이 진심으로 푸념했던 일은 따로 있었다. 내신만으로 대학 간다 해서 그 잘난 프리미엄을 포기하고 내신을 위해 한 단계 내려왔더니 다시 수능으로 대학 간단다. ‘정신 차려보니 고3’이란 말은 그들에게 특별히 잘 어울렸다. 사라졌던 야자는 부활했고, 새로운 메가급 역사가 이루어지듯 학원가 역시 부활하기 시작했다. 유명 강사들이 대강당에서 이백 개가 넘는 까만 눈동자들을 보며 강의했고 아이들은 자기와 비슷한 까만 머리통들을 넘고 넘어 마이크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HOT까진 아니더라도 소규모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으며 강사들의 입담 또한 티브이에서 보던 개그맨들에 전혀 뒤지지 않았다. 강당 안에서 울리는 마이크 소리, 마이크를 바꿔 잡으며 땀 흘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는 손, 곳곳에서 터지는 웃음, 허공을 꽉 채웠던 더운 입김들은 그나마 정감 있었을까.


그렇게 본 01년 겨울의 수능은 00년도 물수능의 반동으로 인해 역대 두 번째로 어려웠던 시험이 되었고, 가장 어려웠던 첫 교시 언어영역 후 교실을 박차고 나가는 학생들이 속출했다. 엉뚱하게도 나는 그 날 김밥을 먹고 체를 했는지 배탈이 났는지, 해서 언어영역만 제대로 시험을 쳐서 점수가 나왔기에 그 덕을 봤다 해야 할지 뭐라 해야 할지...



EBS스토리. 2017.5.31




지금 들리는 이야기들은 이렇다. 아는 사람이 한국에 들어갔는데 아빠는 아직 해외에 있고 엄마와 아이들은 원래 살던 곳을 놔두고 대치동 원룸을 얻었다고 한다. 국제학교 다니다 와서 영어 하나만큼은 자신이 있었는데 시험 보고 들어간 학원 아이들과 비슷한 수준이고, 중요한 과목인 수학은 선행학습을 따라가느라 벅차다고 한다. 초등 교과 과정 진도가 너무 늦어서 장기적으로 보면 무조건 선행학습을 해야 한단다. 그리고 원하는 학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테스트를 봐야 하고 그 테스트를 준비하기 위한 또 다른 학원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어떤 엄마는 아이가 너무 불쌍하다고 울고 하소연한다며 본인도 아이가 안쓰럽지만 대견하다고 말한다.


그때와 지금, 무엇이 달라졌을까? 무언가 나아지기는 했을까? 이런 세상에서 나는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약간의 두려움까지 엄습해 온다. 내가 아이를 낳아 키울 즈음에는 아마도 많은 게 달라져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만큼 그때 나의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는 먼 미래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흐르는 시간만큼 흘러가는 것들도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어른이 되어 바라보는 아이들의 모습은 그때의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학교 앞 픽업하는 차에 몸을 싣고, 학원 버스에 몸을 싣고 푸른 하늘보다 까만 하늘을 더 많이 올려다봤던 그때의 내 무기력한 눈이, 나를 스쳐 지나가는 한 무리 학생들의 눈빛과 겹친다. 그리고 나는 지금  아이의 반짝이는 눈을 보며 이것만큼은 잃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 고운 얼굴로 교육 정책을 발표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그녀가 제2의 이해찬이 되어버리면 어쩌나 할 일 없는 걱정을 했다가 바보같이 그게 남 걱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렇게 되지 않기를, 모두를 위해 진심으로 바라고 만다. 그리고 이 땅의 아이들에겐 그 어떤 저주도 내리지 않기를, 어떤 수식어도 붙지 않기를 바란다고도. 역사는 되풀이된다지만 교육의 역사만큼은 땅굴을 파는 지루한 행위의 반복이지 않기를 바란다. 누군가는 그 구덩이에 빠져버릴 수도 있는데 그걸 단순히 운이 없었다는 말로 메꾸기엔 참으로 터무니없이 허술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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