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를 임신했을 땐 모든 시간이 긴장되는 설렘이었다면 둘째 땐 항상 시간이 내 코앞에 바짝 다가와 있었다. 아이 둘을 같이 돌보다 보니 둘째는 어느새 기었고, 어느새 일어났고, 어느새 걸었다. 매 순간 함께 움직일 수 있었던 첫째와의 시간은 기다림과 감탄이었지만 둘째의 경우엔 모든 성장이 우연이나 선물과도 같이 찾아왔다. 내가 미처 들여다보지 못하고 허둥대고 있을 때면 마치 둘째는 돌아선 나의 등을 툭툭 치는 것처럼 “엄마 이것 봐. 나도 할 수 있어.” 라고 뿌듯한 무언의 눈빛을 보내주었다.
그런 둘째가 언젠가부터 “나는 할 수 없어.”라는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다. 두 돌이 넘었는데 할 수 있는 말은 엄마, 아빠밖에 없었고 그즈음 아이 말이 늦다는 소리를 주변에서 듣기 시작했다. 첫째 때는 육아 발달 서적을 들춰보다가도 항상 해당 개월 수보다 앞서가 있어서 더 이상 책을 들여다보지 않았었는데, 둘째를 키우면서는 구석에 있던 책을 꺼내어 자꾸만 들춰보게 되었다. 이맘땐 이 정도 단어 수는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데.. ‘할 수 있다, 할 수 없다’ 체크리스트에서는 항상 ‘할 수 없다’가 많았다. 조바심 날 정도로 시간이 많이 지난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 상태로 시간이 흐르게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아이가 소리를 지르거나 ‘어 어~’ 정도의 말을 하면 그 뜻을 나름 해석한 언어로 되받아 말해주기 시작했고 최대한 아이와 나 사이의 소통의 끈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음마 어~ 어~ “ (모든 단어가 다 어~였다.)
“엄마, 물 주세요?”
“끄덕끄덕.”
“어~ 어~ (놀이터에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거 타고 싶어? 미끄럼틀? 그래~ 미끄럼틀 타고 싶어요~ 우리 미끄럼틀 타러 가자. 아이 신난다. 우리 민이는 미끄럼틀 제일 좋아해요. 씽~씽~.”
첫째 때도 그랬지만 나는 아이에게만큼은 엄청난 수다쟁이였다. 말이 별로 없었던 내가 아이에게 하루 종일 말을 거는 게 힘들지 않았고 목소리 톤도 저절로 달라졌다. 비난에 익숙했고 칭찬에 목매며 살아왔던 나에겐 아이만큼 마음 편하고 고마운 존재가 없었다. 나의 말과 표정과 몸짓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아이에게는 아무 거리낄 것이 없었고 쏟아부을 대상을 찾지 못했던 사랑의 근원 같은 것들을 내 안에서 기꺼이 꺼내볼 수 있어서 심장이 터질 것 같은 행복을 맛봤다. 아이 앞에서는 난 더 이상 밋밋한 듯 담백한 사람이 아니었고, 열정 넘치고 재밌고 순수한 사람이었다. 웃겨주고 웃으며 함께 성장했다. 비로소 본래 나의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엄마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그 어떤 때보다도 행복했다. 아이에게 몸이 매여 있고 잠이 부족한 건 물론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말할 수 없이 힘든 일이다. 하지만 지나고보니 그건 일시적으로만 지속되는 순간의 감각일 뿐이었다. 도와줄 사람 하나 없었고 몸은 아이에게 묶여 있었을지언정, 일인 다역을 하며 그 어느 때보다도 어떤 시선에도 갇히지 않은 채 자유롭고 행복했다. 말 못 하는 아기와 눈으로 소통했고 마음으로 알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몸에 밴 통제로, 어른이 되어서도 나도 모르게 스스로에게 지나친 자제를 가하며 그게 나 자신을 옥죄는 건지도 모르고 살아왔는데, 아이와의 소통을 통해 마음대로 표현할 수있는 자유가 어떤 건지를 처음으로 조금씩 깨달아갔다.
그렇게 어릴 때부터 가졌던 교육에 대한 가치관을 자유롭게 펼치고 있다는 데에서 나는 행복을 얻었지만, 반대로 많은 육아서와 친구들은 세상 모든 엄마가 육아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고 말하는 것만 같아 그 앞에서 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물론 나도 육아를 시작하며 어떤 부분은 남편과 심하게 대립하기도 했고 엄마와 여자 그 사이의 존재론적 고통에 대해서도 꽤나 절절했다. 단지, 긴 마음의 어둠을 안고 살아왔던 나에게도 행복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기에, 그 행복이 고통에 잠식되어버리는걸 가만히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지나온 시간들이 없다면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 있기에 그 누구 앞에서도 단언할 수는 없지만, 나는 육아가 정말 행복했다. 결핍된 사람이라서 그랬다. 나에게 육아란 너를 위해 희생하는 과정이 아니라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사람 하나 키우는 일이 말처럼 그리 간단할 리는 없었다.
어느 날엔가는,
“음, 음마, 어~ 어~ 어~ 어~ 어! 어! “
“아, 아, 아, 악~~~~~~~~~~~!”
(1분, 5분, 10분, 20분............ 30분)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1년 넘게 첫째와 둘째를 함께 가정보육했다. 처음엔 중국인 보모 아줌마를 반나절 쓰다가 6개월 후부터는 나 혼자 둘을 봤다. 그러면서 중요한 시기에 한 명에게 집중하지 못했고 이중언어에 노출된 아이는 말이 늦었다. 태어나 24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을 표현할 명확한 수단이라고는 본능적인 울음밖에 없었던 아이는 때로 몸부림을 쳐댔다. 변화무쌍한 날씨 덕에 옷을 다 입었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져 나가지 못하게 되었거나, 형아가 장난감을 못 만지게 한다거나, 배가 고프거나, 배가 부르거나, 아니면 그냥 심기가 불편하거나.
남편은 이래도 저래도 막무가내인 아기에게 윽박지르거나 방 밖으로 나가 머리를 감싸 쥐었으며, 친정엄마는 아이 우는 모습을 보고 “세상에 부르르 떨면서 얼굴이 시꺼멓게 되도록 우는 애는 처음 보네. 쪼그만 애가 성질머리 봐라. 지 형아랑은 딴판이네. 너 앞으로 얘 때문에 고생 꽤나 하게 생겼다. 버릇 고쳐야지 안된다. 울음 그칠 때까지 방에 혼자 내버려 둬라.”라고 하셨다.
너무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 당시 너무한 쪽은 다름 아닌 둘째 아이였다고, 그렇게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울음소리며 고집이며 정말 대단했다. 하지만 나는 발광하듯 숨을 쥐어짜다 가끔은 숨이 넘어갈 듯 우는 아이를 두고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어떤 말도 먹히지 않고 오히려 자극이 되어버리는 꼴을 보며 눈을 감고 본능과 직관을 찾았다. 아이의 울음에는 사실 아무런 공격성도 없고, 나의 인격을 흠집 내려는 고약함도 전혀 없었으며, 단지 엄마의 위기의식을 발동시킬만한 ‘신경 스크래치’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실제로 귀가 찢어질 것 같았고 머리가 울려댔고 심장도 쿵쿵거렸지만 나는 아이 앞으로 가서 눈을 쳐다보고 손을 잡았다. 손을 잡아 빼고 뒷걸음질 치면 힘을 줘서 마주 안았고 발버둥 쳐 도저히 잡을 수 없을 때는 최대한 다가가 일정 거리를 버텼다. 눈에 나름 힘을 줘서 쳐다보다가 아이가 헐떡대며 잠깐 숨을 멈출 때를 틈타 “엄마는 너를 기다릴 거야. 울음 그칠 수 있어. 그치고 엄마한테 와.”라고 했다. 그리고 무한 반복했다. 때로는 옆에 놓인 장난감들을 조금씩 정리하면서도, 빨래를 개면서도. 그리고 무언의 교감에는 이런 것들이 담겨 있었다. ‘네 마음대로는 할 수 없어. 하지만 네가 미워서 못하게 하는 게 아니야. 울음을 그치면 잘했다고 안아줄 거야. 그때까지 엄마는 네 옆에서 기다릴 거야. 할 수 있어.’ 그리고 기적처럼 울음이 잦아들었을 때 “많이 힘들었지, 우리 아가. 그런데 정말 잘했어. 이거 봐 민이 할 수 있어. 울음 그칠 수 있어. 엄마한테 ——라고 하고 싶었구나...’
품에서 잦아드는 아이는 한 마리의 축 쳐진 젖은 아기새 같았다. 보들한 등을 손으로 감싼 후 내려다보니 머리털은 새 털처럼 숭숭 삐죽하게 나 있었고 미친 듯이 팔딱대던 심장 박동은 규칙적인 리듬으로 내 가슴에 전해져 왔다. 하얀 얼굴과 맑은 눈이 축축하게 번들거렸다. 말 못 하는 아이, 세상에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이렇게 어린 너의 마음에도 고통이 있었구나. 울다가, 울다가, 관철되지 않은 울음이 더 큰 울음을 불러와 결국 그에 잠식되어버리고 마는 그런 종류의 고통. 하지만 그렇게 품 안에서 고통을 받아낸 나는 기뻤다. 고통이란 한 곳에 머물러 있을 때 아픈 것이며, 나누면 0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나는 아이를 통해 다시금 알게 되었다.
그 뒤로 아이는 해도 되는 것, 하면 안 되는 것을 구분하여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어느정도 스스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수많은 울음 속에서 뭘 원했었는지는 온데간데없었고 원하는 마음을 받아주었다는 안도감, 사랑만이 남았다.
짧은 시간으로 기억되지만 실은 오랜 여정이었다. 그 시기를 지나자 아이는 무섭도록 말문이 터졌고, 지금은 또래보다 분명한 발음과 어휘력을 뽐낸다. 그 시간들을 지나 아이와 나 서로가 알게 된 것들이 있다. 시간이 걸릴 뿐이고, 믿음이 필요할 뿐이라는 것. 언제까지고 지치지 않고 곁에서 지켜봐 주면 어느새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 더딘 아이를 바라보며 나에게 되뇌었던 말들이 이제는 어느새 아이 마음에 고스란히 들어가 있는 것을 본다. 형아가 하는 어려운 미로 풀기 학습지를 눈독 들여서 한 장 찢어주면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려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길을 찾아나간다. 5살밖에 안됐는데 또 형아가 타는 두 발 자전거를 눈독 들여서, 타고 있던 네 발 자전거의 보조바퀴를 떼어주면 연습해서 결국 타고 만다. 시간이 걸릴 뿐이라는 걸,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하면 언젠간 정말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아이는 알고 있었다.
첫째가 40개월 되어서야 유치원에 다니게 된 후 처음으로 둘째와 나만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던 때가 떠오른다. 알고 보니 이 아이는 잘 우는 만큼 정말 잘 웃었고 싫다는 표현만큼 좋다는 표현이 확실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하고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장점만큼 단점이, 단점만큼 장점이 존재한다. 장점과 단점은 일직선상의 양극에 자리 잡고 있었을 뿐 실은 같은 선 상에 위치한 하나의 막대기와도 같았던 것이다. 오늘도 나는 아이 얼굴의 반만큼 활짝 벌어지는 커다란 웃는 입에 깜짝 놀라고, 그 입에서 나오는 화통 삶아먹은 웃음소리에 깜짝 놀라고, 세상이 떠나가라 하는 커다란 울음소리에도 여전히 놀란다.
큰 소리로 뒤집어져 우는 아이를 여~영차 안아서 들어 올리려다 무거워서 못 드는 시늉을 하며 으흠~ 끄응~ 소리를 내면, 아이는 울다 말고 살짝 실눈을 뜬 채 웃음을 참느라 입을 오물오물한다. 그러다 에헤헤~ 하고 바로 반달눈이 되어버리고 마는 너, 그렇게 또 하나의 선물이 되는 오늘의 시간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