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원 Mar 31. 2021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광장무와 우소웨이

적당히 시원하고 적당히 상쾌한 공기가 좋다. 가만히 있어도 공기의 움직임이 느껴지고 나도 순환하는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것만 같다. 그래서인지 숨만 쉬어도 내 안에 답답한 무언가가 저절로 꺼내어지는 느낌이다. 많이 익숙해졌다고 해도 여전히 낯선 이 곳에서 아마도 내가 온전히 들어맞는다고 느껴지는 곳은 자연뿐이라서일까. 공기는 나의 폐를 거쳐 녹아들고 나를 거쳐 토해진 숨은 자연의 일부로 녹아든다. 나도 자연 속 순환의 일부로 기능하며 바로 전보다 조금 더 살아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한자로 쓰인 원색의 간판들 사이 흐드러지게 핀 꽃들과, 가느다랗게 흔들리는 나뭇가지들, 새싹의 푸른빛은 어쩌면 그렇게도 같을 수 있는지.. 나의 동네에 있던, 내가 알고 있던 벚꽃과 여기 피어난 벚꽃이 같은 빛깔을 내고 있다는 것에 무한한 위로를 받는다. 그래서 미세먼지와 황사 없는 귀한 푸른 하늘이라도 보는 날이면 무조건 나가고 본다. 한겨울이나 무더운 여름엔 아이들이 하원 후 밖에서 놀고 싶다고 하는 소리가 무서웠는데 요즘 같은 날씨엔 나도 환영이다!


그 날은 집에서 놀다가 밥도 다 먹고, 레고 놀이도 한참 하다가 어둑해질 즈음 밖에 나갔다. 환한 낮에 놀다 들어가는 것도 아쉬워 저녁 무렵의 산책까지 보채는 아이들. 그동안엔 겨울 내내 영하 20도까지 기본으로 내려가는 날씨 때문에 해 떨어지고 밖에서 논다는 건 감히 생각도 못했었다. 밖은 이미 어둑해져 있었지만 봄이니까, 이런 사치는 얼마든지 좀 부려봐도 되지 않냐는 마음으로 해가 떨어지려 하는데도 당당히 아이들의 요구에 응해주었다. 그렇게 자전거와 킥보드 하나씩 끌고 바로 집 앞 길 건너에 있는 큰 공터에 도착했다.


멀리서 본 광장 모습. 오른쪽은 아이가 그린 그림.

이 곳은 아파트 앞 자잘한 상가들과 함께 자리한 커다란 공터로, 아파트의 이름을 붙여 찐디광장이라 부른다. 광장 왼편엔 아이들이 피터팬 시계탑이라 부르는 높은 시계탑이 하나 우뚝 서있고 광장 가운데에는 로마에서나 봄직한, 역시나 또 커다란 분수대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빨간 벽돌로 지어진 고풍스러운 건물들에는 자잘한 가게들이 입점해 있고 그 뒤로는 광장 이름의 주인공인 ‘찐디’아파트가 쫙 펼쳐져 있다. 실상은 이렇다. 빨간 벽돌을 앞세운 콘크리트 아파트, 시곗바늘이 멈춰버린 허울 좋은 시계탑, 한 번도 물이 흐른 적 없던 분수대. 벽돌은 그럴듯한 이미지를 담당하고, 시계탑은 그걸로도 모자라 멀리서도 보이는 그럴듯한 이미지를 담당하고, 분수대는 물이 없으니 그냥 놀이터다. 그것도 인심 좋은 아이들 덕이다. 무엇이 본래 역할이었는지 헷갈리지만 정작 그것들은 전혀 상관하지 않는 듯 보인다.


우소웨이 (无所谓)

‘상관없어, 아무렴 어때, 아랑곳하지 않아’라는 뜻




7시쯤 되었을까, 저녁을 먹고 광장무를 추러나온 사람들이 어디선가 우르르 몰려왔다. 대부분 나이대가 어느 정도 있고 남녀 구분은 없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코로나와 오랜 겨울 뒤의 일상이라 그런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뿜어져 나왔다. 리더로 보이는 사람이 앞에 서서 준비해 온 스피커의 버튼을 누르자 곧 큰 소리로 노래가 흘러나왔다. 가사를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멜로디는 익숙한 노래였다. 열을 맞춰 줄을 선 사람들이 리더의 몸짓에 따라 노래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춤이라기 보단 까딱거리는 손짓, 발짓의 군무에 가까워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제각각의 흥취에 따라 추는 춤이 맞다. 근처에 있던 우리들은 잠시 시선을 고정하다 하던 행동을 계속했지만 몇몇은 선 자리에서 곁눈질을 하며 살랑살랑 몸을 흔든다. 하나 둘, 살랑이던 공기는 손짓 발짓을 따라 빠르게 순환하기 시작하고 광장은 어느새 아이들의 뜀박질, 꺅꺅거리는 웃음소리와 어우러지며 곧 생기와 활기 같은 것들로 가득 찬다.


아이들도 그 어느 때 보다 신이 나서 자전거를 타고 분수대 주변을 쌩쌩 크게 돌았다.

스피드가 느껴질 정도로 쌩쌩, 아이들도 나 만큼이나 크게 숨을 토하며 몇 번이고 달렸다. 그때였다. 쾅~! 으아아 앙~~~~~

두 발 씽씽카를 타고 신나게 달리던 첫째 아이와 맞은편에서 자전거를 타고 코너를 돌던 어린 남자아이가 크게 부딪힌 것이었다. 으아아 하던 아이는 할머니 품에 안기자 그야말로 떠나가라 통곡을 했고 그 울음소리는 내 귀를 통과해 광장 전체를 울렸다. 괜찮냐고 물어보는데 울음소리가 워낙 큰 데다 달래느라 정신없는 할머니 귀에는 닿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니, 인상 팍 쓴 얼굴을 보니 알면서도 못마땅해 일부러 대답을 안하시는건가. 나는 첫째 아이에게 다른 아이들과 같은 방향으로 타도록 주의를 주고 사과하게 한 다음에 상태가 괜찮은지 확인하려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계속 아이 옆에 서 있었다. 얼마나 울었을까, 아이의 울음은 흐느끼는 소리로 잦아들었고 할머니는 아이 다리를 몇 번 접었다 피며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바지를 탁탁 털며 没事!메이스(직역하면 일 없다, 괜찮아라는 뜻)를 외치며 몸을 일으키셨다. 정말 괜찮은지 거듭 물었지만 손사래와 함께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반대방향으로 빠르게 달리다 정면충돌했기 때문에 크게 다쳤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서 보니 그 아이는 자전거 대신 분수대 주변을 두 발로 신나게 뛰고 있었고 할머니는 음악에 맞춰 다시 살랑살랑 춤을 추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가, 휴..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몇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어디선가 또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함께 놀던 어린아이 둘이 다투다가 세게 때린 모양이었다. 두 아이를 뒤에서 붙들고 떼어내며 아이를 나무라는 다급한 목소리도 함께였다. 이번엔 두 아이의 울음소리가 섞여 아까보다도 더 큰 소리가 났다. 엄마가 되기 전 어린아이의 울음은 그저 작은 소음에 불과했던 것 같은데 엄마가 되고 난 후의 아이 울음소리는 신경 깊숙한 곳까지 닿아 내면 어딘가를 건드리고 때론 무너뜨린다. 다행히도 나는 이번엔 관찰자였다. 한 발짝 떨어져 들리는 찢어지는 울음소리 옆에는 쌩쌩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이 있었고 흩날리는 웃음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광장무를 추고 있던 사람들 몇 명은 힐끗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나긋한 손짓을 계속했다. 악을 쓰며 우는 소리는 광장무의 음악 소리에 섞였다가 음정 박자를 무시하고 줄기차게 울려 퍼졌다. 엄마들의 한숨소리도 조금 섞여 들렸던 것은 환청이었을까.


광경을 지켜보다 문득, 이 모든 게 꼭 한 편의 희극 같다는 생각을 했다. 동그란 찐디광장은 무대요, 겉멋 든 시계탑과 벽돌은 가짜 무대 장식, 그리고 춤을 추는 사람들과 아이들은 배우였다. 나만 홀로 비켜 앉은 관객이었다. 눈 앞의 무대에서는 마음껏 달리다 예고 없이 부딪히고, 아파서 울다 다시 달리고, 그러는 동안 옆에선 또 하나의 곡소리가 나는 그런 인생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내 눈길이 머무른 곳은 아랑곳하지 않고 춤을 추는 한 무리의 사람들. 갑자기 그들이 걷잡을 수 없이 부러워졌다. 매일 같은 시각, 웃는 얼굴로 춤을 추고 있지만 한 명 한 명의 울음도 분명 있을 것이었다. 그 울음을 삼키지 않고 손 끝으로 탁탁 털어내는 몸짓을 보며, 그리고 메이스~ 한 마디로 아무렇지 않아 졌던 할머니를 보며, 무대에 오르지 않은 사람은 나 뿐이라는, 이 희극에 어울리지 않는 건 아마도 나 뿐일지 모른다는 그런 생각을 했다.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무언가를 아랑곳하는 사람은 그러니까, 나 혼자 뿐이었다. 마음속에 쌓여왔던 말들, 바로 어제 있었던 다툼, 그 모든 것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채 나는 나 혼자만의 무대에 서서 스스로에게만 동그란 조명을 비추고 있었다.


마음이 타협하는 순간은 결국 찾아오지 않았다. 맞는  아니라고, 아닌  맞다고 거짓 긍정할  없을  참고 침묵했다. 하지만  침묵은 무거운 돌과 같이 나에게로 가라앉아 너와  사이의 통로를 비좁게 하고 말았다. 가끔은 하늘하늘한 표정으로 광장무를 추는 그들처럼 나지막이 우소웨이라고, 한없이 가볍게  끝으로 조금씩 날려 보내보면 어떨까. ‘아무렴 어때라고 찰싹 쳐대듯 뱉는 말투에 담아  묻은 바지를 털듯 탁탁 털어버렸으면 좋겠다. 머무르지 않는 공기가  끝에 닿아 조금씩 나를 싣고 가다 보면 무거운 마음도 조금씩 마모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는 봄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근데 왜 말을 못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