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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 May 04. 2021

워라밸은 어디에?

근로자의 날과 노동절


중국에서는 지난 주 주말부터 긴 노동절 연휴가 시작됐다. 노동절은 춘절, 국경절과 함께 중국의 3대 황금연휴로 꼽힌다. 대체 휴일인 주말을 포함해서 총 5일간의 휴일이다. 올 춘절까지는 코로나로 인해 이동에 제한이 있었는데, 얼마 전에 있었던 청명절 연휴부터는 중국 내 이동이 비교적 자유로워졌다. 이번 노동절에는 대대적 이동, 그리고 폭발적 소비가 예상된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휴일 며칠 전부터 아이 유치원의 반 아이들 몇몇이 나오지 않아 다른 엄마들에게 물어보니, 누구는 만리장성을 보러 북경에 놀러 갔다고 하고, 누구는 또 가까운 도시라도 며칠 갔다 온다고 한다. 코로나가 어느 정도 잠잠해지고, 백신을 맞은 사람들도 늘어나면서 그동안 강한 통제로 눌러왔던 뭔가가 뿜어져 나오는 듯하다. 적어도 내가 있는 이 도시에서는 봄기운과 함께 무언가를 반기는 만연한 기운이 물씬 풍긴다.


그렇게 이번 노동절엔 중국 내 2억 명의 인구가 움직일 것이라 전망한다는데, 나는 그 흐름에 동참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 틈에 섞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안 돌아다니는 것과 못 돌아다니는 것은 다르다. 노동절의 의미를 찾아 이동하는 많은 사람들 속엔 남편이 있고, 나는 두 아이들과 함께 집에 남았다.


무슨 소리인고 하면, 간만의 긴 연휴를 맞아 회사의 전 직원들이 3박 4일의 체육대회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직장인들의 체육대회, 골프.

누군가에겐 여가일 것이고 또 누군가에겐 노동일 것이 분명한 체육대회. 그리고 그들 뒤엔, 아내와 아이들이 남겨졌다. 다름 아닌 노동과 함께.


잠깐, 어디서 이의 제기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그것도 업무의 연장선상이다..., 놀러 간 줄 아느냐.. ’

그렇다. 사무실을 벗어났다 뿐, 그곳에도 분명 상하 관계가 있고 머리 아픈 업무가 있다.

직업인이 아닌 직장인으로서의 업무는 일 뿐만이 아니니까, 직장인으로서의 업무는 때론 그런 곳에서 더욱 진가를 발휘하기도 하니까.


그렇다면 직업인이 아닌 직장인으로 연명하다 이른 퇴직에 맞닥뜨린 자신의 낯선 존재에 어안이 벙벙해지지 않기를, 그리고 직장인이 아닌 직업인으로서 별 가치 없는 일에 3박 4일이나 되는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모른 체 하지 않기를 바란다. 지위와 권력 남용이 아니라 그저 모두를 ‘네맘 내 맘’이라 여길 정도로 무딘 사람이라면 할 말 없지만..

그저 업무를 배제한 친목도모 혹은 취미 공유일 뿐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건 과연 누구의 취미인지 묻고 싶다. 골프 동호회도 아닌 업무로 모인 조직 안에서 친목 도모 목적으로 참여하는 체육대회라면 하루, 길어야 1박 2일로 족하지 않을까? 골프를 좋아하지 않는 누군가에겐 그런 체육대회란 휴일을 반납한 업무의 연장선상일 테니 말이다.


또 하나, ‘집에서 아이들과 있는 게 무슨 노동이냐고?’

8년간의 강도 높았던, 소위 말하는 빡셌던 회사 생활과 두 아이 7년 육아를 개인적인 기준으로 비교하자면, 노동 강도는 말할 필요도 없이 기승전결 육아 쪽이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절대적인 강도 우위를 차지한다.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일이기에 온갖 노동의 강도를 상쇄할 수 있으므로 ‘행복하다’라고 퉁칠 수 있는 것이다. 단적으로 회사에는 퇴근 시간이 있지만 육아에는 퇴근이 없다.


남편은 밖에서 돈을 벌어와야 하니, 아내는 집에서 남편이 하는 일에 지장이 없도록 내조를 잘해야 한다..라는 훈계는 듣기만 해도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옛날 사람’스럽다. 하지만 대놓고 드러낼 수 없을 뿐, 윗세대에서는 여전히 만연하고 있는 마인드인 것으로 느껴진다.

지금 살고 있는 이 도시로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장염으로 탈수가 와서 병원에 가다 의식을 잃고 쓰러졌던 적이 있었다. 남편은 그날따라 회사에서 중요한 일이 있어서 병원에 바로 오지 못했고 대신 다른 직원이 병원 수속 업무를 처리해주고 돌아갔다. 어린 두 아이들을 응급실에 데리고 있을 수가 없어서 집에 잠깐씩 와서 청소해 주시는 중국 아줌마에게 아이들을 맡겼고 나는 응급실에 혼자 누워 있어야 했다. 아이들은 엄마 없는 환경이 낯설어서 울었지만 남편은 병원에 누워있는 나에게도, 우는 아이들에게도 오지 못했다. 윗사람에게 보고해서 양해를 구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너희 집은 보모 아줌마도 안 쓰냐는 말이었다. 나는 밤 12시가 될 때까지 홀로 링거를 꽂고 병상에 누워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가끔가다 들락거리는 삭막한 중국 병원 응급실에서 혼자 누워있는 건 정말 무서웠다. 부모도 친구도 없이 세상에 뚝 떨어진 것만 같았다. 남편은 뒤늦게 일이 다 끝나고 급히 아이들을 돌보러 먼저 집에 갔지만 아이들은 엄마가 없다고 잠을 자지 않았고, 남편은 밤 12시가 다 되어서야 응급실에 두 아이를 데리고 등장했다.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 함께 하는 가족이 있는 삶을 선택한 것이지, 나에게 경제적인 조달을 해줄 사람과 결혼한 것이 아니다. 한국에 있었을 때 나의 연봉은 남편 연봉의 거의 두 배였다. 한 사람의 인생과 행복에 대한 진지한 선택이, 그 소중한 시간들이 외부의 누군가로 인해, 조잡한 권력으로 인해 휘둘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지금 말도 안 되는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게 아니기를 바라며..




포장이사 없는 중국에서 이제 막 이사를 마쳤고,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나니 녹초가 된 몸이 남았다. 휴일은 다가왔는데, 홀로 또 다른 노동에 던져진 느낌이라 사실 이성적으로 따져보고 싶었지만, 다소 격한 느낌을 풀어놓아 버렸다.


나는 80년 초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다. 워라밸, 일의 재미를 중시하고 디지털에 강하다는, 그리고 앞으로의 사회 변화를 리드할 것이라는 ‘밀레니얼 세대’. 지금 읽고 있는 책 ‘인디 워커’를 읽으며 변화의 흐름을 더욱 확신했다. 하지만 적어도 내 주변, 낯선 땅 안의 작은 한인 사회에서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한국 사회 변화의 흐름에 동참하지 못하고, 중국 문화와도 거리를 둔 그들만의 시대착오적 리그가 실현되고 있다.


중국에 산지는 8년째가 되어가는데, 처음 왔을 때부터 한국과 가장 다르다고 느꼈던 부분 중 하나 역시 다름 아닌 ‘워라밸’이었다. 공동체를 중시하는 건 맞는데, 그 안에서의 개개인의 행동은 무척 합리적인 듯 보였다. 한 사람의 체면을 존중하고 중요시하는 중국인들의 특징처럼, 조직에서도 한 개인의 영역을 존중하는 느낌이 있다. 한국 직원들은 야근하지만 중국 직원들은 예외 없이 칼퇴근하고, 황금연휴 날 회사 단체 행사에 무조건적으로 참여하는 일도 드물다. 가족이 있을 경우 본인이 원하면 아이들을 데리고 참여하기도 한다. 물론 최근에는 중국 회사들 사이에서도 점점 경쟁이 심해져서 근무 환경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하는 이야기들도 들리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우리와는 마인드 자체가 조금 달라 보인다. 한 직장에 뼈를 묻었던 윗세대들도 없고, 이직도 빈번한 지 오래다.


휴일에 뭐 할 건지 유치원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남편이 회사에서 3박 4일 체육대회 간다고 얘기하면, 당연히 가족이 다 같이 참여하는 건 줄 안다. 가족은 안 가고 회사 직원들만 참여한다고 하면 놀란다. 그리고 노동절 휴무 동안 혼자 육아해야 하는 나를 마음 깊이 안쓰러워한다. 이들은 육아의 ‘노동’에 대해서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우리는 예전에 업고 안고 대여섯씩 키웠어’라는 엄마, 할머니 세대 앞에서는 엄살도 못 부렸었는데, 여기에선 하나를 키웠든 둘을 키웠든 모든 엄마가 대단하다. 보통 아이 하나를 부모, 조부모까지 넷이 같이 키우다 보니 그런 것도 있지만, 내가 만난 중국인들은 모두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엄마에게 특히 친절했다. 다른 예절이나 에티켓은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아이와 엄마라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많은 배려를 받는다. 노 키즈존 같은 건 찾아볼 수 없거니와, 아이 둘을 혼자 데리고 다닌다는 사실만으로도 언제 어디서나 뜬금없이 대단하다는 칭찬을 받곤 한다.




남편이 3박 4일의 긴 여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얼굴이 햇볕에 까맣게 그을렸고 목 뒤는 선크림을 안 발랐는지 손 대면 타오를 것 같이 벌겋다. 머리 양 옆에 난 흰머리는 색이 더 뚜렷해졌고 까만 머리마저 어쩐지 색이 바랜 것 같이 보인다. 지친 얼굴로 108배도 아니고 108홀을 쳤다면서, 골프를 좋아할 수도 있었는데, 앞으로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고 실실 웃고는 허겁지겁 밥만 먹고 쓰러져 잤다.


중국 직원들과 찐하게 술 한잔 하며 소통하기를 즐기고, 집안일하는 나를 쫓아다니며 ‘여보 이 아이디어는 어때?’ 하고 묻던 남편의 얼굴이 겹친다. 괘씸한 꼰대들~ 그리고는 나도 지친 몸을 이끌고 씻으려고 거울을 보는데 질끈 묶은 머리가 다 흐트러져 있고 다크서클은 턱까지 내려와 있다. 워킹과 라이프의 밸런스가 와장창 깨진 불쌍한 두 영혼들!


‘근로자의 날’과 ‘노동절’의 사이에서..

우리의 워라밸은 어디에 있을까?



<근로자의 날>

근로자의 열악한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지위를 향상하기 위해 각국의 근로자들이 연대의식을 다지기 위한 법정 기념일

중국에서는 1920년 5월 1일 베이징, 상해 등에서 대규모의 시위와 집회가 있었고 일찍이 8시간의 일, 8시간의 휴식, 8시간의 교육을 일컫는 ‘38제’를 제창했다고 한다. 현재의 노동절은 5일간의 공적 휴무, 그리고 중국 3대 황금연휴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 ‘근로자의 날은’ 일제 강점기 때 시작되었고, 중간에 날짜와 명칭이 바뀌기도 했으며, 국내 법령 중 가장 단순하다. 2021년 ‘근로자의 날’은 토요일이라서 별도의 휴일 혜택은 없으며 근로자의 날은 주말과 겹친다고 해도 대체 휴일이 없다.

역사적인 배경을 살펴보면 우리나라 근로자의 날에 대한 현 이슈가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우리가 스스로 기념해야 할 역사가 있는 날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세계 근로자들의 연대의식을 위해 도입하게 된 기념일에 가깝다.


헌법은 ‘모든 국민이 일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의 일할 권리’만 보호하고 있는 현실.
근로기준법은 모든 형태의 일을 포괄하지 않습니다. 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이른바 ‘월급쟁이’만 근로자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 헐거운 규정을 빠져나가는 사례는 부지기수입니다. 가사 노동자는 물론이고, 골프장 캐디와 학습지 교사 등 특수고용 노동자도 근로자가 아닙니다. 최근 급증한 배달 기사와 돌봄 도우미 등 플랫폼 노동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비임금 근로자에게도, 공무원에게도 근로자의 날은 휴일이 아닙니다.... 국민의 일부만 쉬는 다소 이상한 반쪽짜리 휴일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kbs pick2021.5.1)

 5월 1일마다 근로가 맞는 말인지, 노동이 맞는 말인지를 왈가왈부하기보다는, '근로자의 날' 안에 담긴 진정한 노동, 그리고 삶의 의미를 들여다보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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