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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 Apr 12. 2021

남편이 집에 있는 월요일

월요일이다.

그런데 남편이 집에 있는 월요일이다. 어색하다.


어제는 호박죽을 끓여서 김치랑 줬고, 중간중간 차를 끓여줬고, 오늘 아침 병원에 다녀온 후엔 대추를 넣은 좁쌀죽을 끓여서 시금치 무침, 감자조림, 멸치볶음이랑 함께 쟁반에 담아 줬다. 심한 몸살이 나서 앓고 있는 남편 맞춤 식사다. 오밀조밀 담긴 죽과 반찬들을 보며 또 어색하다.


매일 끼니를 챙기지만 그것과는 좀 다르다. 보통 때는 7살, 5살 아이들이 함께 먹을 수 있는 메뉴를 고려하다 보니, 어른의 취향은 조금씩 빠진다. 솔직히 아이 반찬 만들고 또 어른 반찬 만들려면 힘들어서 아이 반찬 쪽으로 좀 더 기울었던 건 사실이다.


자꾸 내가 남편에게 뭘 갖다 주고 챙겨주는 것도 어색하다. 남편은 주말에도 나보다 먼저 일어나고 내가 뒤늦게 거실에 나와 반쯤 감긴 눈으로 입을 헤 벌리고 (침도 묻어있을지 모른다) 앉아있으면 (널브러져 있으면) 내 앞으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가져다준다. 남편이 출장 가면 마음속으로는  ‘아, 출장 가면 밖에서 중국음식만 먹을 텐데, 집에 돌아오면 매콤한 한국음식 해줘야겠다.’ 생각하면서도 막상 출장에서 돌아와 해맑은 얼굴로 집에 들어서는 남편을 보며 ‘나 진짜 힘들었어~.’라는 말부터 나온다. 나 못지않게 밖에서 힘든 일이 있었을 텐데도 남편은 그 말을 듣자마자 분주한 몸짓으로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 말한다.

‘이제부터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내가 저녁 해줄게.’


말은 그래도 남편이 할 줄 아는 음식은 거의 없다. 원래는 라면밖에 없었고, 나랑 아이들이 한국에 잠깐씩 들어가 있을 때 매일 사 먹을 수가 없으니 조금씩 유튜브 보고 따라 해 본 게 전부다. 타고난 손재주가 전무한지라 계란 볶음밥, 된장국, 해물 라면 끝! 메뉴는 그 세 가지 중 하나라는 걸 알고 있어서 남편을 놀린다. 그러면서 된장국은 싫어~라고 덧붙인다. 저녁을 먹고 나서 정리하려고 주방에 들어가 보면 온갖 도구, 그릇들이 다 나와 있다. 앉아서 남이 해준 밥 편하게 잘 먹어놓고는 그때부터 잔소리 시작이다.




결혼했을 때,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구제해주고 있다는 걸 너무 잘 알았다. 그럭저럭 번듯한 직장, 번듯한 외모를 가졌던 남편은 그것 외엔 물질적으로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의 하루는 멋진 습관들로 빛이 났고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 남편보다 더 좋은 직장, 그럴듯한 겉모습을 하고 다녔던 나는 반대로 나의 빈곤한 마음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으려 전전긍긍했었다. 그렇게 만났기에 남들 다 싸운다는 신혼 때도 싸우지 않았다.


3년간의 긴 신혼을 보내면서 ‘우리 같은 커플은 없을 거야’라며, 행복의 정점을 찍으려던 순간, 아이는 태어났다. 육아는 우리 둘 사이의 많은 것을 바꿔놓았지만 바뀐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중국에 살면서 도시를 네 번 옮겨 다녔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정착할 만하면 1, 2년 만에 또 옮기는 식이었다. 그렇게 타지에서 생활하며 해결해야 할 일들은 항상 위협하듯 불시에 다가왔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매섭게도 휘몰아쳤고 그럴 때마다 의지할 사람이 서로밖에 없었다는 게 오히려 서로에게 독이 되곤 했다. 그의 매력이라 여겼던 무덤덤함은 최악의 센스가 되었고, 나의 세심함은 극도의 예민함이 되었다. 나는 끝까지 논리적인 평정을 따졌지만 남편은 종종 화를 참지 못했다.


그리고..

좁혀지지 않을 것만 같던 평행선을 며칠이고 달리던 어느 날 밤, 먼저 내민 따뜻한 차 한잔에 모든 시간들이 녹아버리기도 한다는 것,

함께 끝없이 펼쳐진 산등성이를 바라보다 불어오는 자연의 바람 한 점이 한순간에 마음을 누그러뜨리기도 한다는 것을,

고집스럽게 닫힌 마음이란 그렇게도 우스워진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씩 알아간다.


건망증 심한 내가 밖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들어와도, 아이 킥보드를 밖에 두고 왔다가 한참 후에야 생각이 나서 결국 못 찾았을 때도,

다시 사면 된다고 그럴 수도 있다고, 작은 일에서부터 큰 일까지 뭐든지 자책부터 하는 나를,

그렇게 작은 절망의 구덩이에 수없이 빠지고 마는 나를 매번 건져 올려주는 사람은 남편이 처음이었으니까.



작은 뒷산 같은 등을 돌리고 해 뜬 월요일에 앓아누워있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다시금 서로가 서로를 구제해줬다고 여겼던   마음을 잊지 않기로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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