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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 Apr 24. 2021

이사를 앞두고

내일모레면 이삿날이다.

중국에 살면서 이게 몇 번째 이사던가.


처음 한국에서 중국 상해로 들어올 땐 신혼살림을 컨테이너에 이고 왔다. 결혼 1년 후에 남편이 중국으로 발령 났기 때문에 신혼살림은 모두 새 것이었다. 도저히 팔 수가 없어서 가족들에게 필요한 가전 조금씩을 나눠주고 나머지는 다 들고 왔다. 또 다른 시작, 첫 번째 이사였다.


두 번째는 상해에서 청도였다. 그때 난 첫째를 임신한 상태였다. 입덧 때문에 한국에 들어가 있을 때 남편 혼자 이사를 했다. 청도를 떠올려 보면 집보다 집 이 더 기억에 많이 남는다. 카페거리, 청도 바닷가, 맛있었던 식당, 중국어 배우러 다녔던 학교. 만삭의 임산부로 언덕을 오르고 버스를 타고 다녔던 길목. 설렘의 시간들.


세 번째는 청도에서 다시 상해로. 주재원은 허울 좋은 유목민이었다. 우리는 둘에서 셋이 되어 상해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때부터 '집'에 대한 기억이 선명해졌다. 집에서 아기를 재우고 집에서 아기와 놀아주고 언제나 집에서 기진맥진하고 남편을 기다렸다. 한 번은 소파 밑에서 커다란 도마뱀이 소름 끼치는 발소리를 내며 나타나서 기겁을 하고 아기랑 방으로 도망갔는데 남편이 퇴근할 때까지 방에서 한 발짝도 나가질 못했다. 아파트는 강가 근처였고 우리 집은 2층이었는데 듣도 보도 못한 벌레가 정말 많았다. 여름엔 문을 다 봉쇄해도 화장실 배수구를 통해 모기가 들어왔다. 모기장을 치고 자다가 잠이 깨서 보면 모기장 겉면에 모기가 열댓 마리는 붙어있었다. 그래도 힘들었던 기억보다 좋았던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벌레와 아기와 나.


네 번째는 상해에서 북경으로. 첫 아이가 돌을 막 넘길 까지 북경에 살았는데, 다행히 한 아파트에 아이 또래 친구가 두 명이나 있어서 세 집이 자주 교류했다. 일주일에 세 번은 돌아가며 서로의 집에 모였고, 같이 장을 봤고, 밥을 먹었고, 육아로 지친 마음을 나눴다. 그때의 집을 떠올려보면 그들의 집이 같이 떠오르고, 그때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면 올망졸망했던 남자아이 셋이 쪼르륵 함께 떠오른다. 떠날 땐 많이 울었다. 미세먼지와 뿌연 하늘 아래 마음만은 티 없이 맑았던 나날들.


다섯 번째는 북경에서 지금의 선양으로. 둘째는 지금까지 이 곳에서 계속 컸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유치원 위치 등으로 인해 두 번의 이사를 했었고 이제 곧 세 번째다. 믿기지 않지만 8년간 이사 횟수로만 따진다면, 내일모레가 여덟 번째다. 


자그마치 여덟 번째 이사인데, 도시를 옮기는 것도 아닌데 이사를 앞둔 마음은 언제나 그렇다. 새로운 집이 기대되면서도, 정리할 생각에 골치 아프고, 그래서 앉은 채로 정리할 물건들을 눈으로라도 찬찬히 훑어볼라치면 공간 하나하나에 시선이 머물러 버린다.


 여기 침대 쪽 창가, 햇빛도 잘 들고 따뜻해서 아이들이랑 여기 같이 앉아 책 읽으면 참 좋았는데, 그러다가 침대로 뛰어가 어떨 땐 음악 틀어놓고 끝도 없이 방방 뛰었지. 그러면 먼지가 말도 못 했어.


아이들 친구들이 여럿 놀러 왔다가 엄마들이 수다 떠는 사이 커튼에 하나 둘 매달려서 커튼 봉이 부러졌었지. 와 그때 정말 짜증 났었는데, 지금은 웃음이 나네.


욕조 타일이 참 알록달록 예쁘고 특이했어. 이 집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들었던 곳. 아이들이 여기서 목욕하면 항상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지. 처음엔 커 보였던 욕조도 이제 두 아이들이 들어가면 꽉 차네.  


증의 부엌, 작지만 만능 공간. 내 눈물을 알고 있는 곳.


아이들과 함께 하고나서부터는 집에 말도 못 할 추억이 그득그득 쌓인다. 내가 꾸민 집도 아니고, 내가 고른 가구들이 있는 집도 아닌데 곳곳엔 나의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이사할 집은 지금 집보다 더 크고, 화장실도 두 개야. 새 집 좋지!' 그 말을 들은 아이가 '우와 좋겠다~' 하다가 바로 '근데 난 그래도 지금 우리 집이 더 좋아. 새 집은 조금만 좋아.'라고 한다. 아이도 우리의 익숙한 추억이 있는 이 곳에 정이 든 모양이다.


추억을 뒤로하는 건 아쉽지만, 장소마다 우리의 추억을 심어놓는 것도 멋진 일이 아닐까. 돌아가 보면 그때의 우리가 고스란히 그곳에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느낌.


이사를 앞두고, 우리의 지나온 보금자리들을 하나 둘 떠올려본다.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이사의 여정' 속 최고의 집은 언제나 지금 여기,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이 집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사진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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