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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 May 07. 2021

딸기 아가

딸기 모종 키우기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딸기 농장 체험을 갔다가 작고 앙증맞은 딸기 모종 화분을 받아왔다.

초록 파랑의 쨍한 플라스틱 화분에는 아이들의 이름이 각각 한자로 적혀 있었다.

안타깝게도 맨 처음 받아왔을 때의 사진이 없다


딸기 모종?

이렇게 고작 잎 몇 개 달린 작은 화분에서도 딸기가 열린다고? 잘 키울 수 있을까?


지난겨울 즈음, 딸기 농장에서 아이들과 딸기를 따 본 적은 있었지만 그땐 빨갛고 큼직한 딸기만 찾아다니느라 딸기 잎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들여다보지도 않았었다. 초록 초록한 잎사귀들 속에서 보석같이 모습을 감추고 있는 딸기만 눈에 보였다. 그렇게 빨갛고 먹음직스러운 딸기들 사이사이에는 아직 덜 자란 하얗고 푸르뎅뎅한 작은 열매가 섞여 있었다. 아이들은 어쩌다 한 번씩 (특히 둘째가) 그렇게 하얗다 못해 푸른빛이 도는 딸기를 따버리곤 했다.


하얀 딸기는 작다, 단단하다, 털이 많다, 맛을 보면 시고 텁텁하다.

딸기가 아닌 다른 과일의 맛이라 할 수는 없지만 또 우리가 아는 그 익숙한 딸기의 맛도 아니다. 달콤 새콤한 즙이 입 안에 상큼하게 뭉개지는 그 딸기의 맛에는 한참이나 못 미친다.


둘째가 스스로 딴 딸기라고 얼굴에 자랑스러운 빛을 띠고는 그 작은 손에 작고 작은 하얀 딸기를 들고 와서 나에게 준다. 엄마에게 들고 와준 마음이 고마워 먹어보지 않을 수가 없다. 크읍..  “아이~ 자꾸 하얀 딸기 따면 안 돼 얘들아~ 크고 빨갛게 잘 익은 걸 따는 거야.”


그래도 자꾸 반은 빨갛고 반은 하얀 딸기를 따오길래, 아이 입에도 하얀 딸기를 하나 넣어줬다. 아이들은 딸기가 입에 들어가자마자 곧이어 인상을 찌푸렸다.

“아이 딱딱해, 아이 셔, 맛없어!!!”


‘빨갛게 익은 딸기를 따야 해’라는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식食’이 효과적이었다.

아이들은 혀 끝에 남은 시큼한 맛을 머금은 채 본능적인 채집을 시작했다. 그렇게 딴 바구니에는 시장에서 파는 것 같은 크고 붉은 딸기들이 차올랐다.


“엄마, 나 이제 하얀 딸기는 절대 절대 안 먹을 거야. 너무 이상해. 씨 박한 거랑 털도 다 보이고~.”

그러고 보니 무심코 먹었던 딸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북하게 나 있는 짧은 털들이 보인다. 강렬한 색감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봐봐, 빨갛게 익은 딸기에도 털이랑 씨가 그대로 있어.”

“응~ 정말 그래!!”

“하얗고 이상해 보였던 맛없는 딸기도 조금 더 자라면 이렇게 빨갛고 맛있는 왕 딸기가 되는 거야.”

“쨍쨍 햇볕도 쬐고, 땅에서 영양분이랑 물도 쭉쭉 빨아 마시면서~”


그러자 첫째가 외친다.

“아~ 그럼 하얀 딸기는 아기네 아기~~~”


아이들이 집에 데리고 온 작은 딸기 모종들을 보며 나는 이 잎사귀가 딸기 잎이 맞나를 떠올리며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아이들은 푸른 잎들 사이에서 마치 빨간 딸기를 본 양 즐거워한다. 아직 꽃도 피지 않았고, 열매조차 열리지 않은 작은 잎사귀들을 보며..


처음엔 동생 화분의 잎사귀가 더 크고 키도 크다는 이유로 입이 나왔던 첫째 아이가 가만히 있다가 뭔가가 생각난 듯 신나서 조잘대기 시작한다.

“엄마, 내 화분은 잎이 작아서 너무너무 귀여워. 이건 내 베이비야, 베이비! 나는 내 화분이 더 좋아.”


우리는 베이비들에게 흙이 마르면 꼬박꼬박 물을 주었고, 아침에 해가 나면 창가 가까이 햇빛을 쬐도록 놓아두었다.

매일매일이 달랐다. 창가 쪽으로 햇빛을 향해 휘었던 줄기들은 다음날 방향을 바꿔주면 또 반대로 휘었다. 푸른 잎들 사이에서는 작고 동그란 봉오리들이 하나, 둘 맺히기 시작했다. 그 틈으로는 하얀 빛깔이 살짝 새어 나왔다. 그렇게 다음날, 또 다음날, 아이들과 지켜본 하루하루의 변화는 실로 놀라웠다.


하얗고 작은 꽃잎은 미처 사진을 찍을 틈도 없이 떨어져 버렸고 뾰족한 초록 잎은 길쭉해졌다. 그건 영락없는 딸기 꼭지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그 가운데에는 털이 수북하게 송송 나있는 연둣빛 봉오리가 새롭게 존재의 빛을 내뿜고 있었다.

“딸기 아가야~”

이 봉오리가 진짜 아가였구나. 딸기나 너희들이나 아기땐 정말 못생겼었네!

살아 있는 것의 탄생은 언제나 신비롭다. 작은 연둣빛 봉오리 보며 핏덩이였던 작은 너희들이 내게로 왔던 그 날을 떠올린다. 


손 대기조차 조심스러운 이 연약한 연둣빛 딸기는 점점 하얗고 단단하게 자라날거야. 잘 보이지는 않지만 어딘가에 꼭꼭 지니고 있던 씨를 가지고.. 그리고는 점점 빨갛게 물들어갈 거야. 해님과 가까운 따뜻한 곳에서부터 말이야. 물들고 물들어서, 아주 달콤해질 거야.

하루라도 허투루 햇빛을 쐬여서도 안되고, 물 주는 걸 잊어서도 안돼. 매일 함께 하는 시간들이 쌓여서 빨간 열매를 맺는 날에는 정말이지 가슴이 벅차오를 거야.


그렇게 하얗고 맛없는 자그마한 딸기가 빨갛고 맛있는 새콤 달콤한 딸기가 된다는 것은,

그 기적과도 같은 성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야.



귀여운 딸기 아가와 우리들은 발그한 볼을 하고는 오늘도 한 뼘 더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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