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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 May 15. 2021

엄마에게 인디워커란

[독서 노트] 인디 워커, 이제 나를 위해 일합니다

엄마로서의 삶도 어느덧 7년째. '일 Job'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낯설게 느껴진다. 육아나 집안일은 분명 ‘일’ 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부제와 같은 ‘나를 위한 일’ 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슬로우 커리어? (장기적으로 조직 안에서 자기 다운 일로 자립하는 경력)

아이의 성장 속도에 맞춰갈 수밖에 없는 엄마로서의 삶에도 슬로우 커리어라는 개념이 적용될 수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아마도 이 책의 두 저자들 또한 독자를 ‘엄마’ 그중에서도 ‘전업맘’에 두진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적어도 메인 타깃이 아니었음은 확실하다. 나 또한 독서모임이 아니었다면 자의적으로 이 책을 집어 들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내가 직장인이었던 시절, 이 책을 접했더라면 분명 첫 장부터 빠져들었을 것이다. 하나하나 나의 상황에 대입해가며, ‘그래, 나의 전문 분야와 차별 분야를 연결해보자.’ ‘조직 내에서 주어진 일로 나를 소진하기보다, 나다운 경력을 만들어나가자’고 필요한 지침과 단물들을 쏙쏙 빨아들였을 것이다.


우선은, 그만큼 현실적인 조언과 방안들이 가득한 책이다. 이 책의 공동저자 박승오, 홍승완 작가는 교육 전문가로서 많은 직장인들을 코치했으며 책에서도 풍부한 사례들과 구체적인 도표들이 등장한다. 한 사람의 진솔한 경험이 통째로 담긴 책에 마음이 끌릴 때도 있지만, 이런 전문가들의 경험과 지식을 아낌없이 담은 책에도 여지없이 마음이 끌린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교육 전문가로서 계발한 모델이나 직장 생활의 팁을 전파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내가 이 책에 진정 마음이 끌렸던 이유는 ‘한 사람의 진정한 성장’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박승오 작가는 커리어로 고민하고 있는 그의 아내를 위해 진심을 전달하기 위한 책을 썼다고 밝혔고, 이 책의 두 저자 역시 스스로가 이 책의 저자이자 독자로서 존재한다고 말한다. 단순히 지금까지 쌓아온 교육 분야에 대한 경험과 지식의 일방적 전달이 아닌, 진심 어린 조언과 나눔에 가깝게 여겨지는 이유이다.




중국에 오기 전, 나는 광고회사 AE(Account Executive)로 8년 재직했다. 대학 입시 때 모두 국문과를 썼는데 한 군데만 점수가 아까워서 언론정보학과를 썼고, 결국 그 학교에 들어가게 됐다. 이왕 들어간 거 신문방송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지만 친구들 따라 광고홍보학을 선택했다. 또 이왕 선택한 거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었으나 대학 졸업하기 전에 광고회사 인턴을 하다가 덜컥 AE로 취직해 버렸다. 그 당시 취업난이 심각했으므로 일단 졸업 전 취직이 됐다는 것 자체로 만족해야 했고, 실제로 같은 과에서 광고회사 들어간 친구들은 손에 꼽았다. 실로 오랜만에 스스로에게 뿌듯해지기도 했다. 그래서 초반에 몇 번이나 '크리에이티브 팀으로 가고 싶어요'라는 말이 입 안에서 달싹거렸지만 꺼내지 못했다.


처음의 뿌듯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AE라는 직업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다. 창의력의 영역이라는 허상 속에서 잘 보이지 않았던 실은 '갑과 을의 관계'였다. 그 당시 내가 본 AE는 광고주와 크리에이티브 영역 사이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존재였다. 나뿐만이 아니라 입사한 동기 AE들 모두 이상과 다른 현실에 힘들어했다. 그렇게 'AE로 3년 구르면 어디 가서도 살아 남아'라는 말을 들으며 일했다.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건 그 당시 나의 최대 고민이었다. (나만의 고민인 줄 알았던 그것도 실은 신입사원 절반이 하는 고민이다/ 신입사원 평균 퇴사율 49%) 정말 못난 선배로부터 너는 이 일이 맞지 않는다는 말도 들었고 진짜 최악이었던 악성 광고주도 상대해 봤다. 하지만 모든 터널을 벗어난 지금, 그때의 시간들을 회상해 보면, ‘어둠’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부딪혀 봤기에 그 안에서 스스로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이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파악했다기보다는 간절해졌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실제로 반짝반짝 빛이 났던 선배들은 직업이 가진 이미지 혹은 테두리에 자신을 끼워 맞춘 사람들이 아니었다. 돌아보면 책에서처럼 자신만의 가치를 끌어올린 차별적인 강점을 직업에 적용한 사람들이 조직 내에서 빛을 발했다. 사교적이고, 말발이 센 사람이 이 이 일을 잘할 수 있다는 건 편견이었다. 다양한 것들을 흡수하고 융합할 수 있는 능력, 기획서를 잘 쓰는 능력,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 그것을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 결국은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진심이 담긴 일이었다. 또 아주 드물지만 3년 차쯤 AE에서 카피라이터나 미디어 플래너로 같은 회사 내 직군을 바꾼 친구들도 있었다. 드문 일이었기에 동기들 건너 건너 회자되곤 했었다. 그 친구들 역시 부딪혀 보았기에, 같은 직업군 내 다른 방식을 선택해 나갈 용기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 나도 계속 그 일을 했다면 결국 AP(Account Planner)를 선택했을 것이다.


재능은 직업 What을 결정하지 않고 다만 일하는 방식 How을 결정할 뿐이다.  
재능을 통해 직업을 바꾸는 대신 일하는 방식과 전략을 바꿈으로써 탁월해질 수 있다. (p.98)

조직 내에서 다양한 일을 수행하며 자신의 특성을 깊이 이해한 뒤에야 나와 어울리는 일을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찾아낸 지점이야말로 전력으로 깊이 파야 할 곳이다. (p.58)


국문과를 지원해서 국어 선생님이 되었더라면, 광고홍보학 대신 신문방송학을 선택해서 기자가 되었더라면, AE가 아니라 카피라이터가 되었더라면, 이라고 지난 시간들을 후회만 했던 적이 있었다. '나에겐 재능이 없어, 나에겐 이 일이 맞지 않아'라는 생각을 벗어날 수 없었던 시기가 있었다. 모든 직업을 벗어던져버린 지금, 어떤 직업의 틀 안에서든, 엄마라는 존재 안에서든, 내가 재능을 발휘하고 잘할 수 있는 일들은 결국 하나의 가지로 뻗어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엄마로 살아가는 지금, 나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함께 대화 나누기를 즐긴다. 아이들의 마음을 잘 읽을 수 있다. 글로 소통하기를 좋아한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하마터면 엄마라는 두 글자의 무게에, 그 틀에 나를 온전히 다 내어줄 뻔했었지만, 지금은 엄마라는 이름 안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빛나고 있는 나 자신을 조금씩 발견하고 있다. 그리고, 아마도 그 빛은 내가 어떤 직업을 가졌든 간에 같은 색으로 빛났으리라 확신한다.




 책을 읽어 내려가다가 ‘일 Job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잠시 멈칫했다. 개념적이고 모호하지만, 현실에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직업이 있었던 예전에도, 그리고 엄마로서의 지금도,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의미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책에서는 일에 대한 세 가지 의미를 밥, 존재, 공헌이라 말한다.

첫째는 〈밥〉이다.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 활동이 일이다. 셰익스피어도 빵과 버터를 얻기 위해 글을 써야 했다. 두 번째 의미는 〈존재〉다. 사람은 일을 통해 잠재력을 개발하고 세상에 자기 존재를 표현하고 싶어 한다. 그저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해야 할 때 일은 고역이 된다. 〈출근할 때 영혼을 차에 두고 나온다〉거나 〈내 진짜 인생은 퇴근 후부터〉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일은 품삯일 따름이다. 일의 세 번째 의미는 〈공헌〉이다. 모든 직업은 누군가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모든 직업에는 그 수혜자가 있으며 직업의 뿌리에는 도움이라는 요소가 들어 있다. 일을 통해 우리는 누군가를 돕고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P.113)


직업적인 ‘일’ 이 아니더라도 하루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노동’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엄마로서의 일과 노동도 물론, 존재한다. 하루를 꽉 꽉 채워서. 엄마라는 직업에는 우선 ‘밥’이 없다. 남편이 생계를 책임져서 밥 걱정이 없다 하더라도, 본인의 밥그릇이 누군가에게 달려 있다는 것은 또 다른 결핍일지도 모른다. 또 엄마라는 직업으로 ‘존재’를 표현하기도 참으로 어렵다. ‘엄마 사람’이라는 단어만 봐도 그렇다. ‘엄마’라는 보통 명사에 묻히기를 거부하며, 우리도 엄마이자 사람이라고 외친다. 워킹맘으로 살아가며 직업으로부터 오는 존재의 가치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기도 한다. 엄마라는 직업에서 찾을 수 있는 분명한 의미는 그나마 ‘공헌’ 이 아닐까 싶다.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은 분명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기에..


나의 경우엔, 8년간의 직장생활에서 ‘밥’과 ‘존재’는 확실히 얻었지만 ‘공헌’의 부재로 마음의 공허를 겪었었다. 광고를 제작하는 일, 세부적으로는 광고주의 의도를 파악하고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는 일이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 라는 의문이 나를 조금씩 괴롭혔었다. 아무 보람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광고는 상업이다. 궁극적으로는 브랜드를 만들고 물건을 팔기 위한 것이기에, 많은 부분은 광고주의 파워에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스스로의 가치관을 잃지 않고 직업에 투영시켜야 직장인이 아닌 직업인이 되는 것일 테지만, 고작해야 신입사원을 벗어났던 그 당시의 나에겐 어찌 보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그렇게 ‘황무지’를 지나왔다.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이러한 살아있음을 경험하는 존재 상태를 〈블리스 bliss〉라 칭했다. 그리고 블리스와 반대되는 상태를 〈황무지〉라 불렀다. 그에 따르면 황무지는 숨은 쉬며 살아있되 자기라는 존재는 소멸된 삶, 〈남이 하는 대로, 타인이 시키는 대로 하면서 사는〉 삶이다.  

소설가 알베르 카뮈는 〈노동을 하지 않으면 삶은 부패한다. 그러나 영혼 없는 노동은 삶을 질식시킨다〉고 말했다.

<P.114 인디 워커, 이제 나를 위해 일합니다>


‘밥’과 ‘존재’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미해 보였던 ‘공헌’이 나에게 어느 정도의 의미를 가지는지, 경험으로 알게 된 것이다. 엄마로 살아가며, 미미한 존재로 희미해지는 것 같은 기분, 내 돈 내가 벌어 쓰지 못한다는 헛헛함을 극복하게 해 줄 수 있었던 부분은 나에게 있어서 ‘공헌’이었다. 말하자면, 한 사람을 만들어가고, 나아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에 대한 커다란 의미. 한 인간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엄마라는 존재로서, 때론 무섭기까지 한 그 무게감을 체감하면서, 나라는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실현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의 행복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저는 사색할 줄 압니다.

저는 기다릴 줄 알며,

단식할 줄 압니다.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사색, 기다림, 단식(욕망의 절제)이 인디 워커의 세 가지 핵심 역량이라고 한다.

빨리 가는 것, 남보다 더 열심히 하는 것에는 자신 없지만 이 세 가지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나를 찾고, 기다리며, 두려움을 걷어내어, 엄마라는 존재 안에서 나만의 슬로우 커리어를 쌓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조금씩 두근거려오는 마음으로 책장을 덮었다.


이제는 ‘엄마’ 또는 ‘경단녀’ 라는 내 마음의 조직 안에 갇히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진정 나다운 모습으로 걸어나갈 미래를 꿈꾼다.

인디 워커는 고립과 단절이 아닌 깊은 관계와 충만한 존재를 바탕으로 진정 나답게 살아가는 것이다’  (p.256)


이 책을 만나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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