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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 May 19. 2021

삶의 마지막까지 어떻게 살 것인가

[독서노트]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이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말이다.

나 역시 알고는 있었지만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를 깊이 있게 내재화하여 생각해본 적은 없다.


뉴스 기사에서는 사건 사고가 보도되고, 먼 누군가의 죽음을 일상 속에서 애도하기도 하지만, 나의 죽음에 관해 진지하게 탐색해볼 기회는 적다. 죽음이란 그만큼 우리 삶에서 동떨어져 있다. 이 책의 저자와 같은 법의학자라면 어떨까? 책의 제목이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인 만큼, 그들에게 죽음이란 직업상 자주 마주할 수밖에 없는 삶의 한 부분이 된다. 그토록 죽음이 가깝게 일상화되어 있는 삶이 궁금해졌다. 이 곳에서 알게 된 한 지인은 한국에서 10년간 대학병원에 있으면서 죽음을 자주 마주하는 일이 괴로워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진로를 찾아 한국을 떠나 왔다고 했다. 잠깐이었지만 그의 말을 들으며 일상에서 죽음을 매번 마주해야 하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한 사람의 죽음을 냉정한 팩트로 받아들여야 하는 ‘냉혈한’이 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때마다 매번 마음껏 슬퍼하고 애도하며 한 생명의 사그라짐을 안타까워해야 하는 것일까?


이 책의 저자 유성호 교수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죽음의 의미가 곧 삶의 의미’라고

법의학자로서 특별히 죽음과 인연 깊은 삶을 살고 있지만, 그 인연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더욱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이 아닌 삶이다. 깨달음을 추구하는 도인은 아니지만 죽음을 생각하고 살피고 돌아보는 과정에서 삶의 경건함과 소중함이 더욱더 절실해지는 것이다. 더 나아가 법의학자로서 우리 사회에 죽음을 숙고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가져본다. 그래야 우리들 삶이 행복해지겠다는 깨달음 아닌 깨달음을 갖게 된 것이다. p.136


죽음 앞에 선 사람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죽음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다면, 나 역시 삶의 진실을 조금 더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이 책을 펼쳐보게 되었다.




책의 1부에서는 ‘죽어야 만날 수 있는 남자’ 즉, 법의학자로서 경험한 사례들을 풀어놓았다. 이 부분에 대해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우선, 상당히 재미있다는 것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기 시작해서 1부를 읽었던 재미로 끝까지 단숨에 다 읽었다. 개인적으로 ‘CSI’나 ‘그것이 알고 싶다’를 좋아한다. 그 외 미드들도 범죄 관련물, 스릴러물을 좋아한다. 여자가 주인공인 경우에는 엄청난 감정이입을 한다. 나의 이런 성향에는 아빠가 큰 영향을 끼쳤다. 아빠는 경찰이셨고 어렸을 때부터 나는 아빠가 경찰이라는 게 자랑스러웠다. 아빠가 젊었을 때 강에 뛰어들어 사람을 구해서 신문에 났었다는 사실도 자랑스러웠다. 아빠는 나에게 투철한 정의감,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도덕성이라는 유산을 물려주셨다. 세상이 무섭다는 걸 아는 아빠는 온갖 주의, 보호 속에서 딸을 키웠지만 덕분에 나는 항상 그 너머의 것들을 알고 싶어 했다. 두 딸들이 밤늦게까지 아빠와 ‘그것이 알고 싶다’를 시청하곤 했었고, 엄마는 제발 그런 것좀 보지 말라고 하셨지만.


그렇게 이 책에서 접하게 된 죽음에 대한 실화들은 매우 흥미로웠던 반면, 말할 수 없이 안타까웠다. 가장 놀라웠던 부분 중 하나는 ‘자살’에 대한 내용이었다. 국내 통계에 따르면 자살이 타살의 30배에 달한다고 한다. 타살은 뉴스의 사건 사고로 접하기에 빈도가 높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우리 주변에서 쉬쉬하고 있는 ‘자살’ 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책을 읽다 잠시 멍하니 창문 밖 하늘을 바라봤다. 어느 환한 봄날, 아니 여름 날이었는지 모를 그 장례식장이 떠올라서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해서 정신없이 회사 다니던 시절, 오랜만에 학교 동아리 단체 창 메시지가 울렸다. 바로 윗 선배는 아니어서 가까운 친분은 없었지만 같은 동아리 안에서 만났었던 한 여자 선배의 부고 소식이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당황하고 있던 사이 친구로부터 또 다른 메시지가 도착했다. ‘사고 아니고 자살이래’ 그 두 글자가 믿기지 않도록 소름 끼쳤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몇 년 뒤, 우리는 또 다른 비보를 접하고야 말았다. 바로 윗 학번, 내가 정말 좋아했었던 그 작고 귀엽고 예쁜 언니가 자살했단다. 그래서 장례식장에 가야 한단다. 또다시. 가까운 우리들은 알았지만, 공식적으로는 사고사였다. 몇 년 전 겪었던 그 죽음의 그림자가 언니에게 계속 드리워져 있었던 게 분명했다. 대학 시절 같이 엠티 갔을 때 쌩얼을 민망해하는 나에게, ‘그래도 아름다워요~’ 라며 맨얼굴에 꽃받침 해주었던 그 언니. 작고 말랐지만 강단 있어서 동아리 회장을 맡았던 그 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이 그 언니를 죽음으로 데려갔던 것일까?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생에 대한 권리가 있는 만큼, 삶을 잘 마무리할 권리 또한 있겠지만, ‘생명의 자기 결정권이라는 것이 생의 존엄함보다 먼저여서는   것이다.


책의 2, 3부에서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전달하고자 하는 부분 역시 ‘생명의 자기 결정권’ 문제이다.  

죽음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의제는 ‘죽을 권리’다. (p. 118)

연명의료 행위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해친다고 본 것이다. 이때 법원은 의사협회에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지침이 마련되어야 하지 않겠냐며 그 필요성을 언급하기까지 했다. 전문가 집단이 서둘러 이러한 사안에 대한 법제화를 시도해야 하지 않겠냐고 등을 떠민 것이었다. 그래서 당시 나 또한 대한의사협회의 여러 의사들과 함께 연명의료 중지에 관한 지침을 만들기 위한 TF팀에 참가하게 되었고, 오랜 수정과 토론 끝에 그것이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에 상정된 다음 법제화되었다. 이로부터 연명의료가 강제 사항이 아닌 선택 사항이 된 것이다. (p.124)

그러한 거부권을 실제로 어떻게 행사할 수 있는가. 우선 의사를 통해 ‘연명의료 계획서 Physician Order for Life-Sustaining Treatment’라는 것을 작성하거나 스스로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작성하면 된다.  (p.186)

하버드 외과대학과 보건대학 교수인 아툴 가완디 Atul Gawande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 Being Mortal』라는 책이 있다. 인간다운 죽음을 강변하며 무의미하고 고통스러운 연명의료에만 급급해하기보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과연 어떻게 인간답게 살아갈 것인지 돌아보라는 것이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다.  (p. 182)

살펴보면 ‘생명의 자기 결정권’이라 하는 ‘연명의료계획’ 역시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연명 의료 행위가 단순한 생명의 연장을 위한 것일 뿐, 인간으로서의 존엄한 삶의 연장이 될 수 없을 때, 스스로 연명 의료에 대한 거부권을 미리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료 기술의 진보로 현재 인간의 삶에는 삶과 죽음 중 어느 영역에 속하는지 불분명한 중간 지대, 즉 그레이존이 부상했다고 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의제는 ‘삶의 마지막까지 어떻게 살 것인가’로 그 의미를 확장했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어떻게 인간답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한 인생을 살아가며,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직접적으로는 ‘죽고 싶다’라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떠올려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나 또한 정말 쥐구멍에 숨고 싶은 순간, ‘아 죽고 싶다’를 속으로 숨죽여 외치고, 지금은 잘 기억도 안나는 그 당시의 감정에 죽을 둥 살 둥 매달리며 ‘죽고 싶다’를 내뱉었던 때도 있었다.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진흙탕 속 감정을 끝내고 싶다는 데서 발생한 ‘종결’ 즉, ‘죽음’에 대한 생각. 그건 어쩌면 삶을 무한한 것처럼 여기고 있는 무의식 속 착각으로 인해 가능했던 감정은 아니었을까?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로 죽음을 삶 가까이 두지 않았으면 한다.

‘인생에는 끝이 있지만, 나에겐 내일이 있다’로 삶의 한복판에서 죽음을 기억하길 바란다.


책의 마지막 장에 있었던 두 문구를 되새겨보며, 이번 독서노트를 마무리한다.


카르페 디엠 Carpe diem!

현재를 즐겨라!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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