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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 Jun 14. 2021

인생의 교통사고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라는 말을 마음 깊이 품기 시작했던 적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정도의 ‘어떤 일’ 은 아직 내 인생에서 일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생각과는 별개로 마음속에는 한 때 나를 가득 채웠던 크고 작은 ‘어떤 일’들의 흔적이 가득하다. 자잘한 어떤 일들을 그래도 이만큼은 겪고 나니, 마음속에 미리 그 정도의 장치를 해두면 어떤 일이 닥쳐도 크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인생은 한순간에,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에서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어’라는 몸부림이 되어버린다. 별 볼 일 없었던 나의 경험과 이해의 폭으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일들이 넘쳐흐르곤 한다.



운전면허 시험을 보러 가던 길에 교통사고가 났다. 남편이 운전하는 차였고 버스가 갑자기 뒤로 와서 받았다. 큰 사고는 아니고 접촉사고였지만, SUV와 버스는 다윗과 골리앗, 계란과 바위였다. 바짝 짜부라져버릴 것 같은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몇 초간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있는 힘을 다해 소리 지르는 뿐이었다. 심지어 클락션도 누르지 못했다. 보험 처리를 한 후 면허시험장에 갔지만 결국 다른 서류 문제로 시험을 볼 수 없었다. 운전면허를 따러 가는 길에 교통사고가 나다니, 이건 운전을 하지 말라는 계시가 아닐까 하는 얼토당토않은 생각도 들었다. 사실 한국에서는 운전을 했었지만 중국에서는 감히 운전할 엄두를 못 냈었다.  (한국에 면허증이 있다면 중국에서는 현지 필기시험만 보면 면허를 취득할 수 있다.) 이 곳에서는 좌회전 신호가 없다는 것도 적응이 필요했고 무엇보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면 앞 뒤로 막 지나가는 차들에 아직도 몸이 굳어버리는 터였다. 무사고 경력의 베테랑 운전사인 남편도 어찌할 도리 없이 사고가 나는 걸 보며, 하필 운전면허 시험을 보러 가던 날 사고가 나는 꼬락서니를 보며, 나름 심각한 고민을 했다.  


엎친 데 덮친다고 그 무렵 자잘한 일들이 끊이지 않고 내 주변을 맴돌았다.

교통사고, 그리고 인생의 교통사고.


교통사고는 보험 처리하고, 차 수리하면 새 것 같아지지만, 인생의 교통사고는 사고가 일어나기 이전과 똑같이 돌아갈 수가 없다. 눈물자국은 사라지지만 마음에는 생채기가 남는다. 하지만 참으로 다행인 것 한 가지는,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고 고개를 저었던 일들이 하루, 이틀씩 과거가 되어간다는 것이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어’를 과거의 시점으로 잘 놓아줄 수 있다면 어느 정도의 일들은 ‘그래,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어’로 변환된다.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바라보며 한 걸음씩 발을 내딛을 수 있게 된다.


인생이 예측할 수 없는 일들 투성이라면, 그렇다면 그 안에서 예측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만들어보자. 렇게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최소한의 행복을 스스로에게 주문해보기 시작했다.


커피 한 잔의 시간, 전자책이 아닌 종이책, 산책 한 바퀴부터,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것들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보다 적극적이기로. 우선 꽃집 사장이 아닌 남편에게 이 주에 한 번씩 꽃을 배달해달라고 주문했다. 화려하게 포장되어 있는 꽃다발이 아니라, 집에 있는 꽃병에 아담하게 꽂아놓을 수 있는 몇 송이의 . 시든 꽃을 버리는 게 몸서리쳐지도록 싫어서 꽃 사는 걸 싫어했었는데, 어찌할 수 없이 꽃과 식물은 인생과 참 많이 닮았다. 죽음이 있다고 해서 삶을 외면할 수 없고 꽃이 지는 것을 외면한다면 꽃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다. 엄밀히 따지자면 남편은 꽃 배달 대대행 역할을 해줄 뿐이고 엎드려 절 받기지만, 피차 기분이 좋아지는 건 부인할 수 없다.


남편이 아는 중국인 친구 부부네 집에 초대를 받았다. 중국인 지인들과 밖에서 같이 밥을 먹거나 놀러 간 적은 있었어도 집에 초대받는 일은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동베이화(동북 지역의 중국어)는 사투리가 심해 알아듣기가 힘들다. 남편도, 아이들도 중국어를 잘하는데 말을 못 하는 사람은 거기서 나 혼자뿐이다. 또다시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되어버리고 말 생각에 한숨부터 나왔지만 거절하기도 그래서 그냥 밥만 먹고 올 생각으로 갔다. 하지만 걱정은 기우였다. 테라스에서 구워 먹는 꼬치와 각종 해산물 맛은 최고였고 더운 열기 속 시원한 바람이 보이지 않는 장벽을 걷어냈다. 나는 말도 안되는 중국어로 손짓 발짓 하며 점점 신이 났고 결국 저녁에는 아이들을 대동하여 두 가족이 노래방까지 갔다. 그들은 중국 노래, 우리는 한국 노래를 불러가며 서로 알아듣지도 못하는 노랫말에 취했다.


가끔은 인생에서 이렇게 예상치 못한 즐거운 일들을 맞닥뜨리게 되기도 한다.

예측할 수 없는 비극과 예상하지 못했던 기쁨 (惊喜) 사이를 끊임없이 오간다.



오늘은 아이들과 함께 산을 올랐다. 정상에 올라 콩닥거리는 심장으로 함께 내려다본 전경이 그렇게 아름다울 줄이야.

다음주가 지나면 해바라기는 시들겠지만, 해를 닮은 환한 노란빛의 잔영은 우리집 거실에, 우리들 마음에 남았다.

그리고 다음 주에는 다시 운전면허 시험을 보러 갈 것이다. (교통사고만큼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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