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산다는 것은 낯선 조각보와 함께 기워진 나를 발견하게 되는 일.
해외에 산다는 것, 그것도 해외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에 대해 한 번도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해외에서의 삶을 조금이라도 꿈꿨었다면 그건 이국적인 광경이어야만 했고 그걸 배경으로 한 나의 모습은 나이기도, 내가 아니기도 했다. 내가 선호하는 새로움을 기회가 된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것에 불과했다. 선호하지 않는, 아니 싫어하는 쪽에 대해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해외에서의 삶을 동경했지만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삶과 매치해본 적도 없었다. 미국이나 유럽이라면 조금 달랐었을까? 갑작스럽게 시작되었던 중국에서의 삶은 나에게 분명 미래에 대한 설렘으로 다가왔었지만, 그게 내가 갖고 있던 과거나 현재의 무엇에 대한 단절의 시작이기도 했다는 것은 그 당시 전혀 알지 못했다.
못 견디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비교적 살만 하다. 새로운 것들을 보고 듣고 경험하는 재미도 만만찮다.
그런데, 이 곳에서는 문득, 하염없이 무너질 때가 있다. 단절, 그 때문이다.
해외에 있어도 한국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자주 연락하고, 또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잘 교류하며 지내면 그보다 더 속 편한 삶은 없다고 한다. 큰 명절 때는 꼬박꼬박 한국에 들어간다고 해도 일 년에 두 번이다. 시댁 스트레스가 없다고들 하고 아이들은 현지의 언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배울 수 있으니 교육 상으로도 더할 나위 없다고 한다. 남편이 한국으로 들어가게 되어도 엄마와 아이들만 현지에 좀 더 남아 특례기간을 채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중국에 살면 한국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청소 도우미를 쓸 수도 있으며 식재료는 다양하고 저렴하다.
가끔 원수도 그런 원수가 없는 남편은 나에게 일상의 대부분에서 ‘베프’가 되어주며, 아이들은 보잘것없는 내 언어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몽글함을 매일매일 안겨준다. 우리가 함께 있는 순간엔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피어올라 주변의 공기를 감싼다. 그런데도 나는 무얼 더 바라고 있는 건지, 그 공기에서 벗어날 때면 낯선 공기에 곧바로 짓눌려서는 유약하게도 허우적댄다.
시장에 들어서면 특유의 냄새. 캐나다에서 중국 슈퍼마켓을 들어가 봤을 때 처음 맡아봤던 그 냄새가 여기에선 수시로 출몰한다. 슈퍼마켓에서 생전 처음 맡아보는 강한 향신료 냄새에 숨을 헉하고 참았던 기억. 나는 그 공기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물론 지금은 그 냄새가 익숙하다. 심지어 이제 마라 냄새는 향긋하고 두리안 냄새는 고소하다. 뽀로미, 망고스틴, 용과, 낯설지만 신기했던 과일들도 비닐봉지에 담아 간다. 꿈틀거리는 커다란 번데기나 닭머리를 보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지나가는 건 물론이다. 그런데, 마트를 한 바퀴 돌았는데도, 가득 채워진 카트를 보면서 마음이 허하다. 자꾸 뭔가 빠뜨린 것만 같다. 한국에서 엄마랑 갔던 농협 하나로마트, 거기엔 시래기도 있고 콩비지도 있고 각종 젓갈들에.. 야채들은 여기보다 좀 비싸도 작고 야무지고.. 아! 맛있는 시금치나물을 먹어본 게 언제인지, (중국 시금치는 정말 맛없다.) 맞다, 엮인 굴비를 가위로 손질해주는 손놀림은 또 어찌나 빠른지...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는 그때 그 마트의 풍경에 잠깐 아쉬움을 느끼려는 찰나, 걸음이 빨라 항상 저 멀리 앞서 가시던 아빠, 이것 저것 들여다보느라 뒤쳐져있던 엄마가 투덜대며 아빠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멈칫했던 아쉬움이 터져버린다. 참 이상하게도, 전화로는 길게 할 말이 없는데, 함께 시장에 가면 할 말이 참 많았다.
그랬었어. 우리한텐 항상 종이책이 있었어.
전자책이 생긴 이후 책을 굳이 종이책이라 부르는 것도 어색하다. 단절되어버린 예전 그때 그 어디에서 데이트를 하든 우리는 서점에 갔다. 종로의 서점, 논현의 서점, 집 근처의 서점, 그즈음 중고 서점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사고 읽고 팔고 하며 책을 읽었다. 지금 책을 거의 읽지 않는 남편은 그 당시 회사원이면서 작가 지망생이었다. 그가 갖고 있었던 책 리스트 중 기억나는 건 ‘유혹하는 글쓰기’, ‘현대 시작법’ 그리고 각종 시집들이었다. (이상한 표정을 지어야하는 안면 요가법에 대한 책도 있었지만) 그는 퇴근하면 근처 커피숍에서 필사를 했고 나는 옆에서 그냥 커피를 마셨다. 요즘엔 중국에도 대형 서점들이 많이 있고 특히 아이들 그림책을 팔거나 빌려주는 작은 서점들이 최근 많이 생겼다. 반가운 마음에 들어가 보지만 몇몇 책들의 표지만 만지작거릴 뿐 선뜻 고를 수 있는 책이 없다. 한국 책들의 번역본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구입한 적이 있지만 한 장 한 장 넘기기가 너무 어려워 읽기를 그만둔 상태다. 서점이라는 장소에서 언어의 단절을 느낀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씁쓸한 경험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동안 미처 단절이라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점차 단절로 다가와 가끔 마음을 아프게 끊어낸다. 부족함이 없는 것만 같은데도 마음은 구멍이 뚫린 듯 서늘하고, 어디서부터 리셋 버튼을 눌렀었는지가 점점 희미해진다. 다행인 건 우리가 바라보는 까만 하늘의 달은 하나라는 것. 어느새 아이들이 팬티바람으로 달려와 창문에 매달린다. ‘달님~ 달님~ ‘
그때 그 어린 말투로 서로 마주 보고 웃었던 얼굴들 그리고 장소가 머금은 기억들을 떠올려보는 까맣고 드넓은 밤이다.
사진.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