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단어는 한 마디로 ‘버거움’이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버거울 때가 많다. 시간적으로 물리적으로 감정적으로.
얼마 전 둘째 유치원 반 선생님 두 분이 한꺼번에 유치원을 그만두는 일이 있었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엄마들과 상의를 하고, 새로 오신 선생님과 적응기를 거치고,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봐야 했다. 또 한 달 전쯤에는 이곳에서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 가족이 다른 도시로 이사를 했다. 아이들도 각별히 잘 어울렸지만 나에겐 이 도시에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유일한 엄마였다. 중국에 사는 동안 많은 이별을 겪었고, 이제는 이별하고 아쉬워하고 잠시 슬퍼하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도 되었지만, 그걸 아이들도 함께 겪어야 한다는 건 마음에 또 다른 무게를 얹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상은 그 무게를 충분히 버틸 수 있도록 찬찬히 설계되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자전거 바퀴를 굴려야 하고 어떨 땐 예상치 못한 돌부리를 넘어가야 할 때도 있다. 큰아이는 일주일에 한 번 그 친구와 함께 수업을 들었었다. 이제는 친구 없이 혼자 다른 중국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들어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그 수업을 하셨던 선생님은 결혼으로 학원을 그만두게 되셨고 그 반은 정원 부족으로 아예 없어지고 말았다. 항상 같이 했던 선생님도, 친구도 없이 아이는 다른 반에서 낯선 친구들과 수업을 듣게 된 것이다. 그래도 아이는 수업 자체는 무척 좋아했을뿐더러 학부모들이 뒤에 앉아 수업을 참관하는 구조이므로 적응에 대해선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이번 주엔 남편이 하루를 제외하고 모두 저녁에 일이 있었고 오늘부턴 출장까지 간 터라 나 혼자 아이 둘을 데리고 수업 시간에 맞춰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반갑게 인사하던 선생님이 따라 들어오는 둘째를 보고 표정이 굳어진다.
“(중국어로) 둘째는 교실에 못 들어와요.”
“네, 그런데 현이가 지난번 처음 만나고 오늘 첫 번째 수업이잖아요. 죄송하지만 적응이 필요하니 오늘만, 처음 5분 정도만 둘째를 데리고 있어도 될까요.”
“여기 둘째 있는 다른 엄마도 있는데 데리고 나갔어요. 못 들어와요.”
그러더니 둘째에게 묻는다 “아니면 엄마는 여기 있고 너 혼자 나가서 다른 선생님이랑 놀고 있을 수 있어?”
멋도 모르고 5살 둘째가 끄덕이자 기계 미소를 지으며 아이 손을 잡고 데리고 나가려고 한다.
아니 잠깐, 엄마 동의도 없이? 한마디로 빡쳐서 “괜찮아요. 没事! 방해 안 하고 조용히 하고 있을 테니 5분만 있다가 나갈게요.”라고 말하고는 아이를 안고 의자에 앉아버렸다.
선생님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삐죽거리며 “5분.” 이란다.
한국어로 풀면 기본적으로 존대어이기 때문에 훨씬 부드러운 느낌인데 실전 중국어로 들으면 정말 뒷골이 당긴다. 나의 편견인지 모르겠지만 중국에 살다 보면 모 아니면 도, 맞다 아니다. 이런 융통성 없는 이분법적 사고를 자주 맞닥뜨린다. 그들에겐 규정대로 해야 하는 것이고,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것일 뿐이다. 언제나 조금의 예외도 없다. 일관성을 위한 강제성이 당연할 때도 많다.
5분 뒤, 큰아이가 수업에 참여하며 말하는 것을 듣고 난 후에야 나는 아이와 눈인사를 하고 둘째를 데리고 교실 밖으로 나왔다. 둘째는 그동안 상황을 파악하고 내 무릎에 얌전히 앉아있었음은 물론이다. 아이에게 짧은 칭찬을 해주고 나는 곧바로 카운터로 가서 좀 전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지난번 선생님이 아이들 책상을 종이로 탁탁 치던 것도 떠올랐다. 자꾸 말이 막힐 때는 중국어가 짧아서 이해해 달라고 덧붙이며, 목소리를 붙잡고 꾸역꾸역. 그러던 중 선생님이 갑자기 교실에서 뛰쳐나와 다짜고짜 내 손목을 잡았다. 아이가 울고불고 난리가 났으니 그냥 들어가라는 것이다. 참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적인 태도다. 일단 손을 뿌리치고는 얘기 끝나고 바로 가겠다고 했다. 아이는 선생님이 엄마를 나가게 했기 때문에, 그 교실 안에서의 믿음을 잃었던 것이다. 엄마 없이도 씩씩하게 첫 수업을 마칠 수 있다는 믿음. 그러려면 선생님에 대한 믿음이 필요한데 다른 누구도 아닌 선생님이 엄마를 나가게 했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나는 교실 뒤에 잠시 앉아서 아직도 어깨가 살짝 들썩이고 있는 아이와 수업을 시작하는 선생님을 몇 초간 번갈아 바라보다 이 상태로는 아이에게 수업을 강행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선생님껜 간다고 짧게 얘기하고 다른 학부모들에게는 미안하다고 말한 후 아이 손을 잡고 나왔다. 무언가를 느낄 겨를은 없었지만 중국 엄마들이 나를 신기하게 쳐다봤던 시선들은 정확히 느껴졌다. 비웃음은 아니었겠지.
대부분 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알겠다고 끄덕이며 나왔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울어서 선생님이 부르면 작은 해프닝이라는 듯 미소 지으며 다시 들어오면 끝날 일인지도 모른다. 왜 별일 아닌 일에 너의 감정을 불필요하게 소모하느냐며 정말로 비웃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두 아이의 엄마로서 작은 학원의 규율보다(알고보니 선생님 마음이었지만)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내 아이들의 감정이 다치지 않는 게 우선이었다. 마음이 요동쳐서 바로 근처에 있던 맥도널드에 들어가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먹었다. 발갰던 아이 얼굴이 다시 환하게 돌아온다. 아이가 지난번 선생님 이야기를 한다. 그 선생님은 결혼하셔서 저기~ 멀리~ 가서 사신대. 좋은 만남은 어렵고, 헤어짐은 항상 아쉽다.
집에 돌아와 둘을 씻기고 나니 어느새 늦은 저녁시간. 유치원 숙제가 또 남았다. 휴우. 유치원 大班 수학 문제에는 두 자릿수 덧셈이 가득하다.
너에게도 나에게도 힘든 날이었는데 이렇게도 세상은 예외가 없다. 그렇지?
큰아이 숙제를 봐주던 중 둘째는 피곤했는지 옆에서 먼저 곯아떨어지고 첫째 아이는 잠자리에 누워서야 졸렸던 눈을 말똥말똥 뜬다.
“어~ 졸리다더니, 눈이 말똥말똥한데?”
“흐흐흐 하나도 안 졸려 이제.”
“오늘 힘들었지~”
“응 너무너무~~~ 힘들었어.”
..... (토닥토닥)“수업할 때 엄마 아무 데도 안가. 알지? 근데 오늘은 엄마가 있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선생님이 엄마 보고 나가라고 해서 힘들었던 거지?”
“그리고 수학 문제는 차근차근 처음부터 공부하면 안 어려워. 너희 반에 수학 좋아하는 애 누구야?”
“응 00. 걔는 수학을 제일 좋아해. 근데 ㅁㅁ는 수학은 별로 안 좋아하고 다른 걸 잘해. 나도 그래. 다 잘하는 건 아니고 어떤 건 잘하고 어떤 건 좀 못하는 것도 있어. 나는 큐브를 제일 잘해 히히.”
“그래, 그렇게 친구들마다 좋아하고 잘하는 게 다르네. 우리 현이는 큐브 대장이잖아~ 근데 있잖아 큐브가 수학보다 훨씬 어려워~ 수학 못하는 어른 봤어? (도리도리) 못 봤지? 큐브 못하는 어른은? (눈이 동그래짐) 아주 많아~ 엄마 아빠도 못 맞추잖아. 그러니까 사실은 수학은 처음부터 차근차근하면 큐브보다 훨씬 쉬운 거야. 그 수학 좋아하는 친구는 아마 엄청 쉬운 것부터 차근차근 배웠을 거야.”
반 친구들에 대한 아이의 아무 말 대잔치가 끝나고..
“근데 우리 오늘 정말 힘들었는데, 엄마도 진짜 힘들었는데 이렇게 얘기하고 자니까 하나도 안 힘들다. 잠이 솔솔 올 것 같아.”
“맞아 진짜 그래 엄마.”
“사실 너 숙제할 때 졸리다고 너무 쉬운 것도 잘 못 풀어서 엄마가 조금 화냈지? 미안해. 다음부터 더 잘 말할게.”
“알겠어. 엄마 다음부터 좋게 말해야 돼~ 그리고 밤에는 졸리니까 숙제는 빨리 하자.”
“그러자. 근데 말이야, 진짜 얘기도 못하고 그냥 잠들었으면 어쩔뻔했니~”
“응 나 이제 잠이 솔솔 와.”
아이가 눈을 감은 채로 빙긋 웃어 보인다. 자는 척하다 또 한 번 빙긋, 마지막으로 또 한 번. 이번엔 정말 자는 줄 알았는데 또 빙긋할 줄은 몰랐네.
언제나 예외는 존재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