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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 Jul 22. 2021

희생에 대하여

조던 피터슨 강연을 보고..

음악 한 곡, 한 권의 책이 깊은 몰입을 가져다줄 때가 있다. 거창하게 몰입이라기보다는 그냥 ‘아, 너무 좋다.’로 시작해서 파고들 때가 종종 있다. 음악이 좋으면 그 가수의 노래만 계속 플레이한다던지, 같은 작가의 책을 몰아서 읽는다. 요즘 꽂힌 인물 ‘조던 피터슨’이다. 유튜브에 조던 피터슨 한국 채널도 있고, 여러 주제별 강연도 많이 올라와 있어서 선택해서 보기 좋다.


어제 본 영상은 <The development of the individual requires sacrifice>

‘희생’에 대해 다룬 여러 영상들이 있지만 이 영상에서는 부모가 아이를 키우며 하는 희생에 대한 내용을 논한다. 조던 피터슨과 함께 영상에 등장하는 Russell Brand는 ‘Negative elements of having children’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가 왜 자신의 인생을 희생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한다.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나 역시 이 부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왔고 여전히 ‘희생’에 대한 답을 찾을 수는 없었기에 영상을 들여다봤다.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가 주어진다고 하는 세상에 태어났고 그렇게 교육받아왔다. 어릴 때만큼의 무한한 잠재력은 아닐지라도,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한 가지는 하며 살 수 있을 거야 라는 생각으로 어른이 되었다. 잘하는 것을 잘 발달시켜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인생을 허비하지는 않으며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원하는 것들 다는 아니지만 조금씩은 가질 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는 것도 그런 차원이었을까. 때로 포기한 것들이 있었기에 얻을 수 있는 것도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했다. 당연하지만, 가진 것에 포커스가 맞춰질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며,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어떻게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 잘 알 수는 없었지만 어린시절 대부분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 엄마 아빠는 나에게 완벽한 부모였어’는 세상에 없다. 그렇기에 내가 알고 있는 선에서 나를 바로 세울 뿐이다. 그 무엇보다 나 역시 완벽한 부모가 될 수 없을 것이므로.


아이는 분명 인생의 귀한 선물이다. 처음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며 세상에 태어났을 때 그렇게 느끼지 않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은 세상 그 어떤 일보다도 긴 시간 동안 끊임없는 고통의 디테일을 요구한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는 것부터 인간 생존의 기본적인 욕구를 저해한다. 일정 기간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에 통과하고, 기술을 갈고닦아 전문가가 되는 종류의 감내와 희생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게다가 원하는 그림을 보장할 수도 없다. 그 그림의 결과는 하나의 인격체, 하나의 사람이라는 존재로 발현되므로 그 무게 역시 이 세상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이 무겁다. 이 세상 어떤 것보다 큰 선물인 만큼, 그 희생도 만만치 않다.


그렇게 무언가가 되려고 사람들의 기대 속에서 아등바등 살아왔는데, 종착역은 ‘엄마’다. 처음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이, 시간이 지나고 둘째를 낳으며 ‘이렇게 살아도 될까? 나에게 이렇게 해도 되는 거야?’라는 생각으로 바뀌었었다. ‘마음만 먹으면, 아니 약간의 돈과 시간만 있으면 뭐든 시도해 보고 배워볼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데,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한 나는 잘할 자신 있는데.. ‘ 그랬다. 첫째 때는 아무렇지 않게 나를 내어줄 수 있었다. 둘째 땐 괴로웠다. 어느 날 첫째와 둘째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다,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했었다. 딱 5년 만이야. 딱 5년만 너희가 내 전부야. 그리고는 다 무너질 줄 알았는데 그 반대였다. 그제야 나는 아이와 함께 모든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다. 같이 먹고 같이 잠이 들었고 진심으로 같이 웃었다.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엔 저절로 핸드폰을 들여다보지 않게 되었다. 원시인 같은 생활, 아니 원시인 같은 몰골이었을진 모르나 두 아이들 눈엔 엄마가 최고였으리라. 아이들로부터 '엄마는 정말 좋은 거야' 라는 말을 들었다. 좋은 사람이라는 말은 그렇게 싫었었는데 좋은 란 말은 나를 웃게 만들었다.


잠깐 나를 버렸다 생각했지만, 진짜 나를 버렸을 때와는 달랐다. 나의 주체 없이 다른 사람 눈에 나를 끼워 맞추며 살았을 때와는 달랐다. 속이 답답하지 않았고 숨이 막힐 것 같지도 않았고 몸의 일부와도 같았던 가슴속 통증도 없었다. 아름다운 희생이란 나를 버리는 일이 아니었다. 인생의 어떤 시기에는, 소중한 것들을 위해 작은 희생이 필요할 때도 있다. 어떨 땐 위대한 희생일 수도.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희생'이라는 단어 자체에는 많은 편견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고 싶은 희생은 자신의 삶을 희생하면서 자식에게 댓가를 바라왔던 부모 세대와는 다른 희생이다. 부모 자식 뿐 아니라 부부간도 그렇고 소중한 관계 안에선 가끔 나를 내려놓고 너를 바라보는 일이 필요하다.

 

아이를 낳고, 나만 바라보던 때와는 다른 세상의 아름다움을 알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조금은, 아주 조금은 내가 아닌 타인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믿는다.


5년이 지났다. 여전히 나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아이들의 눈빛에는 지난 시간들이 그대로 담겨 있다. 그 성장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큰 아이는 곧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고 둘째는 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하루 딱 8시간 정도는 내 시간이다. 하루 8시간, 한 달 240시간, 일 년에 2880시간. 이제 이것만큼은 절대 양보할 생각 없다.


영상을 보고 마음에 남는 말들을 주절주절 남겨본다.



강연 중 기억에 남는 한 마디.

It’s almost impossible to grow up until someone is more important than you.”



눈에 띄는 댓글도 적어본다.

Sacrifice is an Essential Part in a relationship that many people don’t 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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