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원 May 16. 2021

새까만 바나나

바나나에 까만 점이 생겼다. 까만 점들이 식욕을 떨어뜨린다.

나는 떫을 정도로 푸른빛이 도는 샛노란 바나나를 좋아하는데, 푸른 걸 골라서 사도 꼭 이렇게 까만 점들이 생긴 바나나를 먹게 된다.

(아까우니까, 얼른 먹어야지~)


까만 바나나 껍질을 벗겨보면 속은 아직 멀쩡하다. 내가 좋아하는 맛은 아니지만 어쨌든 더 달콤해져 있다.

휴, 겉은 까맣게 다 멍들어가도, 속은 허옇게 멀쩡한 바나나, 너 참 신기하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겉은 멀쩡한데, 속만 다 새까맣게 탔었거든.


바나나 껍질에 있는 까만 점은 일종의 경고등 인지도 모른다.

까만 점들이 작게 나왔다가, 큰 동그라미가 되고, 껍질 전체가 못난 까만색으로 다 덮이기 전까지,

진짜로 상해버리기 전에 얼른 먹어야 한다는 신호를 보낸다.


정작 샛노란 바나나였을 땐 조금 익혀서 먹어야지 해놓고는 꼭 까만 점의 경고등을 보아야, 그제야 먹게 된다.


까만 점의 바나나를 먹다 문득 예전에 어디선가 들었던 ‘우는 사람 손 들어준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묵묵히 견뎌온 멀쩡한 노란빛이 왠지 억울하다.


그런데 말이지, 노란빛 하나 없이 전부 다 까맣게 되어버려 손만 대도 훅 고꾸라져 버리는 그런 바나나는 쓰레기통 행이다.

구제 불능이다.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는다.


문득 아찔하다.


더 이상 멀쩡한 척, 샛노란 척하기 싫어서

조금씩 까맣게 울어보다가

새까만 바나나가 되어버린 건 아닐까 싶어서.




이미지 출처 :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지하철에서 있었던 일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