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에 까만 점이 생겼다. 까만 점들이 식욕을 떨어뜨린다.
나는 떫을 정도로 푸른빛이 도는 샛노란 바나나를 좋아하는데, 푸른 걸 골라서 사도 꼭 이렇게 까만 점들이 생긴 바나나를 먹게 된다.
(아까우니까, 얼른 먹어야지~)
까만 바나나 껍질을 벗겨보면 속은 아직 멀쩡하다. 내가 좋아하는 맛은 아니지만 어쨌든 더 달콤해져 있다.
휴, 겉은 까맣게 다 멍들어가도, 속은 허옇게 멀쩡한 바나나, 너 참 신기하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겉은 멀쩡한데, 속만 다 새까맣게 탔었거든.
바나나 껍질에 있는 까만 점은 일종의 경고등 인지도 모른다.
까만 점들이 작게 나왔다가, 큰 동그라미가 되고, 껍질 전체가 못난 까만색으로 다 덮이기 전까지,
진짜로 상해버리기 전에 얼른 먹어야 한다는 신호를 보낸다.
정작 샛노란 바나나였을 땐 조금 익혀서 먹어야지 해놓고는 꼭 까만 점의 경고등을 보아야, 그제야 먹게 된다.
까만 점의 바나나를 먹다 문득 예전에 어디선가 들었던 ‘우는 사람 손 들어준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묵묵히 견뎌온 멀쩡한 노란빛이 왠지 억울하다.
그런데 말이지, 노란빛 하나 없이 전부 다 까맣게 되어버려 손만 대도 훅 고꾸라져 버리는 그런 바나나는 쓰레기통 행이다.
구제 불능이다.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는다.
문득 아찔하다.
더 이상 멀쩡한 척, 샛노란 척하기 싫어서
조금씩 까맣게 울어보다가
새까만 바나나가 되어버린 건 아닐까 싶어서.
이미지 출처 :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