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남편이 퇴근길에 회사 후배와 술 한 잔 한다는 전화가 왔다. 통화를 마치면서 지나가는 말로 ‘올 때 맛있는 거 사와.’라고 말했지만 사실 내가 요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많지 않으니 남편도 난감했을 것이라 그냥 해본 말이었다. 요즘 남편은 코로나 덕분인지 때문인지 강제 귀가를 하다 보니 술을 마셔도 10시 30분이면 집에 들어오는 날이 많다. 일 때문에 통화하고 있는데 먹을 것을 잔뜩 사들고 들어온 남편이 누런 종이를 흔들며 인상을 팍팍 쓴다. 맛있는 거 사 오라던 내 말이 마음에 걸려 먹을 것을 사느라 삥 돌아 걸어왔을 텐데 1층에서 종이를 보고 기분이 확 상했던 모양이다.
주정차 위반 딱지! 올해만 벌써 세 번째다. 횡단보도 하나 함부로 건넌 적이 없는 나인데 진짜 이해가 안 간다. 나는 규정속도 준수자인데 말이다. 10년 가야 한 번도 없던 일들이 왜 올해 벌써 세 번이나 일어났을까? 정신없이 살고 있는 나의 일상이 답변을 해주는 것만 같았다. 처음 날아온 딱지는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찍힌 것이었다. 초행길에 낯설었고 아이 귀가 전에 집에 온다고 정신없이 오던 것이 꼬리를 물고 신호를 위반했나 본데, 어린이 보호구역이었고, 속도위반에 신호까지 자그마치 13만 원이었다. 휴… 심장 벌렁벌렁, 벌려면 엄청 힘들게 일해야 하는 돈이, 쓰기엔 이렇게 쉽구나 싶어 속이 철렁했어도 애써 태연 한척하며 “내가 낼게 걱정 마!” 하고 돌아섰던 날이 있었다. 바로 두 달 전쯤 같다.
주말에 부모님 댁에 갔다가 넘어오던 날, 늘 규정속도를 지키는 나인데 무슨 일인지 동생하고 이야기하며 흥분했었나 어쨌나, 그 뒤로 한 달 후에 또 한 통 노란 봉투가 날아왔고 이번엔 3만 2천 원을 벌금으로 냈다. 그리고 이제 딱 한 달이 지났다. 그런데 어제 또 날아온 것이다. 이번엔 주정차 딱지.
와ㅡ 카메라 있는 줄도 모르고 아이 학원 앞에서 내려오길 기다리던 자리였는데, 4년째 늘 다니는 그곳에 카메라가 새로 생겼을까? 아이가 테스트 본다고 늦게 나와서 원래 5분 미만으로 정차하던 곳에 25분 넘게 정차했던 것이 사달이 났다. 안 그래도 올해 들어 한 달 간격으로 두 번이나 벌금을 내게 되었으니, 더는 잔소리 듣기 싫어서 더 조심하며 다녔는데 이게 웬 말!
맛있는 거 사들고 들어오며 기분 좋게 들어오던 남편의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하다. 유독 주차비, 견인비, 이런 범칙금이 아까운 것은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니거든!!!
얼른 와서 먹자며 사 온 음식을 펼쳐드는데도 목소리는 가라앉고 얼굴 표정은 엉망이다. 내가 잘못했으니 꼬리를 내리고 조심히 물었다. “ 왜 기분이 안 좋아?” 했더니 “내가 왜?” 한다. “밖에서 기분 안 좋은 일 있었어?” “ 아니, 벌금 나와서 그런가부지.” 한다.
벌금이 나온 것도, 그 돈을 내야 하는 것도 나인데 남편 눈치까지 봐야 하는 걸까? 싶었다. 지금 속에서 부글 거리는 것은 당신보다 내가 더 더 더 심하거든!!!!
그러다 문득 잠자리에 누우면서 아이들도 그렇겠구나 싶어 진다.
공부를 하는 것도 아이들이고, 시험을 잘 보고, 성적을 잘 받고 싶은 것도 아이들인데 못 봤다고 부모, 선생님 눈치까지 보느라 얼마나 힘들까?
공감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내가 그 입장이 되어보는 걸까?
당연히 벌금이 나오지 않도록 법규를 준수해서 잘 지켜야겠지만, 모르고 한 실수에 마음이 답답한데 그 답답함마저 생각할 시간이 없이 큰 죄를 지은 것 마냥 마음이 무거웠던 밤, ‘괜찮아. 다음부터 조심하면 되지.’ 하는 한 마디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돈도 내가 내고, 욕도 내가 먹고 억울해도 한 참 억울했던 밤, 생각해 보니 아이 데리러 가서 오늘도 그곳에 30분 서서 기다렸던 것 같은데 다음 달에 또 날아오겠네.
정말. 아, 억울하다. 억울해! 진짜 모르고 그런 거라고!!!
정신 차리자. 제발. 삼세번도 끝났는데 다음 달에 또 나오면 그땐 정말 어떡하지. 진짜 와놔 스트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