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마음을 달랠 새도 없이 어느새 쏟아져 나온 말에 나 스스로 부끄러워지는 순간이 있다. 다른 곳에선 다 되는데 절대 안 되는 딱 그 자리. 내 아이 앞이다.
아이에게 이런저런 말들을 쏟아붓고 돌아서서 나도 모르게 나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짜증스러운 건데?
아이가 9시 30분에 자기 시작하면서부터 5시 30분 새벽 모닝을 맞이하고 있다. 새벽에 일어나서 하루 할 루틴을 채우고 온종일 뒹굴거리는데… 분명 그건 못마땅한 것이 아니라 칭찬해 줘야 할 일인데도 자꾸 불쑥불쑥 나의 일상에 침범해서 이러쿵저러쿵하면서 참견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쑥 감정이 올라온다.
내 마음의 소리는 아마 이런 것일 것이다.
대체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난 건데,
그럼 다른 거 하면 되지 왜 나에게 찡찡하는 건데,
아직 아이인데 다 큰 어른 대하듯 하는 나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이제는 좀 알아서 해줬으면 하는 내 바람이 마음에 가득 차면 꼭 이렇게 문제가 된다.
엄마는 나에게 자식이 70넘은 노인이 되어도 부모에겐 아이 같아서 ‘길조심 해라 밥 챙겨 먹어라’ 하는 거라고 했는데, 난 왜 자꾸 아이를 다 큰 어른처럼 대하는 걸까? 아이의 엄마로 사는 삶보다 나로 사는 삶을 우선으로 두고 싶기 때문일까? 무언가 하려고 하면 힘들어지는 게 육아인데, 아직 나는 육아 터널 그 어디쯤에 있는데 왜 자꾸 다 나왔다고 생각하는 거지?
스스로 알아서 잘하는 것이 더 많은 아이, 매사에 관심이 많아서 알려고 하는 건데 왜 그걸 자꾸 멈추게 만드는 버튼을 누르는 건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이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질문하고 대화하며 키워서 남들보다 열 배 말이 많은 것은 다 나 때문인데 요즘은 왜 그게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다.
잠든 아이에게 인사를 하고, 방을 나오면서 또 눈시울이 뭉클하면서 내가 잊은 사이 15센티쯤 커버린 것만 같은 아이가 유난히 낯설어 보이는 오늘, 감사함보다 죄책감이라는 녀석이 마음속에 더 많은 비율을 차지하게 된다.
아마, 일탈! 그러니까 나에게도 잠시 멈출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어느 하루 맑고 한가로우면
나는 바로 그 하루의 신선이다.
명심보감 제11편 55장
명심보감 필사를 하려고 읽어보다가 문득 내 마음이 맑지 못하고 한가롭지 못해서라는 사실을 확인해 본다.
단 하루 일지라도 큰 지혜를 지니고 있는 사람처럼 맑고 한가로우면 그 순간만은 누구라도 신선의 경지를 만끽할 수 있다는데 큰 지혜를 보겠다고 읽고 쓰고 공부하며 매일 마음을 닦으면서도 여전히 눈앞에 보이는 작은 일에 마음을 싣고 오락가락, 내 삶이 너무 각박하고 촘촘한 거 보니 여전히 작은 지혜 속에 갇혀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은 강의를 마치고 내일은 준이랑 점심 데이트하면서 폭풍 칭찬을 해주고 거대 사과도 좀 해야겠다. 아빠도 없는 요즘 엄마가 자꾸 엄마 편한 것만 생각해서 미안하다고, 너의 방학을 더 향기롭게 채워줄 수 있도록 맑고 한가로운 신선 같은 날을 더 많이 만들어 보겠다고 말이다.
네가 없는 날은 단 한순간도 상상할 수 없으면서 네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지 않은 어리석은 엄마의 행동을 용서해주길 바라며,,, 꿈속에선 우리 신선놀음 더 실컷 하고 만나자 잘 자, 나의 반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