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수업하며
우리는 보통 내가 누리는 일상의 모든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지 잊고 살게 된다. 아무 일 없이 눈을 뜨고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도 누군가에겐 간절하게 원하는 단 하나의 소망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밥 걱정, 돈 걱정, 일상의 불안함에 대한 걱정 없이 평온한 집에서 태어났었더라면 어땠을까 싶어 원망한 나날들이 많았다. 누군가는 당연하게 누리는 행복을 나만 어렵게 잡으려고 애쓰는 것 같아서 억울했다. 조금 더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고 성공해서 도움을 주는 부모님이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 번 밖에 없을 어린 시절을 즐거움보다 상처로 채워 넣었던 것이 서러움으로 차곡차곡 쌓여 마음에 원망 주머니를 무겁게 채워뒀었던 것 같다.
그러다 어른이 되었고 결혼을 했다. 훌훌 털어버리고 즐거움으로만 채우고 싶었던 나의 새로운 인생은 어느새 더 무거운 원망들로 다른 주머니를 채워갔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그 굴레에서 벗어 나올 수 없어 속상하고 괴롭다고 한탄하면서 말이다.
창피한 일이 수두룩하고 지루한 데다
하찮은 인생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책 한 권 들고
내 방 침대에 앉아 있을 수만 있다면
뭐든 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동안 유리인 줄 알았던 하찮은 것들이
이제 보니 다이아몬드였다.
미드나잇 아워
내 눈앞에 펼쳐진 많은 것들이 언제든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유리 같았다. 감추고 애를 써봐도 모두에게 드러나는 부끄러움, 수치스러운 것들, 보여주기 싫은 단점들을 더 꽁꽁 숨기고 싶어서 발버둥을 치며 더 애쓰고 살았다. 그런데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의 힘든 일을 겪어보니 내 눈앞에 펼쳐진 모든 것들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다이아몬드였는데 정작 나만 그걸 몰랐구나 싶었다.
나 혼자서 씩씩하게 대단하게 어른이 된 것 같지만 부모님께서 보여주신 뒷모습을 보면서, 베풀어주신 사랑에 감동하면서 이렇게 멋진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던 것이다.
숨 쉬고 있다. 나도 남편도 아이도. 우리 모두 건강히 살아있다. 아직 사랑하는 부모님들이 살아계시니 그동안 못다 한 효도도 할 수 있고, 잘못했던 일들을 만회할 기회가 남아있다. 고마운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 못다 한 공부도 평생 하며 살 수 있겠다. 생각만 하고 망설이던 많은 것들을 하나씩 도전하며 살 수 있다.
아무 탈 없이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우린 자주 잊는다. 눈을 떠서 잠드는 순간까지 찾아보면 감사할 일들이 넘쳐나는데 말이다. 아이들과 함께 읽는 책 속에는 그동안 찾지 못했던 수많은 다이아몬드들이 들어있다. 어려서 잘 몰랐을 때 읽고 지나갔던 문장들도 어른이 되어 다시 읽고 엄마가 되어 다시 읽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나서 다시 읽어보면 또 다르게 받아들여졌다. 책도 그대로이고 문장도 그대로이지만 그 문장을 만나는 내가 변했으니까 말이다.
마음에 자꾸자꾸 솟아오르는 욕심을 버리고 나를 비워내는 삶, 그래서 고전을 읽는지도 모르겠다. 동양고전을 읽고 아리송함 속에서 교훈을 찾는 것도 좋지만, 아이들과 다시 읽는 고전 속에서 만난 보물 같은 문장들을 수집하면서 나의 인생, 삶의 모든 구석구석을 되돌아보고 음미할 수 있어서 참 좋다.
내가 만나는 모든 순간이, 이런 경험이, 많은 사람이, 내가 누리는 모든 것들이 절대 변하지 않을 다이아몬드라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내 인생의 아름다운 다이아몬드를 감사하게 여기며 천천히 수집하며 살고 싶다.
아이들과 수업을 하다가 만난 따스한 주제로 각자 글쓰기를 했다. 그리고 아이들 발표를 마치고 ‘오늘은 선생님도 썼는데 한 번 발표해볼까요?’ 하고 글을 조금 다듬어 읽어줬다. 긍정피드백으로 글쓴이에게 꿈과 용기를 주는 우리 아이들은 오늘 선생님 마음에 온 몸을 떨리게 하는 심쿵 화살을 쏘았다.
+ 제 글은 주제에 대해 이렇구나 하고 쓰고 나는 이렇게 해야겠다 하는 느낌만 담겼는데 선생님 글을 들어보니 귀에 쏙쏙 들어와요. 선생님의 글은 인생을 돌아보게 해주는 것 같아요.(어떻게 이런 피드백을 하지?)
깜짝 놀란 마음을 달래기도 전에 두 번째 피드백을 받았다.
+ 선생님 만의 명심보감을 쓰고 계신 것 같아요. 앞으로 다이아몬드를 계속 모으고 싶다는 생각은 못했거든요.
(이보다 가슴 뛰는 말이 있을까? 평생 보물처럼 간직할 문장이다. - 이 피드백을 듣고 다른 아이들이 “ 선생님 00은 피드백만으로도 감상문을 쓰네요.” 한다. 아이들의 듣는 귀가 한 뼘 자랐나 보다. )
+ 선생님 글을 들으니 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요. 저희들 글과 또 다르게 어른들만 사용할 수 있는 어휘들이 너무 좋았어요. 고급스럽고 아름다운 글이라고 할까요?
아이들과 수업하고 수개월, 자신들의 글을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상대방의 글에 긍정피드백을 하는 연습을 했다. 그동안 아이들이 작품을 감상하는 실력이 늘어나고 공감하고 배려하며 좋은 말로 상대를 추켜세워주는 연습을 해왔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배움을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줬다. 아이들에게 늘 배우는 나는 오늘도 가슴 설레어 심장이 뛰었다. 어디에 가서 이런 감사한 선물을 받을까 싶다. 너희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생님이 될게. 선생님 어깨를 10센티미터쯤 올려준 고마운 나의 다이아몬드들:)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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