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이런걸까?
“사진으로 보니까 나도 많이 늙었더라.”
출장 가 있던 남편하고 통화하다가 남편이 툭 던지듯 말했다. 어느새 마흔이 훌쩍 넘어 나이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몸의 이곳 저곳에서 감지하게 되면서 우리는 천천히 받아들이는 중이다. 그냥 거울을 보거나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때는 모르다가 사진을 찍고 나서 보니 피부가 탄력을 잃고 축 쳐져서 주름과 어우러진 얼굴로 변해가고 있었다.
연휴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다시 옛날로 가고 싶으냐던 물음에 나도 모르게 지금이 좋다고 말해버렸다.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로 돌아가 다시 사는 일, 당신과 결혼하기 전으로 되돌아 가는 일, 어린 시절의 내가 되면 다시 잘 해보고 싶다는 일, 이젠 더이상 자신이 없다고 말이다. 삼십대까지는 모르고 살던 많은 것들을 알아간다. 그래서 어른들이 ‘너도 마흔 되어봐라’ 하셨던 거구나 싶은 일들만 차곡 차곡 쌓여간다. 아, 그래. 나도 나이먹는 구나.
어플 없이 찍은 사진은 쳐다도 볼 수 없고 살짝 묶어 올린 머리 사이 사이로 올라온 흰머리가 매일 나를 고민하게 한다. 염색을 해? 말아? 어쩌면 나이드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서글픈 마음이 차오르는 것도 사실이다. 조금 천천히 만끽하면 좋겠다. 내 인생의 두 번째 스무살, 가장 뜨거운 순간을 말이다.
“되돌아가는 일 말고 나는 쭉 사십대로만 살고 싶어.”
“나도 그래.”
정말 오랜만에 남편과 마음이 통했다. 눈앞에 펼쳐진 일들을 처리하고 받아들이고 버텨내는데 다 써버린 지난 날에 비해 마흔이 넘고 나니 그냥 흘려보낼 줄 아는 것도 생기고 아주 작은 일에 마음이 요동치지도 않으면서 먹고 살 걱정보단 제대로 잘 살 걱정을 하면서 보내는 요즘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에 신경쓰고 영양제를 챙겨먹고 운동을 하고 식단을 기록하고 누가 시키는 일 보단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 가면서 그렇게 사는 날들이 마흔 넘어 찾아온 우리의 오늘이 아닐까 싶었다.
결혼하고 아이키우고 집 사서 이사하고 잔뜩 떠안은 대출금 걱정하며 그 세월을 정신없이 지나오고 나니 아이가 소리도 없이 어느새 쑥 커있다. 그럼 좀 살 것 같아야 하는데 부모님 건강에 자꾸 적신호가 들어온다. 그렇게 부모님 걱정하며 병원 따라 다니고 효도하다 보면 어느새 내 몸도 여기저기 고장이 나겠지? 그럼 또 자식에게 피해주지 않는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 꾹 참고 애쓰며 사는 삶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나중으로 미루지 말자. 괜찮아 지겠지, 다음에 가자, 나중에 해줄게 하는 이런 말들은 어쩐지 마음을 더 허전하게 만든다. 지금 이 순간에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고 나누고 베풀고 표현하고 다독이고 인정하고 즐기면서 그렇게 살아야 진짜 잘 사는 것이다. 지금까지 세상을 탐구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기 보다 짜여진 대로 살아온 날들이 더 많았다면 이제는 그렇게 하면 안될 나이가 찾아온 것이다.
직관과 감정을 돌보고 나에게 찾아온 변화를 받아들이자. 내가 인상 쓴 만큼 주저앉은 주름이 내 삶을 좋지 않은 곳으로 데려가지 못하도록 더 많이 웃고 즐기며 삶의 보람을 찾아 나서야 겠다. 사는대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살기 위해서 논리와 이성보단 다채롭고 여유있어지고 어른스러워진 나의 직감을 믿으면서 말이다.
두번째 스무살의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내 마음이 신실해서 중도를 잃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이나 결정을 하지 않도록 떳떳하게 삶과 쉼의 균형을 맞춰가면서 잘 살고 싶다고 말이다. 오십이 되어도 육십이 되어도 지금처럼 새로운 것은 피하지 않고 배우고 지나간 일은 훌훌 털어버리기도 하면서 감사한 일에 격하게 감사하고 속상한 일에 마음을 다독일 줄 아는 좋은 어른으로 그렇게 오래 오래 사십대에서 머물고 싶다. 천천히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