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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썸머 Apr 01. 2022

친애하는 지인들의 리스트를 만든다면


친애하다 (親愛하다)
친밀하고 소중하다
친밀하게 사랑하다


참 따뜻한 말이었구나 싶었다. 가끔 유명인사들이 발표를 하거나 많은 사람들 앞에선 누군가가 말문을 열 때 사용하던 단어. 친애하다. 이제야 사전적인 의미를 찾아보았다. 요즘 즐겨보던 드라마 <서른, 아홉>이 어제 막을 내렸다. 마흔을 코앞에 둔 서른아홉의 여 주인공 셋은 고등학교 때 만나 서른아홉이 될 때까지 삶의 모든 순간을 함께하며 따스한 우정을 쌓아왔다. 그리고 그 주인공 중 한 명(전미도)이 시한부의 삶을 살게 되면서 그려지는 인생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순간이 그려져 연이어 눈물을 쏟아내게 했다.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인생에 있어 가족을 제외한 내편, 내편이 있다는 것은 잘 산거야.’라고 말하던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 죽게 마련이다. 어렸을 땐 영원히 살 것처럼 길게 느껴지던 인생의 시간들이 요즘은 점점 짧고 빠르게 흘러가는 찰나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나이 들어가는 것이구나 싶어 진다. 예쁜 정장을 차려입고 결혼식에 가던 날들은 사라지고 계절별로 검은색 정장을 준비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은 몇 해 전 일이다. 누군가의 부고 소식에 마음을 졸이며 달려가는 일들이 많아지면서 내가 진짜 나이 들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드라마를 보면서 생각해 보았다. 내 삶의 마지막을 준비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언젠가 엄마가 조용히 나를 부르셔서는 자신의 통장 비밀번호가 무엇인지 어디에 통장과 도장을 두었는지 이야기하시면서 ‘혹시 모르니까 네가 알고 있어.’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가까운 누군가와의 이별이 잦아지면 자신도 모르게 대입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만약에 나에게도 마지막이 온다면’ 하고 말이다. 그때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냐고 화내며 엄마의 말씀을 흘려들었지만 이제 아주 조금은 엄마가 하시고 싶었던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드라마 <어바웃 타임>의 한 장면에서도 한 번 그 의미를 떠올려 본 적이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 남은 삶의 기간이 드러나는 시계가 있고 그 시계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어느 날 자신의 남은 시간을 보게 된다면 어떨까? 자신에게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돌아보며 미리 장례식을 준비하고 사람들을 초대해서 살아생전 꼭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초대해 만남을 갖던 드라마 장면에서 많은 생각을 했었다. 우리는 모두 지나고 나서 후회한다. 그때 사과할 걸, 더 사랑해줄걸, 많이 안아줄걸, 그 이야기를 더 들어줄걸, 고맙다고 말할 걸 하고 말이다. 그런데 막상 또 일상에서 실천하기란 쉽지가 않다. 깨닫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인지 아니면 늘 돌아서서 후회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 의미의 결론을 내리지 못했던 나는 어젯밤 다시 한번 깊이 떠올릴 수 있었다. 나의 부고 리스트.


마지막을 앞두고 자신의 죽음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주인공 찬영(전미도)은 납골당에 가서 자신의 자리를 예약하고, 영정사진을 찍고, 자신이 사라지고 난 이후의 세상에 너무 아쉬울 일들을 친구 미도(손예진)에게 부탁을 한다. 자신이 없어도 매년 엄마 아빠 생신을 챙겨주기를, 남은 사람들을 챙겨 자주 만나 서로 나누기를, 자신이 떠나고 난 뒤 많이 힘들어하지 않기를 말이다. 그리고 종이 한 장을 건넨다. 자신의 부고 리스트.


누군가 전화해서 밥 한 번 먹자 하면 나가서 먹고 싶은 사람들만 정리했다고 했다. 연락처 리스트에 있는 모두에게 자신의 소식을 전하고 싶지는 않았다면서 말이다. 그런 찬영의 부탁을 건네받은 친구 미도는 주희와 함께 부고 리스트를 브런치 리스트로 바꾸는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했다. 그리고 찬영은 보고 싶은 사람들을 모두 한 자리에서 보고 인사를 나누게 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인사를 전한다.


더할 나위 없이 충분한 삶이었다고.


마흔, 쉰, 예순, 일흔, 여든, 아흔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이 든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일지 모른다. ‘나이 들었으니 좋은 시절 다 지나갔어’ 하는 체념의 말이 아니라 ‘앞으로 너희들과 함께 할 쉰, 예순, 일흔이 너무 기대가 된다’하는 설레는 말들로 내일을 채워나갔으면 좋겠다. 평소 친구들에게 먼저 전화 한 통 문자 하나 제대로 하지 않고 오는 연락만 받고 살아온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장면이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누군가 자신의 시간과 일상을 나에게 공유하고 마음 써주는 일만큼 고마운 일이 또 있을까?


오늘 나는 전화번호 연락처 리스트를 열어보았다. 700개가 가까운 전화번호 사이에서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쉬움으로 마무리된 인연은 없는지 찾아보고 한 번쯤 용기 내어 연락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음으로만 위하는 그런 친구 말고 자주 표현하고 안부를 묻는 살가운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다짐까지 덤으로 말이다.


연락처 목록을 둘러보면서 상대방의 이름 앞에 내가 ‘친애하는’이라고 붙일 수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정리해본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늘 나의 곁에서 힘이 되어주던 친애하는 나의 지인 리스트를 만들어 보다 적극적으로 내 마음을 표현하면서 살아야겠다. 나에게 남은 날들이 얼마만큼인지 모르겠지만 하루하루 더할 나위 없이 충분하고 행복한 날들이 되도록 격하게 사랑하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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