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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ttee Apr 04. 2019

어머니는 전문직을 하라고 하셨어...

우리 부모님은 어렸을 적부터 나보고 이거 하라 저거 하라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진학도, 취업도, 결혼도 내가 결정하는 대로 믿고 맡겨주셨다. 


그랬던 우리 부모님이 딱 한 때, 내가 대학 다니는 동안 넌지시 던지는 말이 있었다. 


‘고시 보는 거 어때?’ 


당시 꿀 같은 대학생활을 즐기고 있던 나에게 고시 = 신림동 = 재미없는 생활이었고, 한치의 고민도 해보지 않은 옵션이었다. 나는 답답한 공무원 생활, 틀에 박힌 일만 하는 전문직 일보다는 사기업판에서 글로벌을 무대로 내 꿈을 펼칠 거야!라는 주장을 펼치며 번번이 엄마의 제안을 웃어넘겼다. 


하지만 나이가 30이 지나고, 가정이 생기고, 회사 판의 논리를 배워갈수록 아빠 엄마가 왜 그때 나에게 그런 제안을 했었는지 깨닫고 있다.  




회사에 입사하여 어느 순간까지는 그냥 나한테 주어진 일만 성실하게 잘하면 된다. 남들보다 조금만 시간과 노력을 더 쏟으면, 조직에서 좀 더 돋보이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여자, 남자 구분도 그때는 별 의미가 없다. 


하지만 연차가 쌓이고, 회사일이 내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회사일은, 내가 한 일을 더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남들에게 알리고, 내 의사가 관철되도록 상사와 타 부서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며, 이를 위해 때로는 상대방과 기싸움을 해야 하고, 팀원들의 노력을 모아 팀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하고, 우리 팀/나의 성과를 위해 다른 사람들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일들을 포함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리더십도 필요하고 정치도 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본질적인 고민이 시작된다. '내가 이러한 일들을 하며 조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가?' 아니 이 조직이 아니라 다른 어느 조직에서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가?  


이런 심오한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집에는 어린이집에 적응 못한 아이와 가사와 육아에 좀 더 신경 써 주길 바라는 남편이 있다면, 이를 헤쳐 나가 보겠다는 의지는 점점 꺾여간다.  




그러면서 엄마가 대학생이었던 나에게 했던 말들이 떠오른다.  


전문직/공무원


대체 가능하지 않은 전문적인 지식과 스킬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냥 ‘내 일’만 해도 되는 일. 진로 고민 딱히 안하며 나라에서 부여해 준 힘으로 아쉬운 소리 안하며 '내 일'을 하는 일. 


‘아… 그래서 그때 엄마가 고시를 보라고 했구나’  


못난 딸내미는 오늘도 깨닫고 갑니다. 


그때 내가 고시를 봤더라면, 의대/의전을 갔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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