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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ttee Apr 11. 2019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물음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을까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엄마를 좀 더 찾는다 싶긴 했다.


하지만 이건 좀 이상했다. 혼자 슬렁슬렁 걸어 다니며 책도 보고, 장난감도 뚜드려보고, 아빠 서랍도 뒤져보고 하는 아이였는데 무조건 엄마가 안으라고만 한다. 스킨십을 좋아하는 애도 아닌데 작은 두 팔로 내 뒷덜미를 단단히 두르고, 그렇지 않으며 머리카락 한 움큼을 힘주어 쥐고는 절대 놓지 않는다. 어쩌다 아빠랑 놀다가도 지 성질대로 안되면 머리를 바닥에 박거나, 이빨 자국이 선명히 남도록 자기 팔뚝을 물며 아빠를 노려본다.


'이거 봐 나 화났어. 날 아프게 할 거야'라는 눈빛이다.


휴우 이 녀석이 왜 그러나... 나는 설거지도 미루고, 씻지도 않고 아이부터 가만히 안는다.


'우리 아기 기분이 별로예요? 엄마랑 꼭 붙어있자'


두런두런 오늘 있었던 얘기도 하고, 좋아하는 전등 스위치를 만지작 거리게 해 주며 아기 마음을 달래 본다. 그러면서 아이에 대한 미안함도 함께 쓸려 보낸다.




회사에서는 깍두기 워킹맘 역할을 맡고 있다. 깍두기... 어릴 적 술래잡기할 때 우리 또래보다 좀 어린, 그래서 정식으로 끼워주기는 뭣하고 빼기는 미안하니 붙여주는 이름 '깍두기'. 처음엔 나도 할 수 있는데 왜 안 시켜주나 화도 났다. 사실 화가 많이 났었다. 그래서 어디 나 없지 잘들 하나 보자.라는 심보로 심드렁하게 회사를 다닐 때도 있었다. 맘 속으로는 내가 못하는 일 차라지 잘 되지도 말아라! 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정말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어린이집 등원시키고 오면 나만 지각하기 일쑤, 어린이집 적응기 때는 혼자 매일 2시간씩 휴가, 남편이 갑자기 일이 생기면 일하다 말고 3시에 나와 아기 하원 시키고 복귀. 칼퇴하고 후다닥 집에 와서 아이 먹이고, 씻기고, 재우기도 급하니 야근은 꿈도 꿀 수 없다. 매일 반복적으로 정해진 일을 하는 게 아니라 프로젝트 흐름에 따라 야근과 주말출근, 출장이 잡히고 시시때때로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하며 일의 맥락을 따라가야 하는 업무를 나는 남들처럼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나마 이 팀에서 일한 지 가장 오래되었고, 프로젝트를 제일 많이 해봤다는 이유로 박힌 돌의 이점을 단단히 누리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팀에 일이 갑자기 몰리고, 나도 지금까지처럼 여유를 부릴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나의 처지가 더욱 명확해졌다. 그리고 하필 이럴 때에 아이가 이상해진 것이다. 설상가상 우리 팀에서 나밖에 갈 수 없는 미팅이 해외에서 잡혔다고 한다.


아...




나는 남한테 잘 맞춰주는 사람이다. 내 것을 강하게 주장하기보다는 다른 사람 얘기 들어주고, 이왕이면 그 사람이 듣기 좋은 얘기 해주는 게 마음이 편하다. 그래서 나는 힘들고 빡빡한 상사들을 잘 견뎌왔던 것 같다. '못해먹겠네' 하고 박차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저 사람이 하자는 대로 따라주는 사람. 지금까지 나의 상사는 회사와 내가 상대하는 사람들이었다. 회사에서 나에게 원하는 역할이 뭘지를 찾아서 그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그런데 지금 내 옆에는 회사보다 더 강한 상사들이 있다. 아이 그리고 남편. 이들은 더 직접적으로, 더 강하게 자주 나한테 요구하고 주장한다. 사회 통념적으로도 나는 이 상사들을 더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게 맞는 것 같다. 하지만 회사에게 폐를 끼치거나, 두꺼운 얼굴로 다니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인 걸까...




여자라고, 결혼을 했다고, 아이를 낳았다고,  일을 관두는 일은 결코 없으리라고 나 스스로와 주변에 말해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자꾸 딴생각을 한다. 파트타임을 해볼까? 꼭 회사에 다니는 것만이 일은 아니잖아?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일의 모습이 있는데. 그리고... '내가 회사일을 계속 잘할 수 있을까?'


이게 내 문제가 아니라고, 사회 구조적인 문제라는 증거들을 찾아 읽으며 위안을 삼고 때로는 분노했다. 성공한 일하는 여성들 얘기를 읽고, 내가 일하는 것을 지지해 주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힘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그 연료들로는 내가 매일 집과 회사에서 맞이하는 갈등 상황을 이겨내는데 부족했다. 이미 흘러가고 있는 물살을 나 혼자 안간힘을 쓰며 거꾸로 헤치고 가는 기분이다.


일 말고도, 삶을 더 행복하고 풍부하게 가꾸는 것이 또 있지 않을까... 가보지 않은 그 길을 머릿속으로 계속 기웃거리고 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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