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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ttee May 10. 2019

이모님 우리 이모님

우리 집에는 80살 잡수신 이모님이 계신다. 흔히 말하는 그 '이모님' 아니고, 시어머니의 언니 그러니까 우리 남편의 진짜 이모가 계신다.


이 이모는, 일찍 돌아가신 엄마를 대신하여 자기보다 15살 아래인 막내 여동생 (=우리 어머니)을 보살폈고, 그 여동생이 낳은 아들 (=우리 남편)을 몸이 약한 여동생을 대신하여 거의 기르다시피 했다. 그리고 그 조카가 낳은 아들 (=우리 아들)을 일 욕심 많은 조카며느리를 대신하여 키우고 있는 중이다.


이 이모님은 우리 남편 집안의 삼대를 보살피고 있는 집안의 은인이다.




이모가 고령에 이렇게 일하는 게 가능하신 건 첫째도 둘째도 '건강'이다. 이모 댁과 우리 집은 지하철로 한 시간 거리인데, 이 거리를 나들이하듯 지하철로 오간다. 어쩔 때는 총각무를 담갔다며 김치 통을 들고 오시고, 아이가 좋아하는 바나나 포함 각종 장을 봐서 들고 오실 때도 있다. 나는 다 여기서도 살 수 있는 것이니, 제발 아무것도 들고 오지 마시라고 신신당부를 하지만 어르신들이 어디 젊은 사람 말을 들으시던가. 새벽 6시부터 일어나 아이의 주 무대인 거실과 주방을 깨끗이 청소 해 놓으시고, 쌀을 씻어 아침밥을 올리고 나면 나는 그제야 비적비적 걸어 나온다. 내가 출근 해 있는 동안에는 설거지와 손빨래, 장 봐놓은 재료를 다듬고, 국을 끓이시는 등 각종 집안일을 해 놓으신다. 그러면서 어디 한 군데 아프다는 말씀을 안 하신다. 대신 이모는 밥을 아주 많이 드신다. 삼시세끼 꼭 밥을 지어 공기 소복하게 담아 김치 한 가지뿐이라도 꼭 밥을 드신다. 이모와 함께한 일 년 동안 먹은 쌀이 남편과 내가 3년 동안 먹은 쌀보다 많은 것 같다.


사실 지금은 아이가 어린이 집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 이틀간만 계시다 가시는데 이모가 계신 그 이틀이 우리 가족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는 이틀이다. 아이는 일주일에 한 번 어린이집을 빠지고 이모에게 넘치는 사랑과 케어를 받으며 집에서 편하게 쉰다. 나는 평소보다 일찍 출근하여 밀린 일들을 할 수 있고, 집에 돌아가면 노란 부엌 불빛 아래 밥 짓는 냄새가 나고, 냄비가 끓어오르고 있다. 남편도 이모가 깨끗하게 쓸고 닦아 놓은 집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한다. 그래서 이모가 오시는 날 아침이 되면 그 사실만으로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




물론 이모와 살며 신경 쓰이는 부분도 당연히 있다. 이건 불편하다기보다 이모의 특성에 기인한 재밌는 일인데, 이모는 집안에서도 유명한 소식통이다. 남편이 이모가 우리 집에 오시기 전에 한 가지 주의를 준 것이 있는데 '이모가 알면 일가친척 모두가 알게 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즉 나와 우리 집에 대한 모든 것이 어머님 형제들 가정으로 퍼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가족뿐이 아니다. 이모님이 다니는 교회 지역구 사람들, 이모님 동네 사람들 모두가 우리 아이가 밥을 잘 안 먹는 거, 내가 늦게 출근해도 되는 회사에 다니는 거, 남편이 그렇게 집안일에 참견을 하는 거를 다 알고 있다. 특히 어머니와 이모님 간의 정보 교류는 거의 실시간이어서 망고가 아침에 밥을 얼마나 먹고, 어떤 똥을 쌌는지는 점심때쯤에는 어머니 귀에 들어가 있다.


붙임성 좋은 우리 이모 덕분에 나도 우리 아파트 18층에 여자는 의사, 남자는 회사 다니는 부부와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우리 아들 또래의 아이가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앞 동에는 시어머니가 아들의 두 손주를 봐주고 있는데 친정집에 돈이 많아 엄마가 일도 안 하면서 사람도 쓰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외에도 시댁의 그 많은 외삼촌, 외숙모 히스토리 및 그 집의 아들 딸들이 어느 대학을 갔고 어떻게 사는지를 알게 되었고 대학 잘 간 게 능사가 아니더라 라는 이모의 삶의 교훈까지 배웠다.


연세가 많은 이모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가부장적인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 있긴 하다. 둘째 한 명 더 낳아서 일은 그만두고 애 키워라 라는 말은 열 번도 넘게 들은 것 같고, 남편이 밖에서 일 잘하기 때문에 남자로서 만점에 가깝다고 평가하신다. 이 정도는 이모님 세대는 어쩔 수 없는 거지...라고 넘어간다. 하지만 티브이에서 미투 운동이 한창이었을 적, 그래도 여자가 빌미를 제공했을 거라는 말에는 나도 모르게 버럭 했다.




하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내가 회사에 복직할 수 있었던 건 기꺼이 full time 아기 케어를 맡아 주신 이모 덕분이고, 아직도 살림과 육아에 촘촘한 도움을 받고 있다. 멀리서 못 와보는 친정 엄마보다, 그래도 어려울 수밖에 없는 시어머니 보다, 회사에서 속상했다고 투정도 부리고, 남편 흉도 볼 수 있는 건 우리 이모다. 뭐든 한마디 거드는 걸 좋아하고 누구보다 따뜻한 우리 이모는 내가 하소연할 때마다 '자네 그런 거 하나 신경 쓰지 말고 살아' 하신다. 평생 집안일만 하신 이모가 회사일을 아실리 없지만, 진지한 얼굴로 그런 건 하나 중요한 게 아니니 속상해하지 말라는 위로가 어쩐지 진짜로 위로가 된다.


CCTV를 들여다보니 이모는 또 핸드폰으로 누군가와 통화 중이시다. 아마도 어머님이시겠지. 한 손으로는 핸드폰을 들고 한 손으로는 바닥의 먼지를 모으며 간간히 아이한테 '아비~!' 하며 놀아주고 계신다. 퇴근 후 돌아가면 아이가 밥을 어떻게 먹었고, 똥을 어떻게 쌌으며 잠잘 때 기침을 했느니 안 했는 니, 자네 어머님이 오늘은 어떤 반찬을 새로 만들었는지 또 한참을 풀어놓으시겠지.


이모 우리 오늘은 조기 구워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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