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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ttee May 22. 2019

 INTERMISSION

워킹맘 휴직 결정

‘내일 오후에 커피 시간 한 번 내주세요~’  


어떻게 입을 떼야하나 고민 고민하다 결국 내일로 미룬다. 그리고 내일은 꼭 얘기할 수 있도록 팀장에게 톡을 보내 놓는다.


사실 팀장을 비롯 우리 팀원들은 팀 내에 유일한 워킹맘인 (또한 유일한 여자 기혼자인) 나를 많이 이해해 주고 있다. 함께 야근을 못해도, 아이 등원 때문에 10분, 20분씩 지각을 해도, 갑작스러운 휴가를 내도 이해해 주었다. 지금은 J가 일보다는 가정이 먼저인 시기인 것 같아 일을 많이 주고 있지 않다고 따로 얘기해 주는 조직장이다. 그런 팀 사람들에게 복직 한지 딱 1년 만에 다시 휴직을 내겠다고 말하는 건, 참 어렵다.


하지만 나는 결심했다. 아이와 시간을 보내기로.




기관에 다니면 초반에는 계속 아프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두 달반 중 두 달 동안 콧물, 기침을 달고 사는 아이를 보고 있는 건 참 속상한 일이었다. 어린이 집에 등원한 이후로 (사실 돌 이후로) 몸무게와 키가 거의 늘지 않았다는 것 또한 매우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혹시 집에서는 더 먹일 수 있는걸 못 먹이고 있는 건 아닌지,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가 쌓여 그게 아이의 성장에 영향을 주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한 돌 반이 지나면서 점차 아이의 기질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도 휴직을 결심하는 데에 큰 영향을 주었다. 우리 아이는 새로운 환경에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성격이 아니라, 두려움과 불안함을 갖고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아이였다. 어린이집 선생님과의 면담에서도 기질 검사에서도 우리 아이는 '접근' 보다는 '철회' 성향이 있는 아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런 기질을 가진 아이는 어린이 집에 오래 있는 것보다, 엄마와 시간을 더 보내고, 엄마와 함께 새로운 환경을 천천히 탐색하는 게 좋지 않을까...


가장 결정적인 건 친언니의 얘기였다. 지난 주말 친정과의 여행에서 오랜만에 우리 아들을 본 언니는 집에 돌아온 후 나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남겼다. 체구, 식사, 대근육 발달, 기질을 봤을 때 언니였다면 올해 우리 아이를 기관에 보내지 않았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조금 더 보호해 줄 필요가 있어 보였다고 했다. 4세, 8세 아들 둘을 키우고 있고, 공부방을 운영하며 수많은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지켜본 언니의 눈에, 우리 아들은 아직 엄마 품이 더 필요한 아이로 보였던 것이다. 그 누구보다 나의 성향, 일과 커리어에 대한 생각을 잘 알고 있는 언니가 이런 얘기를 해주는 건 분명히 의미가 컸다. 메시지 말미에 언니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내 동생 J를 위해서는 언니가 이런 말 해서 맘 아프지만, 망고 엄마 J를 위해선 그렇다고 말해줄 수밖에 없네. 내 맘 알지?'




한 번 마음을 정하고 나니까 그다음부터는 오히려 가벼워졌다. '어린이집은 간식 먹는 9시 반부터, 점심 먹는 12시 반까지만 보내면 되겠지? 그 이후에 집에 와서 낮잠을 재우고 오후에는 같이 놀러 다녀야겠다. 아이 키우며 쉬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러 갈까? 도서관, 공원 괜찮은 곳들 리스트업 해봐야겠다. 남편 반찬과 아이 레시피도 연구해야지. 아 육아서와 아이 심리 관련 책도 읽어야겠다. 전자책 리더를 사야 하나?' 한 번 시작된 생각은 꼬리의 꼬리를 물고 나가 머릿속에서 우리 집은 이미 레몬 테라스에 나오는 이쁜 집이 되어 있고, 나는 오은영 박사 뺨치는 아이 심리 전문가가, 삼시 세끼 멋지게 차려낼 것 같은 마카롱 여사(인스타 요리 셀럽)가 되어 있었다.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인생의 중심을 나 외의 것에 둔 적이 둔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결혼 후는 물론이고, 아이 출산 후 집에서 쉴 때에도 언제 복직해야 하나 이 생각뿐이었다. 감을 잃지 않기 위해 집에서 영어 뉴스를 읽고, 이메일을 체크하고, 계속 세상과 닿아 있으려 노력했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인생의 중심을 가정에 두고 싶어 진 것이다. 사실 좀 민망하기도 하다. 내 브런치의 주제도 워킹맘이고, 첫 글 역시 밀레니엄 워킹맘인 내가 어떻게 가정과 일을 헤쳐 나가는지에 대해 쓰겠다는 다짐이었는데, 아이 등원 3달 만에 '휴직'이라는 결정을 내버렸다.


내가 자만했다.   




 

분명 이 시간에도 담대한 마음으로, 고군분투하며 아이를 키우고 일을 하는 엄마들이 있을 것이고, 나 같은 시기를 지나온 선배 워킹맘들도 있을 것이다. '좀 더 버티면 이 시기는 지나갈 거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 아이를 두고 test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좀 버티면 아이도 적응하고 다시 가정에 안정이 올 수도 있겠지만, 혹시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나는 기꺼이 아이의 안정 10을 올리기 위해 내 일 욕심 100을 양보하려고 한다. 참 내... 내가 이렇게 될 줄 20대의 나는 상상이나 했을까.


휴직 결정 후, 언니와 다시 나눈 대화에서 내 인생이 이렇게 흘러갈 줄 몰랐다는 한탄을 하자 언니가 말했다.


'누군 아니냐 니미럴.'


정말 니미럴. 그러나 잘해보자. 내가 결정한 이 선택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그만큼 너를 사랑해 예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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